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91일자로 복직했다. 아내는 작년 연말 갑상선암 수술과 올해 윤슬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병가와 육아휴직을 연달아 썼다. 이제 맞벌이의 시작이다윤슬이도 91일 개학을 했다.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선다. 91일 아침, 아내와 윤슬이는 둘 다 나에게 각각 망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각자가 다르다. 우리부부는 아내의 복직 전 날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와인 한 병을 마셨다. 내가 와인 딱 한 잔만 하자고 꼬드겼다. 명분은 육아휴직 마지막 날이니 이 날을 기리자는 것. 시작은 정말 와인 딱 한 잔만 하자는 맘이었는데, 한 병을 통째로 마셨다. 아내는 91일 아침 첫 출근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언제 와인 한 잔만 마시고 끝낸 적이 있냐당신 때문에 첫 출근을 피곤한 상태에서 하게 됐다는 질책을 받았다. 윤슬이는 내 손을 잡고 문 앞을 나서면서 오늘부터 개학이네. 망했다라고 말했다.

 

91일부터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일단 우리 부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내는 씻는다. 이러는 사이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아침을 차려준다. 아내를 위해서 커피도 한잔 준비한다. 아내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하고 나서 식탁에 앉아서 아이들과 같이 아침을 먹는다.

 

이때부터는 내가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씻고, 옷을 입을려면 바삐 서둘러야 한다. 내가 그러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아이들 옷을 입힌다. 첫째 윤슬이는 알아서 씻고 옷을 갈아입는 편. 둘째 은유는 아내가 옷을 입혀준다. 아내의 임무는 끝. 아내는 집을 나선다. 남자 셋이 안녕인사하고, 좀 여유가 있으면 한 여자와 세 남자가 돌아가면서 뽀뽀를 한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이제 내 차례. 윤슬이는 비교적 알아서 가방도 메고 안심폰을 챙겨가지만, 그래도 모르니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내가 확인한다. 은유는 아침에 꼭 장난감을 들고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어린이집에 장난감을 들고 가면 다른 아이들과 다툼의 소지도 생기고, 잃어버릴 수도 있다. 보통 장난감을 차 안에 두거나, 가방 안에 넣는 것으로 타협이 끝난다.

빌라앞_은유와윤슬이.jpg

아이들 뒤로 윤슬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바로 보인다. 은유는 이날도 장난감을 들고 나왔다.

  

빌라 현관 문을 나서면 윤슬이 학교 운동장이 바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빌라와 학교가 딱 붙어 있다. 덕분에 윤슬이는 입학 3일차부터 혼자 학교에 걸어 다녔다. 윤슬이와 인사하고 나서 은유를 차에 태우고 3분 거리 어린이집으로 간다. 전에는 어린이집 정문 바로 앞에 차를 세우고 바로 은유를 맡겼다. 요즘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에 세우면 어린이집 마당을 지나서 가게 되고, 정문 바로 앞에 세우면 마당을 거치지 않는다. 전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정문 앞에 세웠지만, 요즘에는 꽃도 피어있고 씨앗도 날아다니고 벌이랑 나비를 볼 수 있는 마당을 은유랑 같이 손잡고 걸어가는 게 좋다.

 

어제는 은유가 나풀나풀 날아가는 씨앗을 잡아 달라고 했다. 내가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을 피우고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냥 날아가게 하자라고 말했다. 은유는 싫어하면서 ~” 울기 시작했다. 대략 난감한 상황. 이를 어쩌지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솜털처럼 뭉쳐있는 개민들레(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민들레와 비슷하나 좀 다른 종. 추운 겨울을 빼고 일년 내내 꽃을 피운다) 씨앗이 보였다. 이 민들레 씨앗을 따서 은유에게 주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이렇게 은유도 등원을 무사히 하고 나도 출근했다.

 

어린이집마당_은유.jpg

   

아내가 복직한 첫 날 저녁, 내가 은유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그동안 아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은유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은유는 엄마는 어딨어?”라고 물었다. 내가 일하러 갔어라고 대답하자, 은유는 단 한마디로 이 상황을 표현했다. “~”.

 

은유야, 윤슬아~ 9월부터 엄마와 아빠가 같이 일을 하니까 이제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됐지만, 우리 같이 힘 모아 잘 헤쳐 나가자. 아이들아 사랑해. 육아휴직 하면서 가사와 육아 상당 부분을 맡아 준 아내도 고맙고 사랑해. 서로 잘 의논하고 지혜를 모으면 일도 육아도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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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제주에서 8살, 4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육아휴직도 두 번 했습니다. 4년 전에 각박한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벌인 일입니다. 우리 부부의 좌우명은 평등육아입니다. 사실 아내가 먼저 외치기 시작한 좌우명이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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