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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는 아들이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독립운동사'를 배우면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열다섯 아들 입에서 나온 '김산'이란 이름이 너무 반가워 무려 27년만에 먼지 쌓인

그 책을 다시 펼쳐 읽은 것이 지난 여름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 신입생 시절에 선배들이 읽으라고 해서

읽었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큰 감동과 아픔이 있었다.

내친 김에 한참전에 사 두고 읽지 않았던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펼쳐보니

'아리랑' 이후의 '김산'에 대한 후일담이 실려 있었는데 결국 헌신했던 조직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처절한 비극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트로츠키 주의자'로 오해를 받았다는 내용이 걸렸다.

나는 '트로츠키'가 누군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나는 소비에트 혁명이니 볼세비키니, 인터네셔날이니, 파리 코뮌이니

하는 말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 격동의 시대를 사로잡았던 사상과 그 전개 과정의 역사에 대해서 나는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조선희의 '세여자'를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왜 그 시절의 혁명가들이 러시아를 고향처럼 숭배했는지, 무엇이 조선의 여인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나드는 혁명의 불길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가게 했는지

그들이 품었던 꿈과 이상의 그 핵심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세여자' 1권을 읽다 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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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책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유토피아였으며 또한 그 만큼의 사람들을

동원했던 정치 프로젝트이자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의 발전과 전개 과정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히 카를 마르크스와 '공산당 선언'과 '볼세비키'와 '레닌'이 등장한다.

읽다보니 '트로츠키'도 나오고, '파리코뮌'도 나오는데 아하... 그렇구나.

나는 이 모든 역사의 중심에 있는 '마르크스'를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대학시절 선배들에 의해 학습을 당할때에 분명 마르크스의 책들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온 의문으로서의 공부가 아니었던 탓에

그때 배운 내용은 기억에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운동권 활동은 그저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며 서툰 연애와 나를 혼란하게 하는 정체성에 매달리는 동안

마르크스는 그저 한 번 들어본 이름으로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이 먹도록 잘도 살았다.

그러다가 내일 모레 쉰이 되는 이 시기에 '마르크스'가 궁금해진 것이다.

세상을 두 동강으로 나누어 버릴 정도의 강력한 사상을 확립했던 사상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버린 엄청난 영향을 미친 혁명가로서

마르크스가 알고 싶어졌다.


마르크스.. 하면 공산주의, 공산주의는 공산당, 공산당은 빨갱이로 이어지는

도식은 여전히 그 힘이 세다. 휴전중인 나라에서 지독한 이념 대립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던 이 사회는 지금도 끊임없이 상대의 이념을 확인하고

빨갱이로 낙인찍는 일이 벌어진다. '김산'같은 혁명가의 생애가 잘 알려지기

어려웠던 것도 그가 현신했던 공산주의라는 이념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오해를 걷어 버리고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드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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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시카와 야스히로'의 이 책을 찾아냈다.

나 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을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다.

읽다보니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 한 두명이라도 같이 읽어보면

재미있고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을 조합 밴드에 '마르크스 읽기 모임'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야 말로 지금의 사회가 어떤 상황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나아가서는 그런 사회에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를 파악하고 사회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나의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 이 세가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라는 대목에서

새삼 가슴이 뛰었다.

마르크스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와 역사, 그 전체를 다루는

넓은 시야를 향한 공부를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릴때만해도 사실

누가 지원을 해줄까... 자신이 없었는데 두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 조합원이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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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후 7시 반부터 '마르크스 읽기' 첫 모임이 마을 조합 공간에서 열렸다.

각자 소개를 통해 왜 이 모임을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나누었다.

젊은 시절 만났던 마르크스와 중년이 된 지금 만나는 마르크스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는 사람, 막내까지 학교에 보내고 나서 주어진 자유를 앎에 대한 열정으로

채우고 있다는 이웃,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어느 책을 읽어도 자꾸 마주치는 마르크스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서 나온 사람,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모임을 돕고 싶어 지원한

이웃까지 다양한 사람과 마음들이 모였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조합원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전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런 사상이 나오기까지 무려 십자군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시민 자본의 출현 배경을 설명해주는 방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열띤 강의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의 사상적 배경을 확립해가던 시기의 세계사적

사건들과 그 의미, 그리고 레닌까지 아우르며 우리의 공부에 대한 열의를 한층

뜨겁게 달구어 주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오하다는 얘기가 있는 것 처럼

한 권의 책에는 세상의 모든 역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의미없는 공부란 없는 법이다.


누구는 마르크스가 한 물 간 인물이며 사상이라고도 하고,  4차 혁명과 인공지능이

대세인 이 시대에 무슨 쓸데없는 마르크스 공부냐고 핀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이 공부가 무척 재미있어 졌다.

시대는 다르지만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전망은

오래전부터 희망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더 나은 사회를 꿈 꿀 수

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그 시대에 사회구조를 분석하고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가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원했던 그 마음은 여전히 우리의

꿈이 아닌가.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일이 여전한 우리의 문제와 여전한 우리의 꿈들을

다시 찾아보는 과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시시하게 끝나면 또 어떤가.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고, 그 마음에 호응을 해 준 사람들이 모였고

이 모임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함께 하는데 이 자체만으로도 사실 나에겐

이미 선물이다.  이런 공동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다음주까지 책 1장을 읽고와서 다시 이야기 하기로 했다.

이 책 한권을 읽고 끝낼지, 또 다른 책이 궁금해질지 알 수 없다.

무겁지 않게 서로 좋아서 할 수 있는 만큼 나아가보는 거다.


예전엔 '공부'라는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정해져 있는 것들을 따라 가는 길은 그닥 힘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엔 내가 크느라고 내게 중요한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이 나이쯤 되고 보니 내 안에서 나오는 질문을 향하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런 마음은 얼마나 힘이 센지 느끼고 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남편과 자주 갈등이 생기고 권태기인지 갱년기인지

모를 감정의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이런 때야말로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이러다가 또 금방 마르크스가 시들해지면 다른 주제를 찾아가면 된다.

배우고 싶고 궁금한 주제들은 너무나 많다.

애 셋 키우고 집안 일도 많고, 글도 써야 하지만 그럴수록 읽고 싶은 책은

쌓여가고 알고 싶은 것들은 늘어난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면 된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있는데 남편과 삐걱이면 또 어떤가.

내가 힘나서 살다보면 아무렇지 않게 풀어지기도 할 것이다.

이래 저래 '공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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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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