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는 길.jpg


"오늘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같이 외울 시 고를 사람!!"

"저요, 이번에는 제 차례예요. 뭐가 좋을까....

음.... 아, 이거요. '빨래'

한 번 읽어볼께요.


빨래

     윤 동 주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 하는 오후

쨍쨍한 칠월의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와, 짧은데 좋다. 엄마는 벌써 외워진거 같애.

옜날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빨랫줄을 매달아서 빨래를 널었어"

"맞아요. 우리집 마당에도 단풍나무에 빨랫줄 달려 있었지요?"

"응, 근데 해태 털도 많이 날리고 흙먼지도 날려서 지금은 떼 버렸어.

대신 2층 옥상에다 빨랫줄 매달라고 해야겠다, 아빠한테..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만희네 집'에도 옥상에서 빨래 너는

엄마옆에서 막 애들이 장난치는 장면 나오는데.."

"이불 널어논 속에 막 숨고요"

"윤동주 시인은 빨랫줄에 흰 빨래들이 널려서 흔들리는 모습이

꼭 자기들끼리 귓속얘기하는 것 처럼 보였나봐.

한 번 상상해봐. 시는 머리속으로 풍경처럼 떠올려야돼. 풍경이 떠오르면

시는 저절로 외워져.

마당에 있는 길다란 빨랫줄에 흰 바지랑, 웃옷이랑 그런 빨래들이

널려서 바람에 흔들흔들 거리는 모습 생각해봐.

엄마는 벌써 다 외웠는데 같이 암송해볼 사람!"

"나요, 나요!"


우리는 목청껏 시를 외우며 초여름 아침길을 걸었다.

햇볕이 아침부터 뜨거웠다.

지난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그의 시들이 새롭게 관심을 받게

되었을때 우리도 윤동주의 시들을 같이 암송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해를 넘겼다.

올해는 윤동주가 지은 동시들을 외우고 있는데 윤동주는 많은 동시들을 남겼다.

열한 살, 여덞살 두 딸은 윤동주의 시, 열 대여섯편을 거뜬히 외우게 되었다.

매일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셋이서 낭랑하게 암송한 덕이다.


학교가는 길3.jpg


"길가에 풀들을 싹 베었네? 마른 풀 냄새 난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자는 침대가 마른풀을 넣어 만든 이불이었는데..

엤날에는 깃털이불 같은게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은 마른풀을 넣어서 이불을

만들었나봐"

"냄새가 좋았을 거 같애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와서 다시 자기 침대에 자게 됬을때 하이디가 그 마른풀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이 냄새가 정말 그리웠어요.. 하잖아"

"나중에 하이디 친구.... 그 누구더라? 아, 클라라요. 클라라가 놀러와서

그 침대에서 같이 자지요"

"그런데 양치기 페터가 하이디랑 클라라가 사이좋게 노는게 샘나고 질투나서

클라라가 타고 다니는 완전 비싼 휠체어를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려 버려.

그게 없으면 클라라가 도시로 돌아갈 줄 알고.."

"근데 휠체어가 없어진 덕분에 걷게 되잖아요"

"하이디 할아버지가 부축해주면서 걸어보자고 도와주겠다고 하잖아.

그전까지 누구도 클라라에게 다시 걸어보라고 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클라라는 자기가 걸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휠체어도 없고

하니까 용기를 내게 된 거지."

"나중에 아빠가 왔을때 클라라가 걸어가죠, 아빠한테.."

"클라라 아빠는 자기 딸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라고 기뻐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읽어주세요. 다 까먹었어요"

"그 재밌는 걸 까먹다니... 집에가서 원작을 다시 찾아보자"


떠들어대며 부지런히 걸어가는 우리 뒤로 향긋한 마른풀 냄새가 오래

따라왔다.


학교가는 길2.jpg


"엄마, 옥수수가 많이 자랐어요!"

"그러게.. '토토로'에 보면 사쯔끼랑 메이랑 칸타 할머니네 옥수수밭을 막

돌아다니면서 익은 옥수수 따는 장면 나오잖아.

할머니네 밭은 보물산 같아요.. 하며 좋아하고.."

"그리고 시원한데 앉아서 간식으로 오이같은거 먹잖아요."

"맞아. 메이는 꼭 언니 사쯔끼가 먼저 먹어야 먹더라?

맛있나, 안 맛있나 언니 먹는거 꼭 확인하고서 먹어"

"오이를요, 한 입 먼저 베어서 퉤 뱉어 버리고 먹더라요"

"오이 꼭지가 쓰니까,  그건 베어 버리고 먹는거지.

시원하게 시냇물에 담궜다가 먹느거라 진짜 맛있을거야.

칸타 할머니가 이 오이랑 옥수수는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거라서

이걸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얘기하시잖아.

메이가 '우리 엄마도 이거 먹으면 건강해져요?' 물었더니

'그렇고말고' 하는 바람에 메이가 옥수수 한자루 들고

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갔다 주려고 집을 나가는 바람에

미아가 되고, 마을이 발칵 뒤집어 지고.."

"사쯔끼가 토토로한테 부탁해서 고양이버스 타고 구해주러 가요"

"사쯔끼가 '메이'하고 부르니까 메이가 막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언니야' 하며 부르다가 만나서 펑펑 울고..

이 옥수수도 맛있겠다. "

"옥수수 꽃도 참 이뻐요"

"벌들이 우글우글 히히"

"빨리 옥수수가 익어서 쪄 먹고 싶다. 완전 맛있는데.."

"여름방학 하면 아침마다 찰옥수수 실컷 쪄 줄께"


아이들은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면서 교문앞에서 손을 바이바이 흔들며

사라졌다.

나는 다시 혼자서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 걸었다.


학교 옆 옥수수 밭을 지나고, 정자를 지나고, 할어버지네 비닐하우스를 지나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마리 강아지가 사는 농장을 지나

갈치저수지로 이어지는 긴 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 그늘에서 잠깐씩 쉴때 손바닥만한 윤동주의 시집을 다시 읽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외우고 싶은 좋은 시 하나를 찾아 살짝 접어 두었다.

마른풀 냄새 나는 그늘길과 밤꽃이 떨어져 내리는 아래를 지나

'마루'와 '평상'이란 이쁜 이름을 가진 두 마리 개들이 나를 지켜보는

보리밥집 식당을 지나서 우리집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올랐다.


매일 학교까지 걸어가는 30여분간 우리는 같이 본 영화, 에니메이션,

동화책 이야기부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들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도 단골메뉴고  '토토로'와 다양한 동화속 주인공들이

제일 많이 등장한다. 물론 윤동주의 시들도 늘 함께다.

차를 타고 가면 5분이면 스쳐갈 곳을 천천히 걸어가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수많은 풍경을 만나는 이 시간을 무척 사랑한다.

가끔은 다리아프다고,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매일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보석들이 제 안에 쌓여가는지 아이들은 지금은 모른다.

지금 쌓이는 보석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어쩌면 어른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일테니..


나도 매일 아침 이 길을 걷는 동안은 너희처럼 아이가 된다.

하이디도 다시 만나고, 토토로도 다시 만나는...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

이 집에 사는 동안만 허락된 이 소중한 시간을 알뜰하게 열심히 사랑해야지.

우리가 진짜 우리것이라고 할수 있는 것들이란 바로 우리 안에 간직한

풍경과 이야기일 뿐 이란다.

그런니가 우리들의 소중한 아침길이 할 수 있는 한 오래 오래 이어지길

바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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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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