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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명쾌·인생은 유쾌…‘잘 그렸다’가 실례인 그림책 작가

양선아 2017. 09. 28
조회수 3168 추천수 0
어린이문화포럼 찾은 고미 다로
 
고미타로.jpg » 지난 22일 전남 순천시 ‘순천 기적의 도서관’ 옥상에 그려진 벽화에 그림책의 대가 고미 다로가 기대앉아 있다. 제3회 순천 어린이 문화포럼에 참석한 그는 한국의 권윤덕 작가와 대담을 진행했다. 양선아 기자
 
지난 22일 전남 순천시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열린 제3회 순천 어린이 문화포럼에 참석한 일본 그림책계의 대부 고미 다로(‘고미 타로’로 널리 알려짐)를 만났다. <바다 건너 저쪽> <똑똑하게 사는 법>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등을 쓴 그는 지금까지 400권이 넘는 그림책을 펴냈다. 그림책 작가 가운데 이렇게 많은 책을 낸 사람도 드물다. 라이프치히 도서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과 같은 국제도서전에서 상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단순명쾌한 그림, 간결한 언어와 뻔하지 않은 결말,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그의 그림책은 유아부터 할머니까지 독자층이 폭넓고, 세계 30여개국에서 번역됐다.

40년 넘게 400여권 펴내고도
서랍 속엔 4천권 분량의 그림
 
“자신의 느낌을 자기답게 표현
칭찬받으려 애쓰면 소용없어
내면 담긴 그림이 좋은 그림”
 
“아이들은 놔둬도 그냥 잘 자라
좋은 책 알려면 나쁜 책도 알아야”

이번 인터뷰는 고미 다로가 국내 일간지와 진행한 첫 인터뷰다.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에 멋진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작가는 인터뷰 내내 때론 장난꾸러기처럼, 때론 철학자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일흔둘의 나이지만 고미 다로는 자기가 하는 일이 여전히 재밌다. 자신이 만든 책을 보며 “참 잘 만들었네”라며 스스로 감탄한다. 그는 한 번도 ‘어린이를 위해서’ 그림책을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교육적인 메시지를 주는 일 따위에는 더군다나 흥미가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이기에 그림 잘 그리는 방법을 묻는 사람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림은 잘 그리면 안 됩니다. 실례예요. 누구한테 참 잘 그렸네 칭찬받고 싶으니까 계속 방황하고 잘 그리고 싶은 거죠. 잘 그린 그림보다 좋은 그림이라는 말을 저는 더 좋아해요. 뭔가 나의 내면을 그림에 담은 그림이 좋은 그림이지요.”
고미타로6.jpg » 지난 8월 국내에서 출판된 고미 다로의 새 책 <그림자 비행기> 표지. 한솔수북 제공
젊은 시절 산업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했던 그는 의뢰자와의 수동적인 관계가 싫었다. 그림과 글로 묶인 그림책이라는 형태가 좋아 1973년 그림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조건 그림을 그린다. 400권의 책을 냈지만, 4천권 분량에 이르는 그림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 과정 또한 즐겁다. 자신이 낸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면 그는 ‘나와 취향이 맞는 아이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관심사는 ‘나와 취향이 맞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이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알고, 그것을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에게 생각을 주입하거나 강요하고, 어른의 잣대로 아이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자녀를 키운다는 표현은 틀린 거예요. 아이들은 그냥 큽니다. 아이들이 커갈 때 옆에서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어른이에요. ‘아이를 어떻게 키웠으면 좋겠다’ 하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어떻게 클까’ 보면서 기다리는 게 부모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사는 “한 우물을 파라”, “공부를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처럼 바보 같은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다고 좋은 인생을 산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지금의 교육방식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적합하다고 누구도 보장 못한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식을 자신이 바라는 존재로 키우려고 한다.
“부모들이 좋은 책을 골라준다는 것 자체가 키우는 겁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좋은 아이로 클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그것은 착각이지요. 저는 좋은 책이 뭔지 알려면 나쁜 책, 안 좋은 책도 많이 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부모는 그것을 용납하거나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지 않지요.”
통념을 깨는 이야기는 그림과 교육만이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도 여전히 냉랭하다. 이런 여건에서도 그림책을 매개로 양국의 그림책 작가가 문화적 교류를 하니 뜻깊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보란듯이 ‘까였다’.
“이번 행사를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교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고미 다로라는 개인과 한국의 그림책 작가, 도서관 관계자가 교류한 겁니다.”

고미타로2.jpg » 그림책 작가 고미 다로가 순천 기적의 도서관 옥상에 그려진 벽화를 보더니 갑자기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익살스러운 그는 시종일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그는 국가, 국민, 사회와 같은 말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보다는 개인, 나, 즐거움, 재미와 같은 단어를 좋아하고 자주 사용했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골라서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일이 참 신기하고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포럼에서 청중들은 고미 다로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떻게 극복하나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나요?”, “우아하게 늙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라고.
고미타로10.jpg » 고미 다로의 <똑똑하게 사는 법> 가운데 한 페이지. ‘꾸중을 제대로 듣는 법’으로 어른의 태도를 살짝 비틀었다. 한림출판사 제공
“다들 너무 훌륭해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국가나 사회에서 바라는 인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국가가 바라는 인재상과 ‘나’라는 개인을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냥 노력하지 말고 그대로 늙으면 돼요. 애쓰면 보기 싫어요. 우아하게 늙고 싶다, 예쁘게 늙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죠. 하얀 종이는 하얀 종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70대가 돼도 저렇게 생각이 유연하고 인생을 유쾌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를 보고 배우세요, 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저는 너무 재밌어요. (인생이) 재미없다는 말이 이해가 안 돼요. 재미가 넘쳐서 어쩔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고미타로11.jpg »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중 한 페이지. 악어와 치과 의사가 같은 말을 하지만 서로 무서워하는 설정이 재미있다. 비룡소 제공
순천/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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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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