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동영상으로 언어 교육?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라

김영훈 2017. 09. 29
조회수 4061 추천수 1


여러 나라의 글자를 읽을 수 있으나 대화는 잘 하지 못하는 언어 영재 성현군


 

kermit-1673474_960_720.jpg » 사진. 픽사베이.

영재들은 말을 일찍 시작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말문이 트이자 마자 거의 유창하게 말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대부분 언어 습득이 빠르지만, 정상 범위에 속하면서도 ‘유아어’시기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할 때가지 참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고 말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칠 줄 모르고 질문을 해대는 바람에 주위 사라들을 놀래고 피곤하게 합니다.

 

언어영재 성현(가명)이는 말의 습득이 빨랐습니다. 18개월에 이미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4개월만에 신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현이는 28개월에는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한문까지 깨우쳤습니다. 한문 실력은 초등학생 실력인 7급 수준입니다. 한문을 배운지 3개월만에 이룬 수준입니다. 거리에 나가면 간판이며 표지판이며 글자로 된 것은 모두 읽습니다


성현이의 부모는 따로 글자 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성현이가 관심 가져하는 동영상이 있어 동영상 하나를 틀어줬는데 이것저것 보다가 글자를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성현이는 기억력이 뛰어났습니다. 한두 번만 알려주어도 글자를 깨쳤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영어 알파벳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음이 달라 어렵다는 러시아어 동영상을 틀어주었습니다. 거실에서 장난감 차를 타며 동영상을 보았는데 다음날 다시 틀어준 러시아어 동영상을 보더니 바로 러시아 알파벳을 다 깨우치더군요.


동영상을 보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보고 나면 바로 성현이는 자신의 칠판으로 달려가 반복 학습을 합니다. 스스로 반복하며 놀이삼아 공부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자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성현이는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의 말을 그저 따라하는 데만 그쳐버립니다. 결국 언어라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인데, 글자만 잘 읽고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성현이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동영상을 통한 교육의 문제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동영상을 통한 교육은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기때문에 단어를 외우는 데는 효과적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언어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유아교육에서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동영상 교육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1969년 미국 ’아동용 텔레비전 워크샵'(CTW, Children's Television Workshop)가 제작한 어린이교육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는 교육용 동영상 시장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사인 ’아동용 텔레비전 워크샵'은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기회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 보건교육복지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놀이가 아닌 교육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입니다.

 

htm_2015111015340388946.JPG » 미국 CTW가 제작한 어린이교육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

그런데 유아용 조기교육 동영상이 유아들의 언어 습득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워싱턴 의대와 시애틀 어린이병원 연구소가 생후 8~16개월 된 아이를 둔 부모 1008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하루 한 시간씩 유아용 교육 동영상을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습득한 단어 수가 되레 6~8개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대상에는 '베이비 아인슈타인' '베이비 지니어스'와 같은 유명 프로그램이 포함됐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디브이디(DVD)시리즈입니다


언어는 아이가 외부의 의사소통을 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수단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아이들 환경은 옛날 가정보다는 의사소통의 기회가 적은 환경입니다. 가족의 숫자가 적고 친척과 이웃과의 교류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아이가 의사 소통의 자극을 받을 기회는 과거보다 줄어든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많아져서 언어를 발달시킬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의사소통의 기회와 이웃과의 교류가 악화될 위험성 또한 많은 것이 요즈음의 가정환경입니다


아이의 두뇌 발달이 유아 초기에 많은 부분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기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언어 발달의 기초가 없이는 사고력, 논리력, 기억력의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능 발달도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언어 발달을 위해서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동영상 말고도 바깥 놀이나 블록 놀이, 혹은 역할 놀이 등 다른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언어는 더 발달할 수 있습니다. 

  

알아듣는 언어의 뇌가 먼저 발달합니다.

언어의뇌.jpg » 언어의 뇌. 이미지 김영훈.


그렇다면 아이들의 언어 발달과 두뇌 발달의 상관 관계를 알아볼까요? 

 

생후 13개월에는 듣거나 말하는 단어가 좌뇌, 우뇌 모두의 뉴런을 활성화시킵니다. 두뇌의 성숙과 개인적 경험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후 24개월이 가까워오면 언어는 하나의 반구로 특화되고 대부분 좌뇌가 그 일을 맡게 됩니다.

 

청각 신경은 대각선으로 교차해서 반대쪽 대뇌 반구로 연결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정보를 전달해주거나 논리적인 말을 할 때는 오른쪽 귀에 해주면 왼쪽의 뇌(좌뇌)로 가게 돼 훨씬 아이들이 그 말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음악이나 자장가, 감성적인 말들은 왼쪽 귀에 대고 해주면 우뇌가 반응해 훨씬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정엽과 측두엽 경계에 있는 베르니케 영역은 언어 이해를 담당합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며, 각각의 단어를 이해해야 할 때 활성화됩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우리의 머릿속 사전이라 할 수 있는데 명사는 측두엽과 두정엽에서 처리되는 반면, 동사는 전두엽에서 처리됩니다. 전두엽의 브로카영역은 혀, 얼굴, 턱, 후두를 움직여 말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브로카 영역은 어순이 서로 다른 문장을 비교할 때, 또는 어순의 의미와 정확성을 인식해야 할 때 활성화되므로 문법구조를 담당합니다. 베르니케영역과 브로카영역이 두꺼운 신경섬유다발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의미와 문장구조 간에 신경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이의 언어발달에 중요합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브로카영역보다 빨리 성숙하므로, 아이들은 말하는 표현 언어 보다는 알아듣는 수용 언어가 더 빨리 발달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베르니케 영역의 시냅스는 8~20개월 사이에 수적으로 절정에 달하며, 브로카영역은 15~24개월에야 그 수가 최고에 달합니다. 특히 수초화가 되어 기능이 빨라진 뉴런층은 브로카영역에서 생후 4살이 지나야 비로소 생겨납니다. 따라서 이때부터 아이들은 복잡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세요

 

아이의 언어 발달은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연구에 의하면 엄마가 말을 많이 해준 20개월 아이는 말을 많이 해주지 않은 아이에 비해 평균 131개나 많은 단어를 익혔다고 합니다. 24개월이 되면 더 늘어나서 295개 단어나 차이가 났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아이에게 자주 말을 걸고, 아이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부모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IQ나 어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지능 검사와 언어 검사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36개월 아이들은 13~24개월 때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말하기, 읽기, 쓰기가 학업뿐 아니라 직업 성공의 핵심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릴 때 말을 잘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지능이 좋다는 것을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언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일찍 시작하면 좀 더 일찍 문장이나 문법을 익힐 수 있다. 이것은 논리력, 사고력, 수리력에 영향을 줍니다.

 

부모가 하는 말의 다양성도 문제입니다. 부모의 말에 포함된 명사와 형용사의 종류가 다양하거나 문장이 길수록 아이들이 언어능력도 빨리 발달했습니다. ‘그만해’, ‘안 돼’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들의 언어능력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계속 추적해보면 영유아 때 언어능력의 격차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잘 익히지 못하고 언어를 이해하는 것도 더딘 아이는 글자도 빨리 익히지 못하고 읽는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보스턴 대학의 폴메뉴크는 읽기에 문제가 있는 아이는 말하는 능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출생 후 3년 동안 부모에게 말을 많이 듣고 자랐던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에 비해 독서능력, 철자법, 말하기, 청취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부모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언어적 영향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본격적으로 어휘수가 느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언어모델이 되어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이나 사물, 아이가 하고 있는 행동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말을 할 때에는 아이중심의 말이 더 좋습니다. 아이중심의 말은 억양이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고, 높았다 낮아졌다 하는 횟수가 잦고 말하는 속도는 느립니다. 또한 쉬운 낱말을 주로 사용하고, 낱말의 수가 적은 간단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합니다. 아이와 대화할 때는 별 의미 없는 말에도 크게 반응하여 아이의 호기심을 끄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것도 이 시기의 언어 발달에 효과적인데 아이가 흥미를 갖는 사물이나 사람, 동작 등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책으로 반복하여 읽어주세요.

 

동영상을 보여주며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부모님이 수다쟁이가 되어 더 많은 말들을 들려주고 아이와 더 대화를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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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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