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2.jpg » 맛있게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아이들.

 

 

* 생생육아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엄마, 콩나물국밥 먹고 싶다. 밖에서 밥 먹으면 안 돼?”

점심에도 외식을 한 딸이 저녁에도 밖에 나가 저녁을 먹고 싶다고 한 날이었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아이들 먹거리에 대한 빨간 경고등이 켜졌을 때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냉장고부터 뒤졌다. 콩나물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남편이 텃밭에서 따온 호박이 보였다.
 
“민지야, 엄마가 비빔밥 해주면 어때? 콩나물무침도 하고, 호박도 볶고, 돼지고기도 양념해서 볶고.”
“좋아! 엄마가 해주는 비빔밥 좋지~집에서 밥 먹자!”
 
뜨거운 물에 콩나물을 살짝 데치고 찬물로 헹구었다.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깨 등을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얘들아~ 콩나물무침 간 좀 봐줄래?”

아이들은 한 입 먹어보더니 “와~ 맛있다! 엄마 진짜 맛있어. 더 먹고 싶어. 한 입만~한 입만~”이라라고 말했다. 한동안 나물 반찬을 안 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콩나물무침도 식탁에 오르지 않았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아이들의 환호성, 그리고 나도 요리꽝 엄마에서 요리왕 엄마로 거듭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그야말로 내 마음이 들썩였다. 내친김에 아이들에게 참나물도 사오라고 해서 참나물무침도 하고, 당근볶음, 호박양파볶음 등을 했다. 다양한 재료를 막 볶아서 따뜻한 밥 위에 고명을 놓고 고추장을 한 술 넣어 쓱쓱 비벼서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와, 환상적이야~ 내가 먹어도 맛있네~’ 
 
날마다 밥상을 차리던 남편은 아내가 웬일로 반찬을 하고 음식 맛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나물도 할 줄 알고~ 나보다 훨씬 낫네~ 당신이 이제 반찬 좀 해라. 나물 반찬 하면 되겠네~”라고 슬쩍 집안 일을 넘기려는 시도를 했다.
 
결혼 10년차인 나는 그동안 요리를 자주 하지 않았다. 입주 시터가 반찬을 만들어주었고, 주말이면 남편이 요리를 주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해본 적도 없어 항상 요리에 자신이 없었다. 어쩌다 요리를 해서 내놓으면 남편이 한 요리보다는 못해서 식구들에게 “맛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 아이도, 남편도 비빔밥을 두 그릇씩 먹으며 “맛있다”고 계속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순간의 환희를 잊지 못한다.
 
그날 식구들의 칭찬과 인정은 나를 무엇인가에 홀리게 하였던 모양이다. 이틀 뒤 기사를 마감하고 녹초가 된 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엌에 위풍당당하게 섰다. 설거지를 하고 거의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도 콩나물무침과 참나물무침을 해서 반찬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먹거리를 손수 준비해보겠다는 대견한 시도였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깨를 쭉 펴고 어젯밤에 만들어놓았던 반찬을 당당하게 식탁 위에 올렸다.

“얘들아~ 늦었다~ 어서 맛있게 밥 먹자~”

늦잠을 잔 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젓가락질로 밥을 헤집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아이들을 보는데 슬슬 마음 깊은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나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food1.jpg » 내가 한 반찬들.


“시간이 가고 있네~ 어서 밥 먹자! 너희 좋아하는 반찬이잖아”
“엄마, 나 밥 그만 먹을래. 밥맛이 없어”
“나도. 그만 먹을래. 배가 안고파”
“뭐라고? 그 정도도 안 먹으면 어떡해? 딱 한 숟가락 떴는데 그것도 안 먹으면 학교에 가서 어떻게 수업 들으려고!”
“반찬도 만날 똑같고, 밥맛이 별로 없다고~”
 
딸이 ‘반찬도 만날 똑같고’라고 말하는 순간, 내 머리 뚜껑이 열리면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뭐라고? 이것들이! 저녁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 한다는 말이 밥맛이 없다고? 그런 소리 하고 싶어? 응? 일하고 늦게 들어와 반찬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 차려줬더니 그런 소리가 나와? 너희들, 앞으로 과자 같은 것 절대 못 먹어. 과자 많이 먹으니까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 아냐!”
 
나는 과자가 놓인 곳으로 달려가 과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평소에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내 스스로도 그 순간 내가 하는 행동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해서 깜짝 놀랐다. 아이들도 어리둥절해하며 쥐죽은 듯 가만히 앉아 밥을 먹었다. 속으로는 ‘아, 이렇게 소리지르고 이런 방식으로 화내면 되지 않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순간 나는 나가 아니었다. 분노가 내 주인이 되어 내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더는 소리지르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꽥 한번 지르고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부리나케 학교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들이 나간 뒤 짐을 챙겨 나도 출근을 했다. 출근하면서 미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내 모습이 그려지면서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아이들이라고 밥이 항상 맛있을까? 나도 아침엔 밥맛 없을 때가 한두 번도 아닌데, 애들이 아침에 밥맛 없어서 좀 안 먹겠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밥을 한 숟가락만 먹는다고 애들이 죽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왜 그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까? 꼭 그렇게까지 과자를 내동댕이쳐가며 화를 냈어야 했을까? 아이들이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다 보고 있는데 나는 어쩌자고 그런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했을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내가 그토록 화가 난 이유는 그날 아침 나는 내가 만든 반찬을 아이들이 또다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 너무 맛있어~”라는 그 칭찬을 다시 듣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이다. 아이들이 밥을 안 먹고 가면 배고 고플까 봐 걱정을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침에도 내가 만든 반찬을 잘 먹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행동과 감정에 대한 분석이 끝나자 ‘어휴~ 못 말려~ 양선아. 그렇게까지 칭찬이 듣고 싶었던 거야? 나도 이제 음식 좀 하는 엄마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거야?’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토닥여주고 싶었다. 화가 난 나도 나이지만, 그렇게 음식도 잘 하는 엄마이고 싶어했던 나를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이런 사태를 겪은 뒤 친한 선배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내 얘기를 들은 선배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얘기 들으니 나 어렸을 적 생각난다. 우리 엄마도 일을 했거든. 그런데 내가 어떤 반찬이 맛있다고 하면 그걸 정말 질릴 때까지 해줘서 결국 그 음식을 싫어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갖고 계셨어. 내가 감자볶음을 맛있게 먹잖아. 그러면 정말 월화수목금 그 음식을 계속 해주는 거야. 그렇게 해주면 나는 그 음식만 봐도 토할 지경이 되곤 했지. 그때 우리 엄마가 왜 그랬는지 네 얘기를 들으니 알겠다. 엄마는 내가 맛있게 먹고, 맛있다는 칭찬을 해주니까 그 얘기를 다시 듣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구나.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라도 이틀 이상 먹으면 맛이 없어져.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음식에도 적용되더라고. 이제 아무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도 그 음식 계속 해주지 마~나처럼 그 음식을 싫어하게 된다~”
 
선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시 한번 다짐했다.

과유불급!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라도 이틀 이상 주지 말자.
또 음식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맛있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과 즐겁게 식사하면 된다. 맛있는 음식 두고 험악한 분위기에서 먹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니 될수록 즐거운 식탁 분위기를 만들자.

요리꽝 엄마에서 요리왕 엄마로 거듭났다고 혼자 마음대로 생각했더랬다. 그렇지만 요리의 세계는 이토록 만만하지도 않은 세계였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반찬이 있더라도 그것이 매일 나오면 지겨워하므로 계속 메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이번 계기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생활 속 지혜를 하나하나 터득해가고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이런 일을 겪으면서 후끈 달아오르던 요리에 대한 열정도 약간 식어버렸다. 아이들의 반응에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나, 이것도 나이려니 한다. 이러면서 하루하루 아이들과의 일상을 이어간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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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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