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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엘의 사춘기 첫 신호는 만 10.7살에 포착됐다.
증상은 자전거 사랑이었다.
평소 불안과 두려움이 많았던 다엘은 자전거를 타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자유로움에 급격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학교에 다녀와서 조금이라도 더 자전거를 타기 위해
분초 단위로 시간을 아껴 쓴다.
엄마랑 눈 맞추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자신의 방에서 문 닫고 혼자 노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 기회를 틈 타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 여름엔 엄마 혼자 템플스테이 다녀오고 싶은데 어떨까?”
처음엔 흔쾌히 그러라고 하다가
곧 오락가락한다.
아무래도 무서워서 안될 것 같으니 함께 가겠단다.
어쩌면 이번이 다엘과 하는 마지막 템플스테이일지도.

 

두세 달 사이에 달라진 다엘을 보며
마음 한켠이 쓸쓸해지기도 했다.
내 품에 안겨오던 사랑스런 아기는
이제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다.

 

지인의 아들이 겪는 사춘기가 정점을 치닫는 걸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엄마의 십계명’을 생각해 봤다.

 

하나. 일상생활 속 아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다. 셀프 주유소에 가는 길, 자동적으로 머리 속에서 다엘과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유소 가서 카드를 꽂고 주유구를 열어 휘발유를 넣는 건 다엘이 눈을 반짝반짝 하며 좋아하는 일이다. 늘 아들이 해주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주유 방법도 잘 모르는 자신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의존하는 습관을 버려야 했다. 나는 씩씩하게 셀프 주유소로 차를 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나 홀로 주유에 성공했다.

 

둘. 아들 없는 시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호시탐탐 추구한다. 하고픈일의 목록을 짜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진심으로 원하도록 생각의 습관을 기른다. 그러다 보면 육아에 매어서 포기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행복한 마음이 들 것이다. 목록의 우선 순위는 홀로 영화 보기, 여행 하기, 도서관 가기, 지인들과 맘껏 수다 떨기 등이다.

 

셋. 양보할 수 없는 건 강력하게 밀고 나간다. 요즘 스마트폰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조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줄 지 안 줄 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식이다. 스마트폰의 폐해를 강조하던 시절을 마감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마트폰 사용을 기정 사실로 만든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몇 살 때, 어떤 방식으로 손에 넣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엘에게 ‘성년이 되어 스스로 돈 벌어서 스마트폰을 사라’고 한 건 그대로 밀고 나갈 참이다.

 

넷. 서서히 권력 이양을 한다. 지금까지는 미디어 접하는 시간을 내가 정했다. 이제 가족회의를 통해 아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서 협상 모드로 전환할 것이다. 그간 미디어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세뇌(?)시켜 놓았기 때문에 다엘이 무리한 주장을 하지는 않으리라.

 

다섯. 영리한 엄마보다 살짝 아둔한 쪽을 택한다. 교사 시절, 소위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을 대할 때 나만의 요령이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리셋하여 백지처럼 만드는 것이다. ‘너에 대한 어떤 나쁜 정보도 내게는 없다’라는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면 우호적인 관계가 쉽게 형성 되었다. 다엘을 대할 때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려 한다. ‘너의 어떤 면도 계산하지 않고 좋아할 거야, 나는 둔한 스타일이니까’. 내가 그리 섬세한 편이 못 되니 노력할 것도 없긴 하다.

 

여섯. 명상과 기도를 실천한다. 일상의 공간을 의례의 공간으로 바꾸는 일은 되도록 아들과 함께 한다. 다행히도 다엘은 촛불을 켜서 신성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명상촛불.jpg » 잠 자기 전 다엘과 명상할 때 켜놓는 촛불

 

 

일곱. 아들이 15살이 되면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어른으로서 첫 발을 딛는 의식, 즉 통과의례의 형식을 갖춰준다. 이를 통해 독립된 인격체인 아들에게 새롭게 예의를 갖춰 대하는 법을 익힌다.

 

여덟. 아들이 전적으로 내게 의존했던 작고 사랑스런 존재였음을 떠올리며 자꾸 미련이 남는다면, 다른 생물체에게 관심을 돌린다. 아름다운 자연, 세상의 약자들….

 

아홉. 내 몸에 지상에서의 유통 기한(?)이 있음을 잊지 말고 잘 사용한다.

 

열. 십계명을 지키라며 나 자신을 들볶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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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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