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다엘

옛터 찾기

생모에 대한 궁금증이 분노로 바뀐 다엘…
뿌리는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리는 것

 
149967616898_20170711.JPG
다엘의 첫 신발. 다엘은 어디에 발을 딛든 그곳에 굳건히 뿌리내릴 것이다. 정은주
 
 
 
“나를 낳아준 분은 어디에 살아?”
 

다엘이 어릴 때 처음 생모에 대해 물었던 말이다. 이후 가끔 생각날 때마다 생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사는지 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그런 질문이 뜸해져서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낳아준 분에 대해 왜 안 물어봐? 궁금하지 않아?” “안 궁금해. 혹시 만나서 나를 데려간다고 하면 어떡해?”

 

다엘은 생모가 자신을 데려갈까봐 불안해하더니 이후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키울 준비도 안 됐으면서 왜 나를 낳고 포기한 거야? 난 안 만날 거야.” 다엘이 가진 불안이나 분노는 해소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상에는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서 태어나는 생명도 있으며 낳은 이의 처지는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내 생각이 언젠가 다엘의 가슴에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현행 입양특례법상 미혼모는 입양을 보내기 전에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출산 사실 공개를 두려워한 미혼모들이 아기를 유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입양가족모임에선 법 개정을 요구했다. ‘청소년 미혼모의 경우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익명 출산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많은 입양부모들이 법 개정을 위해 서명받는 과정에서 미혼모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입양부모가 들었던 말을 옮겨본다. “철부지 사랑 놀음의 결과에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혼모가 과거를 숨기고 새 출발 하는 걸 용서할 수 없어요. 당연히 호적에 글씨를 남겨야죠, 주홍글씨처럼.”

 

이토록 단호하고 경건한 태도라니! 오직 ‘정상 가족’ 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면, 불순한 존재이므로 주홍글씨를 새겨야 한다는 거다. 혼외 출생자를 멸시하던 구시대의 전통을 너무도 잘 지키는 순혈주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에게 일말의 공감도 없는 고도의 도덕성(?). 이런 엄숙주의는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닌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지 말라 외치고, 입양가족에게 낮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입양할 수 없으니 해외로 입양 보내야 한다는 세태에도 한몫했다. 그러면서 해외 입양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라 하니 희극이 따로 없다.

 

입양가족모임 ‘물타기연구소’ 소장 홍지희씨는 말한다.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지 말라는 것을 보니, 아마 먼 옛날 머리 검은 곰을 사람인 줄 알고 잘못 거두었다가 큰 화를 입은 모양”이라고. 그는 ‘뿌리 찾기’가 아닌 ‘옛터 찾기’라는 말을 제안했다. 우리 아이들은 뿌리 없는 존재가 아니며, 뿌리는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진심으로 공감한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69호(2017. 7. 10)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heart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34626/16c/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925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미친 말과 똥 거미 imagefile [3] 정은주 2017-08-28 8197
192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딸과 마음도 함께 따릉따릉 imagefile [2] 양선아 2017-08-24 12098
192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육아의 `달인'의 비법 imagefile [2] 홍창욱 2017-08-23 9632
192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생리 이야기 해 보자! imagefile [4] 신순화 2017-08-22 16284
1921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상처를 드러내는 법 image [3] 정은주 2017-08-21 8542
192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위풍당당 임최하늘 imagefile [1] 최형주 2017-08-21 8949
191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굳이 이렇게 한다 imagefile [7] 신순화 2017-08-18 12026
1918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제주 아빠의 평등육아 일기] 닭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imagefile [7] 박진현 2017-08-18 10636
191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험한 세월 살아가는 힘은 공부 imagefile [4] 신순화 2017-08-15 12490
1916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의 품, 우주의 품 imagefile [1] 최형주 2017-08-14 9316
1915 [윤은숙의 산전수전 육아수련] 부질없는 약속, 그래서 좋다 imagefile [3] 윤은숙 2017-08-13 9959
191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지지고 볶아도 어차피.. imagefile 신순화 2017-08-10 15308
1913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아이책] 한 아이 imagefile [3] 서이슬 2017-08-10 8913
1912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다엘의 여름방학, 미래를 꿈 꾸다 imagefile [1] 정은주 2017-08-07 8289
191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이에겐 책이 먼저일까, 경험이 먼저일까 imagefile [2] 윤영희 2017-08-07 11126
1910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아쉬움을 달래려고 숨을 나누어 쉰다 imagefile [2] 최형주 2017-08-02 9197
190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82년생 김지영과 70년생 신순화 imagefile [4] 신순화 2017-08-01 11441
1908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하지 않을 자유, 낳지 않을 자유 imagefile [4] 서이슬 2017-07-31 10576
»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뿌리 찾기, 옛터 찾기 image 정은주 2017-07-31 6688
1906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아빠의 평등육아 일기] 꿈나라에 가기 싫어! imagefile [5] 박진현 2017-07-28 8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