제사2.jpg


긴 연휴 기간 동안 두 번의 제사를 지냈다.

한번은 추석 아침에 올린 차례상이고,  다음은 연휴 마지막 날인

9일 월요일 아침에 차렸던 시아버님 생신 제사상이었다.

올 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 강릉 본가는 정리되었고 제사는

구미의 형님이 모셔갔다. 생신제사는 3년간 지내기로 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던 우리 가족의 동선은 이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추석 전날 내려가서 추석 당일날 올라 온 후 4일만에

구미를 다시 다녀왔다.


바다에 접해있는 강릉과 내륙의 공업도시인 구미는 자연환경도 생산물도

많이 다르다.  강릉 제사에서는 당연히 해산물이 가장 중요하다.

명태와 가자미, 열기, 이렇게 세 종류의 반건조 생선들을 쪄서 그 위에

커다란 문어를 올린다. 얇게 부치되 찢어지면 안되는 메밀적도 올려야 하는데

이 메밀적을 부치는 일은 어지간히 숙력된 손길이 하지 않으면 두껍거나

찢어지기 일쑤다. 시집온지 15년된 나는 아직 시도도 못 해봤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송편은 강릉식으로 속에 생밤 한톨씩 넣어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다. 남자들은 송편 속으로 넣을 많은 밤 껍질을 벗기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일쑤다.


그래도 떡이니 전이니 하는 음식은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해산물이다.

구미에서 강릉의 해산물들을 구하려니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곱절이 든다.

미리 가서 사 온 후 냉동으로 보관했다가 쓰거나, 얼음포장해서 강릉에서

구미로 오는 고속버스 편으로 받는데, 일반 여객 운임을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

이번 추석엔 이 과정에서 뭔가 착오가 생겨 주문한 반건조 생선이 도착하지 못했다.

형님은 부랴 부랴 구미 시장을 돌며 생물로 생선들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고

건조되지 않은 생선은 찌는 과정에서 모양이 흐트러지기 쉬워서 제사상에

올리기까지 마음 고생이 많았다.

사실 나는 이런 과정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

경기도에 사는 우리는 오고 가는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다보니 음식 준비는

대전에 사는 동서와 형님이 거의 대부분 다 하기 때문이다.


추석 당일에도 우린 차례를 마치고 올라왔지만 형님과 동서네는 강릉선산으로

성묘를 갔다. 구미에서 강릉까지 가는 데만 여섯시간 넘게 걸렸고

성묘를 마치고 다시 구미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네시였단다.

나는 이런 과정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형님과 동서는 '도리'라고 생각한다.

'도리'를 지키는 일이 '무리'를 감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일년에 한 번 뿐인데 그걸 무리라고 여기는가.. 형님은 내게 묻는다.

1년에 한번 이라도  '무리'는 '무리'.. 라고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우리 가족은 10월 중 따로 성묘를 가겠다고 했다. 성묘 정도는 서로의 형편에 맞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제사를 치루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부모가 소중하게 여긴 절차를 그대로 받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형님과 동서네가 잘못일리는 없다.  구미에서 제사를 모시면서

강릉 식으로 차려내려고 애쓰는 그 수고도 애틋할 수 있다.

지켜보기에 조금 답답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가의 전통을 내가 바꿀 수 없다.

다만 나는 내 부모님의 사후와 내가 죽은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다.


큰 고통사고를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갔다 살아 돌아온 내 쌍둥이 자매는

이젠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산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장례절차와 죽은 후에 자식들이 자신을 추모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미리 정리해 두었다.

그 내용에는  죽은 후 수의는 입히지 말고 옷장에서 제일 고운 원피스를 입혀달라는 것,

늘 좋아하던 붉은 립스틱을 발라달라는 것 같은 것도 있지만 죽은 후에 제사에 대해서도

정리해 놓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날을 기리지 말고 부부가 된 날을 기려 달라는 것이다.

가족의 뿌리는 부부가 된 날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그 날을 축하하고  기려달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나물이니, 기름진 전 같은 거 부치느라 며느리들 고생시키지 말고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과 너희들이 먹고 싶은 음식들로 상을 차리라고 했다.

향이 좋은 더치 커피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제사는 남은 자손들이 모여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누는 날로

지내라는 것이 핵심이다. 서로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준비해 와서 먹어가며

부모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많이 웃고, 울기도 하면서 그리워 하고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는 즐겁고 행복하고 뿌듯한 날로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말이다.


친정엔 맏아들이 없다.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이지만 장애가 있어 제사를 모시기는 불가능하다.

딸 들은 평소에도 마음이잘 통하는 사이여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제사를

모시는 방식도 우리 식대로 터 놓고 얘기해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제사 상을 차리더라도 전통적인 음식보다는 부모님이 즐겨 드시고 좋아하셨던

음식을 놓아 드리고 싶다. 아마 두 분 다 초밥과 생선회가 올라갈 것이다.

갈비와 불고기, 찰떡, 과일에 술은 좋은 와인이 되리라.

맛난 음식을 해 와도 좋고, 유명한 식당에서 사 와도 된다. 자매들 형편껏 능력 껏

차리는 것이다. 절차와 형식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대신 서로가

모여 즐겁고, 부모와이 추억을 나누는 일에 더 마음과 시간을 쏟고 싶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정 자매들끼리 모여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나눈 적이 있는데 저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특별한 추억들이 있어

놀라고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그럴것이다. 모두 개인적으로

부모님을 겪었던 경험들이 있다. 자기만의 사연과 추억도 많을 것이다.

부모님이 즐기던 음식을 먹으며, 혹은 좋아하시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제사라면 얼마나 근사한가.


시아버님에 대한 추억은 많지 않다.

늘 몸이 약하셨고 살가운 분이 아니셨기에 변변한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다.

그저 보살펴드리고 챙겨 드려야 하는 분이셨다가 돌아가신 것이 가끔 아쉽다.

아버님이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였을까. 자주 가시던 식당은 어디였을까.

한 번은 우리 모두를 데리고 강릉 중앙시장에 있던 칼국수 집에 데려가셨는데

자손들끼릴 그 식당에 다시 찾아가 아버님이 즐겨 드시던 칼국수를 사 먹고

아버님이 자주 다니시던 골목을 걸어보고, 태어나 살아가신 그 땅을 잘 누려보는

그런 제사는 왜 안될까.

돌아가실 때 까지 해병대 전후회 활동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남달랐던 것을 생각하면서 모두 빨간 옷 하나씩 입고 만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제사는 결국 산 사람을 위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사를 빌어서 자손들은 결속되고 더 가까와지는 것  이야말로 돌아가신 분들의

뜻 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절차를 따르느라 애쓰는 것 보다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부모를 잊지 않고, 서로에게 더 깊게 결속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다. 제사는 이제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가족 사진.jpg


이번 연휴 마지막 날, 생신 제사를 마치고 가족끼리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왔다.

중 3 때 간부 수련회로 왔던 이후 32년 만에 찾은 곳이다. 가슴이 뻐근할 만큼

감회가 새로왔다.

맑은 시냇물에 손도 담그고 아늑한 숲길도 걷도, 절 마당에서 염주알로 쓰는

열매도 주웠다.

이다음에 내가 죽은 후에 내 아이들와 그 아이들이 1년에 한번씩 내가

태어난 날, 내가 좋아하던 장소를 다시 찾아 여행하면서 나와 그 장소에서

자신들과 함께 했던 날들의 추억을 이야기해준다면 내겐 그보다 더 좋은

제사는 없겠다.


책을 좋아했으니 서점을 순례해도 좋고, 대학로나 종로처럼 내가 좋아하던

거리를 걸어봐도 좋고, 오대산 전나무 길이나, 제주도나, 섬진강같은 곳을

여행해도 좋은 것이다. 제사는 반드시 큰 아들의 집에서 지낼 필요가

뭐 있을까. 교회나 절이 아니어도 세상 어디에서나 신에게 경배드릴 수 있듯이

마음에 품은 부모를 다시 만나는 일은 어느곳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좋지 않을까.


친정 아버님은 당신의 사후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해 두셨다고 했다.

조만간 자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공표하고 문서로 전해 주시겠다고도 했다.

당신이 비문도 미리 써 두신 분이다.

딸들이 머리를 모아 마련하는 우리만의 제사도 분명 좋아하실 것이다.


시부모님의 죽음을 아이들과 치뤄내면서 우리에게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무겁거나 어려운 주제가 아니다.  매년 그 해의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정해두는 내 아야기에도 아이들은 명랑하게 끄덕인다.

열다섯 큰 아들과는 제사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죽은 이후에도 내가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제사와 추모가

이루어 진다면 참 좋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이런 내 생각을

글과 말로 전하고 있다.

그대로 해도, 혹은 아이들 뜻대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내가 아이들을 지극히 아끼듯이 내 죽음 이후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으면 된다.


제사...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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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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