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스스로 뇌의 그릇을 만드는 영재 덕후들

김영훈 2017. 07. 14
조회수 19840 추천수 0

기억력 영재 L군


모 방송국에서 영재아이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는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실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든 암기하는 12살 기억력 영재 L군을 만났습니다. L군은 자신의 줄넘기 기록을 년/월/일 단위로 최고 기록 갯수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learn-2300141_960_720.jpg » 사진 픽사베이.

 

이 아이는 무한대로 이어지는 소수 원주율도 무려 340자리까지 외우고 있었습니다. L군은 마치 랩을 하는 것처럼 원주율을 외웠습니다. 원주율 179번째를 맞춰보란 질문에도 보란 듯이 정답을 맞추었습니다. L군은 점심 메뉴며 원소 기호며 자기가 필이 꽂히는 것이라면 뭐든 외워버리는 기억력 영재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 쓸데없는 것들을 외우면서 시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외우는 것을 부모나 동생을 붙들고 시연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가족이 모두 L군을 귀찮아하고 슬슬 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L군 신나서 재밌게 얘기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질 않았습니다. 아빠는 왜 쓸데없는 것을 외우냐고 못하게까지 하였습니다. 아이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방안의 온갖 벽에다 원주율표를 붙이고 끊임없이 외우는 것입니다. 잘 외우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기도하고 요약을 하고 머리속으로 리허설을 하는 등 뇌과학에서 말하는 기억력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여 점점 잘 외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지능검사를 시행한 결과 아이는 언어인식영역과 워킹메모리영역에서 뛰어난 결과를 보였습니다. 아이의 뇌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휘력과 배경지식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어휘력과 배경 지식이 많으면 워킹메모리가 필요할 때 수시로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워킹메모리를 비울 수 있어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워킹메모리를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언어인식영역과 워킹메모리가 뛰어나기 때문에 사고하고 문제해결하는데 워킹메모리를 사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기억력 영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L군이 천문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천문학과 같은 특정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천문학의 덕후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학과 관련된 수능 기출문제 22문제 중 오답은 단 3개였습니다. L군은 단순히 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원주율표를 외우면서 기억력 기술을 천문학에 적용하기 시작하여 알록달록 요약정리된 우주노트까지 만들었습니다. 원주율표를 외우느라 그릇을 키워놓으니까 천문학 분야에서 대학생수준의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해결력은 곧 창의력으로 이어지므로 L군은 영재의 요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원주율표를 외우면서 자기주도성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L군이 키워온 뇌의 그릇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세계기억력 챔피언십 한국대표, 멘사 출신 서울대생과 대결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과제는 세계 기억력 선수권 대회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카드 52장 외우기'였는데 L군은 그동안 원주율표를 외우면서 익혀온 기억력기술을 통해서 한 시간 안에 카드를 외울 수 있었습니다.

 

지능을 결정하는 열쇠는 시냅스


그러면 L군의 지능은 뇌과학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현대 신경생리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능을 결정하는 열쇠는 뉴런과 뉴런을 잇는 연결고리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은 가시처럼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를 한 돌기가 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전선처럼 특히 길게 뻗어있는데 그것을 축색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수상돌기입니다. 


star-209371_960_720.jpg » 연결. 사진 픽사베이.축색 돌기 끝은 다시 여러 줄기로 갈라져 그 끝이 부풀어 있는데 그것이 다른 뉴런의 수상 돌기와 접해있습니다. 이 접점을 시냅스라고 하는데 여기서 뉴런을 통해 전해오는 전기신호가 신경전달물질의 전달을 촉진하고 다른 뉴런의 수상 돌기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 하나하나가 1만에서 10만 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냅스가 효율적이고 고밀도로 형성될수록 두뇌 발달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L군의 뇌를 현미경으로 볼 수 있다면 워킹메모리를 담당한 뇌와 배경지식을 담당한 뇌의 시냅스가 고밀도로 증가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능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은 유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IQ를 비교해보면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자녀의 지능은 부모의 지능을 닮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언어 발달의 약 60%와 공간지각의 약 50%는 유전에 의한 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능이 유전에 의하여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지능이 아무리 좋아도 평범한 지능의 자녀가 있으며, 아무리 높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고 하더라도 환경이 좋아야만 그 지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유전과 환경 어느 쪽이 더 지능에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는 임신 당시의 상황, 출생 후의 환경 및 교육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지능의 아이는 부모의 지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에게 지능검사를 해보면 IQ의 차이는 평균 6에 불과하고 10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란성 쌍둥이나 일반 형제는 IQ의 차이가 평균 10에 가깝고 때로는 30이상의 큰 차이를 나타내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 중에서 태어나자마자 따로 살아온 경우에는 IQ의 차이가 평균 8.2이고 같은 가정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의 차이는 평균 6이하입니다. 이처럼 출생 후 환경과 교육에 따라 지능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능은 부모의 교육 정도와 경제적 여건, 아이가 다니는 교육기관의 수준,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적용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결정하는데 출생 전 태내 환경이 유전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피츠버그 대학에서 나온 연구에 의하며 인간의 IQ를 결정하는데 유전자의 역할 비율은 4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충분한 영양 공급과 편안한 마음, 유해 물질 차단 등 지금까지 발달 전문가들이 강조해 왔던 전통적 요인들이 유전적 요소와 맞먹거나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균 IQ는 100입니다. IQ 130 이상을 영재로 보지만, 기준이 아주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나 교육기관의 의견은 다양하게 나뉘는데, 최근에는 영재의 기준을 창의적 사고방식이나 특수 재능을 포함해 IQ 125 이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래서 영재는 선천적인 요인이 많겠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지능지수가 120이 넘는 그냥 똑똑한 아이일 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오늘날의 부모들은 평범한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도 영재로 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어려서부터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려고 하는 부모 조바심 때문에 평범한 아이들도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바라본 영재교육의 실태, 영재 교육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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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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