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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아이를 품고 있던 기간 동안 꿈을 참 많이 꾸었다. 대부분 좋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재연되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결혼 전의 가족들 사이에서 내 감정을 꼭꼭 숨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애만 태우고 있었다. 싸우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꾸역꾸역 밥을 차려 놓고는 눈치를 보며 이쪽 저쪽 기웃거려봐도 어느 한 사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작은 방 안에서 맴맴 돌았다. 꿈 바깥에서 꿈 속의 나를 보는 마음이 답답할 정도였다

 

십 년 전만해도 나는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심지어 가족들 앞에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어진 엄마 아빠의 다툼은 나의 감정보다는 부모의 감정을 더 빨리 알아채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그런 세월이 오래 되자 나는 어느새 소리에 관한 한 노이로제에 가까운 예민함을 갖게 됐다. 작게 열린 방 문틈 사이로 두런두런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나는 늘 신경이 곤두섰고, 심박수는 점점 크게 늘었다. 그 두런거림이 마침내 고함과 욕설이 되어 집안을 뒤흔들면 나는 작은 시골집 셋방 문을 열고 뛰쳐나가 바닥에 주저 앉아서는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그럴 때면 엄마 아빠는 넌 또 왜 그러냐며 다그치거나 화를 냈다. 싫다, 싸우지 말라, 그만하라,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일로 속이 상해 울 때도 누구 앞에서 드러내놓고 속 시원히 울어본 적이 없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한 학기 넘게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언어폭력을 당했을 때도,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도뜻대로 되지 않는 공부와 동아리 일에 힘겨웠을 때도늘 엄마나 동생과 한 방을 써야 했기에 잠자는 척 이불을 머리 끝까지 쓰고 숨을 참아가며 울었다. 그렇게 울다보면 머리도 아프고 코가 꽉 막혀 한참을 헤매다 잠들기 일쑤였다. 외가에 잠시 신세를 지던 시절엔 좁은 할머니 방에 객식구로 들어앉은 주제에 소리 내어 울 염치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나를 단련시켜온 나는, 늘 가족들 앞에서 냉정하고 싶었다. 내가 기대기엔 엄마 아빠 모두 너무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혼자서도 잘 하는사람, 두 사람에게 방해도 되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임신 기간 내내, 결혼 전 힘들었던 가족 관계를 떠올리는 꿈을 자주 꾸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하나씩, 하나씩 예전의 상처들을 끄집어내고 들여다보고 털어내는 작업을 반복할 수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그럴 때는 글로 써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결심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갈 나의 새 가족은,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모두가 서로를 구체적인 말로, 행동으로 지지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노라고. 다행히 내가 선택한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이미 나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으니, 아주 어렵지는 않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도서관에서 또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사람답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늘 깨어 있는 사람. 감정이 풍부하고, 언제나 사랑하고, 생기 있고, 진정성 있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사람. 혼자 두 발 딛고 오롯이 서서 깊이 사랑하고, 싸워야 할 땐 공정하게, 효과적으로 대항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약점과 강점 모두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그러면서 그는 가정이란 이런 사람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부모의 일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언제나 (미숙한)‘아이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할 때, 아이와 부모가 서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수용할 때, 사람 만들기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면에서 꽤나 오랫동안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는 데 익숙해진 나는 일찍부터 애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답게 살지는 못했다. 내 부모는 아이의 감정은 물론이고 당신들의 감정도 이해할 수 없어 늘 서로에게 악에 찬 분노와 원망만을 쏟아놓았고, 그만큼 당신들이 자식들에게 못난 부모임을 자책하며 괴로워했고, 그 몇 배로 외로워했다. 그리고 그 어쩌지 못하는 괴로움과 외로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멀리 있어 가까이 느낄 순 없지만, 알고 있다. 가까이 있어도 자식이 어찌 해 줄 수 없는 괴로움이고 외로움이라는 걸

 

그런 내게 아이가 왔다. 내 아이만큼은 사람답게 기르고 싶었다. 나처럼 냉정하고 모범생 같기만 한, 반쪽짜리 사람 말고, 울고 웃고 화낼 줄 아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아기였을 적부터,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보는 연습을 해왔다. 오늘 무슨 일이 있을 건지, 어떤 일은 왜 일어나는지, 아이가 옹알이도 하기 전부터 시시콜콜 일러주었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나 울 때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 여겼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욕구, 방향, 속도가 있다는 걸, 그러니 어른이라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를 내 마음대로 짐작하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늘 상기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나 역시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남편에게,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육아에 지친 날엔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이래이래서 힘들었노라 털어놓으며 울었다. 그냥 우는 걸로 속이 안 풀리는 날엔 짜증나!”를 연발하며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십만분의 일이라는, 그 흔치 않은 확률에 걸려든 내 아이와 우리의 인생에 기가 막히고 화가 날 땐, 그 아이를 안고 동동거리며 병원을 다니고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씩 걸려가며 일을 처리하러 다녀야 할 땐, “대체 내 인생은 왜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느냐고 소리내어 화 내고 탄식했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트고 난 다음부터는, 아이에게도 이야기했다. 엄마도 힘들고 피곤하다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마음이 아프다고. 슬프다고. 그러면 아이도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베개와 이불을 가져다 주며 쉬게 해주었다. 그런 나를 보고 자란 아이는, 이제 슬프면 슬프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말을 하며 내게 다가와 나의 위로를 구한다.  

 

요즘 육아에서는 아이 감정 읽어주기가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 부모의 감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19세기적 경구가 자주 들먹여지는 곳에서, 양육자로서의 엄마는 오히려 언제나 정신적으로 강인해야 한다고 강요되기 일쑤다. 특히 엄마들이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감정들은 엄마들의 자기검열에 걸려 여전히 잘 꺼내어지지도 않고, 어쩌다 어렵게, 용기 내어 속 얘기를 꺼내도 누구 하나 잘 들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힐난하거나 조롱하거나, 혐오한다. 하지만 부모 자신의 감정부터 잘 알아야 아이의 감정도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부모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사는 사람인 이상, 육아를 하면서 언제나 웃기만 할 수도, 언제나 인내하기만 할 수도 없다. 늘 온화하고 다정한, 그런 완벽한 부모, 혹은 그런 완벽한 부모 역할을 연기해낼 수 있는 부모란 없다.

 

버지니아 사티어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아이들은 부모의 성자 같은 면모, 완벽한 모습, 그런 것들보다는 부모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면서 더 깊은 신뢰를 쌓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 앞에서 웃고, 울고, 속상해하며 산다. 아이가 나를 따라 까르르 웃을 때, 아이가 와락 나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일 때, 아이가 눈물 흘리는 내게 휴지를 내밀어줄 때, 아이가 나를 안고 토닥이며 괜찮아, 그럴 때도 있는거야할 때, 나는 비로소 이 아이와 함께 조금씩 진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육아는 정말이지, ‘사람 만들기의 과정이다. 아이 뿐 아니라, 나를, 어른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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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처음으로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의 모양. 아이가 자라는 만큼, 아이가 그려내는 그림 속 사람도 점점 사람 꼴을 갖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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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사람만들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6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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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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