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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다.
여름방학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요즘.
다들 건강히 지내고 계시나요?
엄마들은 모두 무사^^하신지..?

방학 중에서도 여름방학은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즐거워할까,
어떻게 하면 이 긴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책도 많이 읽어 지식의 범위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면 좋을텐데 ...
부모로선 이런 기대와 조바심이 공존하는 시기인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겐 책이 먼저일까, 경험이 먼저일까.
물론, 아이들은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 호기심을 품기도 하고
경험을 통해 몰랐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거나 익숙해 지기도 한다.
또 책과 실제 경험 사이를 두루 오가며, 하나씩 배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만약, 책과 경험 중에 하나만 먼저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면
나는 무엇을 고르게 될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같아,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큰아이가 초등 시기를 모두 마친 부모로서, 내가 만약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경험'을 우선 순위로 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지난 몇 년 간의 시간동안
특히 여름방학마다 텃밭과 논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며 겪었던
생생한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사진으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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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실제 경험을 할 때, 먼저 우선시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 평소에 관심있어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텃밭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일단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부터 직접 보고 만지고 함께 성장을 지켜보았다.

우리집은 두 아이 모두 여름 채소나 과일 중에 옥수수를 가장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좋아하는데
옥수수 씨앗을 심은 뒤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수염이 자라는 과정까지
옥수수의 성장은 다른 채소보다 비주얼도 좀 특이해서
아이들이 참 재밌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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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사실들을 알게 된다.
경험에서 시작된 호기심이나 질문을 책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우연히 티비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새겨듣기도 한다.
옥수수를 사랑하는  두 아이와 함께, 텃밭을 다니면서 알게 된
옥수수 지식 한 가지,
옥수수의 수염 수와 알갱이 수가 같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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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하지만,
저 많은 알맹이와 새털같은 옥수수 수염을 직접 세어볼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이건 들끓는 모성애로도 해결될 수 없는 법.
그때 큰아이가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실제로 일일이 수염과 알갱이 수를 세어본 사람의 글을 찾아냈다.
워낙 수가 많고 깨알같아, 몇 개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직접 세어본 결과 거의 일치했다는 증언이었다.

옥수수의 생태원리를 담은 책을 보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데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확인한 사실이라 이 이야기를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두고두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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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를 짓는 생협 가족들과 나눈 채소들을 집에 가져왔을 때 사진인데
여름 채소들은 어쩌면 이리 색들이 곱고 먹음직스러울까!
노랑, 초록, 빨강, 보라, 물감세트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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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집안에서도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자, 삶의 기술이다.
완벽하게까진 못하더라도
아이 성격과 이해수준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경험해 두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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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좋아해서 자주 해먹는 부침게인데
부추, 감자, 당근, 양파, 이 네 가지 채소를 골고루 넣어 만들 때마다
아이는 이런 말을 한다.
팔레트에 물감 풀어놓았을 때 같다고 -
흰색, 노랑색, 주황, 초록, 연노랑 .. 정말 그렇네..

실제 경험을 많이 하는 육아가 제일 보람있고 즐거울 때가 바로 이럴 때다.
경험 뒤의 아이의 언어 표현이 점점 구체적이고 생생해 진다는 것.
본 대로, 느낀 대로 주저하지 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아이만의 언어, 아이만의 표현을 들을 때마다
똑같은 경험을 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보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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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당근을 캐고 잎 부분을 자르고 나면
저렇게 동그랗게 자국이 남는다.
저 동그란 부분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당근 맛이 좋고 달다.
이것도 아이들과 채소에 관심가지면서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마트에서 당근을 고를 때도 이 부분을 확인하며 고른다.

각각의 식재료를 잘 고르는 요령과 간단한 지식을 알아두면,
평생 살면서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일단, 재료를 맛있는 걸로 구하면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음식도 더 맛있어질테니
요리에 자신감도 늘어날 수 있고, 모든 일은 이렇게 다 이어진다는 것.
다양한 경험을 쌓아갈 때마다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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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보니, 아이들과 논까지 오게 되었다.

책도 자꾸 읽다보면 가지에 가지를 치면서 분야를 넓혀가는 것처럼

경험 역시 그렇다.

그냥 보면, 어떻게 저런 일까지! 싶을 수도 있지만,

경험의 끈과 호기심을 이어가다 보면 상상하지도 못한 굉장한 경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논농사는 관심만 있었을 뿐, 늘 근처에서만 보며 와... 하고 구경할 뿐이었다.

가끔 드라이브 삼아, 차를 타고 1시간쯤 달려

그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사고, 주변의 논을 구경하거나 산책하거나 했다.

아이들은 벼 사이를 점프하는 작은 개구리들을 만져보고 싶어했고

온갖 곤충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1년 내내 힘들게 농사짓는 분들의 논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그냥 보는 걸로만 만족하라며 아이들을 단속하기 바빴다.


그랬던 논을, 올해는 맘대로 첨벙첨벙 들어가 모심기 전체 과정에 참여하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성장하는 과정까지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한뼘을 겨우 넘었던 어린 모가 8월초에는 몇 배 크기로 자라 벌써 이삭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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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 만나는 가장 흔한 생물, 청개구리.

몸 색깔이 얼마나 이쁜 연두색인지, 또 벼 색깔과는 어찌 그렇게 감쪽같이 똑같은지.

덕분에 논에 다닌 지난 몇 달동안 둘째 아이는,

올챙이와 개구리 관련 자연과학 책을 수십권은 읽은 것 같다.

먼저 경험해서 관찰한 것을, 책에서 확인하고, 구체적인 지식의 깊이를 갖추는 과정.

아이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겠지만,

둘째는 확실히 큰아이에 비해, 책보다는 경험이 먼저인 타입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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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논에는 정말 재밌는 곤충들이 많았다.
사진 중간 쯤에 있는 곤충은 물자라인데,
나도 4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본 곤충이다.

아이 말로는 등에 뭔가를 얹은 채 다니는데, 그게 뭔지 찾아보고 싶다 했다.
논에 다녀온 주말 저녁, 밥을 먹고 치운 뒤
아빠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있었다.

물자라는 물장군과에 딸린 곤충으로, 민물에 산다.
봄철에 암컷이 수컷의 등에 알을 낳으며, 수컷은 알이 깰 때까지 등에 지고 다니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못이나 저수지 등의 잔잔한 물가에 살며, 작은 물고기나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리 나라 · 중국 · 일본 ·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Daum백과] 물자라학습그림백과,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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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물자라 등 위의 좁쌀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것들은 암컷이 낳아준 알이었던 것.

정말 신기했다. 아빠가 등 위에 업고다니면서 알을 키운다니!

좀 더 찾아보니, 물자라는 곤충 세계에서 아빠육아의 대표적인 존재였는데

논의 생물들을 관찰한 것 중에 이 물자라 이야기는

우리 가족 모두를 즐겁게 해 주었다.

육아의 신선한 대안을 곤충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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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독서로는 뒤질 일이 없을 듯한 네 사람이 모였던 예능프로,
<알쓸신잡>에서는 네 출연자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졌다.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의 책은?"


유희열은 음악을 하는 사람답게 <어떤 날>의 음반을 꼽았고,
황교익 음식 칼럼니스트는 <고양이 요람>을,

김영하 소설가는 <안나 카레니나>를,

유시민 작가는 <코스모스>라는 책을 골랐다.

위의 네 사람과는 조금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라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그림책을 선택한다.


그는 무인도에서는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도구를 만드는데는 무척 무지하지 않나,

그래서 여러 도구를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책을 골랐다며,

긴 소설과 심오한 내용의 책을 고른 사람들에게

그런 책을 읽으며 서서히 죽어가겠다는 뜻 아니나며, 깨알 디스를 한다.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책읽기는 아이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하지만, 실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 경험의 분량도

책과 공부만큼 균등하게 주어졌으면 한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자연이 너무 아름다운 요즘이다.

꼭 텃밭이 아니라도, 논이 아니라도

아이들과 오감을 통해 이 좋은 계절을 실컷 겪었으면..

8월 한달, 알차게 보내고

아이도 나도,

가을에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 다양한 경험이 아이들 글쓰기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다음 칼럼에 써 볼까 합니다.

   생생한 글쓰기의 비법,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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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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