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외출을 하면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넌 누구 닮았니? 아빠 닮았니?”
엄마 얼굴로는 아무래도 그림이 안 나온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햇볕에 얼굴이 검게 그을려 좀 달라졌지만
어렸을 때 다엘은 눈에 띄는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네 살 때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다엘이
마취에서 깨어날 때였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다엘을 보고
“아기가 사슴처럼 예뻐요!”하고는 기대에 차서
내 얼굴을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순간 나는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말풍선의 글자를 보았다.
‘에이 씨….’
기대에 못 미치는 내 모습에 무언의 항의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입양가족으로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나와 다엘의 외모를 보고 뭔가 실마리가 안 풀린다는 듯 갸웃거리던 사람들이,
친정어머니를 포함하여 3대가 함께 있을 때는
'아, 네가 할머니를 닮았구나!'하고 다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모뿐 아니라 예민하고 명석한 것,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성격까지 조손 간에 너무 닮아서
우리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유전자가 공기 중에 전염이 되나?”

 

호수공원가족.jpg » 2년 전 여름, 공원에서 엄마, 할머니와 함께 한 다엘

 

어머니의 화려한 외모와 확연히 다른 나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살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가당찮은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 났을 때였다.
남학교인 데다 여교사가 달랑 2명뿐이었고
당시만 해도 고등학생들이 무척 순진한 시절이었다.

 

한번은 수업에 들어가자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우십니다.”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난 화가 나.”
아이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 왜요?”
“그건 마치 오늘따라 지구가 더 둥글어 보인다고 하는 말과 같기 때문이지.”

 

말 뜻을 이해하기 위한 2~3초가 흐른 후
아이들로부터 일제히 비명에 가까운 항의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어느날 한 가게에 다엘과 어머니와 함께 들어갔을 때였다.
다엘을 보고 잘 생겼다고 칭찬하던 가게주인이
어머니를 보고는 급 환영하면서 옆에 서있던 나를 밀치며 외쳤다.
“어머나! 실버모델 하셔도 되겠어요!”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되도록 눈에 안 띄게 몸을 움츠리며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수습해야 했다.

 

다엘을 입양할 때 나의 부모님은 두 말 않고 내 뜻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채 다엘을 맞이했던 어머니는
내 눈에 띌세라 다엘을 업고 혼자 베란다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고 한다.
손녀의 죽음과 딸의 이혼을 겪으며 아픔을 삭여야 했던 어머니가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이런 얘기도 한참 지난 요즘 와서 들려주신 내용이다.

 

다엘의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 어머니가 태몽을 꾼 적이 있다.
누군가 놓아두고 간 새파란 보석 목걸이를 집어 들고
한쪽 끈이 끊어진 걸 보고는 고쳐서 쓰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주머니에 집어 넣는 꿈이었다고 했다.

보석보다 더 귀한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앞날에 대해
당시 어머니는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요즘은 가끔 어머니가 오래 전 잃은 자신의 첫아들 얘길 하신다.
임신 7개월에 조산이 되어 하루 만에 숨진 아기가 너무나 잘 생겼었다고,
아기에게 젖을 물려준 옆집 아주머니가 거듭 얘기했단다.

그때 잃은 아기가 먼 길을 돌아 손자로 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는 거였다.
평소 윤회에 대한 믿음도 없는 분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건강을 잃은 어머니는
올해 초 공항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타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뉴질랜드의 아들 집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후엔
집 근처 외출도 힘들어 하신다.

 

언젠가 어머니의 삶과 꿈을 사진자서전으로 엮어보자고
내가 제안했을 때
과거의 사진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온 역사를 손주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용기 내어 정리 작업을 하겠다고 하신다.

 

본격적으로 사진 자서전을 만들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삶에 대해 다시 이곳에 글을 써봐야겠다.

 

어머니 생신.jpg » 며칠 전 생신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환히 웃으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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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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