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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서울에서 재회한 아빠와 딸/

"아이가 슬프다고 통곡하는 것이, 허리춤에, 가슴팍에 매달리는 것이 새삼 고맙다.  삼남매 장녀로 자란 나는 울고 싶을 때 울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기보다 참고 이겨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런 나를 ‘징그럽게 조숙했던’ 아이로 묘사하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움, 보고픔, 사랑, 슬픔, 분노, 눈물 같은 건 가슴 속 깊은 밑바닥에 차곡차곡 묻어두고 말 잘 듣는 아이, 철이 일찍 든 아이 행세를 했을 뿐이었다."



두 달 간 서울에 머물렀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여섯 살 아이 마음이 아빠가 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버렸다. 저녁 시간에 남편이 공부하러 갈 때, 혼자 모임에 갈 때, 심지어 주차장에 잠깐 다녀올 일이 있어도 아이는 아빠 허리춤에 매달려 땀과 눈물로 얼굴이 흥건해질 때까지 한참을 울다 겨우 떨어졌다.


가야만 하는 아빠. 가지 말라고 붙잡는 딸. 시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이라 부르는 이 장면은 어찌나 애잔한지 그 둘을 동영상에 담고 있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흐르더랬다.
삼십분, 한 시간, 어쩔 땐 두 시간. 겨우 진정하고 동생과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 밥을 먹다, 갑작스레 “아빠가 보고 싶어!” 하고 시작하면 또 몇 십분.


초반의 나는 능숙하게 이 상황을 넘겼다. 아이를 꼭 안고 아이의 감정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드러운 말을 속삭였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이랑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 엄마도 똑같아. 괜찮아. 울고 싶을 땐 맘껏 울어.”
다시 생각해도 여섯 살 여자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 치고는 꽤 근사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속되자 슬슬 힘들어졌다. 밥 먹을 때도 아빠 옆에, 카시트 채우는 것도 아빠가, 자장가도, 노는 것도 전부다. 어쩌다 아빠가 유치원 등원을 함께 못하는 날은 벌겋게 부은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다. 실랑이를 벌일 때마다 유치원 갈 시간, 잠 잘 시간은 하염없이 늦어지고 그때마다 어른들은 진이 빠졌다.


특히 내 고충은 귀가 아프다는 거였다. 아파트 8층 집에서 아이가 울면 1층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25킬로그램의 묵직한 아이를 불룩한 배에 최대한 밀착시키고 5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우렁찬 쇳소리를 받아내자면 팔다리가 저리고, 가슴이 답답하다가 ‘악, 엄마 좀 살려줘라!’ 한숨이 새어나왔다.


“엄마 화 난 거 같은데? 나, 우는 거 싫어?”
아이는 눈치 없게 눈치도 빨랐다.
“아냐, 아냐.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어서 좀 힘들어서 그래.”
과장되게 머리를 양 옆으로 흔들며 아이를 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줘 보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건 ‘이제 그만 좀 울어’, ‘이만 하면 적응할 때도 됐겠구먼’ 하는 아이 마음에 상처 내고 흠집 내기 딱 좋은 말들이었다.



“오늘은 몇 시에 올 거야? 1시에 오면 안 돼?”


그 즈음 아이는 등원할 때마다 같은 걸 물었다.
담임 선생님과 오전 활동을 마치고 점심 먹고 나면 1시. 방과 후 특별 활동이 끝나고 대다수 친구들이 집으로, 학원으로 가는 4시. 시간개념이 확실히 잡혔나보군, 그래 너도 어서 집에 와서 편히 있고 싶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5시에 보자, 친절하게 대답하곤 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수월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시끌벅적 웃으며 교실 앞에 도착했던 며칠 전. 갑작스레 울먹이는 얼굴로 아빠 엄마에게 달려들어 깊고 오랜 포옹을 한 뒤 엉거주춤 교실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께가 욱신욱신했다.
별안간 내가 지금 이 아이만 했던 시절,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순간이 떠올라서다.


나와 내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향, 전북 진안군의 후미진 산 아래 동네에 살던 시절 즐거움 중 하나는 엄마와 여동생과 읍내 장에 가는 일이었다.

집안 일, 장보는 일은 ‘노는 사람’이 하는 일쯤으로 여기는 산골마을 정서 속에서 어린 두 딸을 맡기고 갈 재간이 없었던 엄마는 얼마나 고달팠을까. 하지만 나로선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읍내에 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침이 꼴까닥 넘어가는, 하여간에 일기장에 적어야 할 만한 사건이었다.


구수하고 달달한 것들 천지라서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몽롱해지는 시장의 온기와 냄새. 텔레비전에서 본 거랑 비슷한 옷과 구두, 운동화, 고무신 더미. 어떻게 가지고 노는 건지도 모르겠는 장난감들. 비린 냄새조차 이국적이던 생선 가게와 건어물 가게. 거기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어가다 보면 드디어 나타나던 빵집. 지글거리는 기름에 막 튀겨진 불그름하고 두툼한 몸집에 백설탕을 듬뿍 묻힌 팥빵을 드디어 한입 베어 문다!


충만함이 공포로 변하는 건 맨 마지막 부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시각. 엄마는  반드시 사 가야하는데 미처 놓친 것들을 기억해냈다. 엄마는 차부 안쪽 의자 옆에 몇 시간 동안 걸어 다니며 산 온갖 식재료며 옷가지를 보자기로 쌓아 올리고 나에게 어린 동생과 짐을 부탁하고는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최근에 이야기를 나눠본 동생 말로는 “엄마가 우유나 코코아 같은 걸 쥐어 줘서 그걸 맛있게 먹고 있으면 엄마가 곧 왔다.”는데, 내 기억 속에 그런 달콤함은 전혀 없었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고 싶은 만큼 꾹꾹 참았다. 엄마도 없는데 내가 울기라도 하면 정말로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저 동생의 한쪽 손을 붙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부릅뜨고서 “금방 온다.”고 했던 엄마가 어느 쪽에서 나타날지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됐다. 나는 엄마가 없는 동안 동생이랑 쉬야를 하고 와도 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차가 떠나기 전에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안도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은 마음, 울고 싶은 마음만은 매번 똑같았다.


그러나 결국 눈물을 쏟아야 하는 날이 와버렸다.
그날 우리 셋은 이미 차에 타 있었다.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나, 엄마가 좋아하는 구운 문어발을 빨고 있었나. 좌석 밑에 그득하게 짐을 채웠는데도, 차가 금방 출발할 건데도 엄만 또 헐레벌떡 버스를 뛰쳐나가고 말았다. 나에게 동생과 짐을 맡기고.

심장이 이렇게 크게 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아마 그때 처음 알았을 거다. 완행버스 정면에 걸린 시계 초침은 왜 그리 빨리 뛰는지. 버스 안은 마법 같은 읍내를 떠나 아궁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와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소와 염소를 몰며 걸음을 재촉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로 가득 찼다. 내 엄마만 빼고.



“아저씨, 우리 엄마 아직 안 왔는데요.”


기사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부터 울었는지 모르겠다. 하도 긴장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갔는지, 아저씨가 내 말을 잘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서 목을 쑥 빼고 차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지만 엄마는 없었다.


어쩌지, 어쩌지, 우리 엄마가 아직 안 왔는데. 떠날 시간이 다 됐는데. 우리 엄마는, 나랑 동생이랑 이 많은 짐은 다 어쩌지. 짐이랑 동생을 데리고 내려야 하나?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다 옮기지?


갈팡질팡하는 사이 낡은 버스가 그르렁거리며 움직였다. 크게 반원을 그리며 후진을 했다가 차부 맨 왼쪽에 뚫려 있는 입구로 빨려 들어가듯 속도를 냈다.
내리지 못했으니 일단 차를 세워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잡았던 동생 손을 놓고 운전석으로 가서 울부짖었다.
“아저씨 잠깐만요. 우리 엄마가 안 왔어요.”


엉엉엉도 아니고 흑흑거리는 가녀린 울음소리 너머로 터미널 입구에서 우회전을 하느라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던 아저씨의 커다란 손동작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이전에 차부 의자에 나와 동생을 앉혀두고 엄마가 뛰어나갔던 터미널 뒷문에 다다를 무렵. 버스가 멈췄고, 숨을 헐떡이는 한 여자가 올라탔다.


아, 엄마!
그 다음부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엄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던지, 나는 계속 울었는지, 동생은 세상모르고 여전히 즐겁기만 했는지.


어린 시절 나는 늘 엄마 옆을 맴돌았다.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 나도 부엌에, 엄마가 마당에 있으면 나도 마당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을 읽거나 한 살 어린 여동생과 자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같은 걸 즐겨했던 것도 언제든 엄마가 보이는 곳에 있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분주했다. 식구들 일 년 먹을 정도의 밭뙈기, 논이 전부인 집이라 돈이 되고, 돈을 아낄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했다. 밥, 빨래, 청소, 육아 같이 ‘일’로 안쳐주는 일도 엄마의 일이었다. 그러다 저녁 준비하기 전 잠깐 짬이 나서 엄마와 동네 뒷산에 오르거나 숨바꼭질 할 때가 나는 제일, 제일 신나고 행복했고, 지금도 자주 떠올리는 순간이다.


몇 시에 올 거냐고 물으며 뒤돌아서던 아이와, 눈물을 꾹꾹 참으며 엄마를 기다리던 내가 겹쳐진다.
터미널에서의 날들이 왜 트라우마로 남았나. 생각해보니 그때야 말로 내가 유일하게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학교 다닐 때. 집에서 먼 대학을 가고 더 먼 나라로 여행을 갈 때. 나는 늘 주체적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존재였다. 집에 가면 언제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다.


내 아이는, 아니다. 맡겨지는 존재다. 내 아이에게 엄마는 떠났다가 돌아오는 존재다.

어린이집, 유치원, 할머니 집, 때론 이모집까지. 보육기관에 다니기 전 화순에 살던 때부터 삼일, 일주일, 필요할 때면 언제고 아이를 맡겨두고 홀연히 돌아와 생계에 몰두했다. 지금 드러나는 아이의 불안과 그리움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깊고 오래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도 지금 예전의 나처럼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르는 공포를, 기다림을 겪는 중일까. 시계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는 걸까. 넌 그렇게 매일 나와 이별하는 기분이었을까.
다시 예닐곱 살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쑤신다.


새삼, 아이가 슬프다고 통곡하는 것이, 허리춤에, 가슴팍에 매달리는 것이 고맙다.
삼남매 장녀로 자란 나는 울고 싶을 때 울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기보다 참고 이겨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 시장에서도 내가 통곡을 하며 난 절대 동생과 짐을 지키지 못 한다고, 무섭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내가 겁쟁이란 걸 엄마에게 드러냈다면 엄만 거기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징그럽게 조숙했던’ 아이로 묘사하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움, 보고픔, 사랑, 슬픔, 분노, 눈물, 무서움 같은 건 아무도 볼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밑바닥에 차곡차곡 묻어두고 말 잘 듣는 아이, 철이 일찍 든 아이 행세를 했을 뿐이었다.


난 아이들이 무엇보다 제 감정에 충실하면 좋겠다.
내 일은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것. 네가 웃든, 울든, 무엇을 좋아하든, 어떤 삶을 살아가든 너를 응원하는 우리가 옆에 있다는 믿음. 유난히 겁이 많고 헤어짐에 민감해서 엄마 곁을 맴돌던 아이가 모험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너 역시 지금의 날들을 지나 너만의 길을 찾아갈 거라는 믿음.

함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서로의 감정과 크고 작은 결핍을 나누며, 같이 성장하고 싶다. 그러니 조이고 다듬고 돌봐야 하는 것은 밥 먹고, 놀고, 이야기 나누고, 잠자리에 드는, 매일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상뿐이리라.


어느새 임신 8개월 차. 긴긴 추석 연휴 동안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글을 쓰며 보낼까 상상하며 설렜는데.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저 아이들과 뒹굴고 물고 빨며 우르르 몰려다녀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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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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