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SizeRender (2).jpg





초등학교 백일장부터 부담스러웠다누구는 술술 쓰는 것 같은데 나는 한 문장한 문장이 턱 막혔다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흩어 사라지는 말과 달리 기록되고 보존된다는 속성이 주는 부담감에 지레 피하곤 했다암기력과 성실성이 중요했던 학부과정을 지나 석사과정에 들어오면서 '공부는 곧 읽고 쓰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피할 길이 없었다특히 전공인 여성학은 텍스트와 나의 문제의식삶의 경험이 만나는 '쪽글'을 자주 써야했다텍스트는 어려웠고겨우 이해했더라도 문제의식과 삶의 서사가 빈약했던 때라 글쓰기는 고행에 가까웠다마감시간 전까지 하릴없이 인터넷을 하다가 자정이 넘어 몽롱해질 때쯤 겨우 한 줄씩 뽑아내던 것이 생각난다한 그릇 마중물이 없었던 마른 우물 같은 글쓰기였다그래도 그 과정을 3년 동안 수행한 덕분에 삶의 어떤 부분을 포착하는 눈과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감각이 생겼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달라졌다글쓰기가 재미있어졌고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뭔가를 적게 되었다아이를 낳은 뒤 24평 아파트에 갇혀 24시간 아이에게 매여 있는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수유를 할 때 스마트폰을 곁눈질 하거나 조금씩 책을 읽고아이 잘 때 재빠르게 집안일을 해치우는 일상사회와 단절되어 낮에 말 걸어주는 성인이 오직 택배아저씨 뿐이었다조용한 집에서 홀로 며칠 동안 같은 생각을 골똘히 하다미시적으로 보기 때문에 보이는 아주 사소한 것들과 혼자 웅얼거리던 생각을 페이스북에 풀어내었다친구들의 좋아요와 공감의 댓글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보잘 것 없는 삶의 이야기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다는 것이 기뻤다글쓰기는 원치 않게 집에 유배된 나에게는 유일하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다니며 나도 숨통이 좀 트이니 글쓰기는 삶에서 점점 멀어져갔다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던가글을 쓰지 않아도 살만해졌다그러다 다시 글쓰기와 가까워진 것은 둘째를 출산하고 난 뒤였다예상했던 것보다 더 첫째 아이는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네 살 한참 떼를 쓸 나이에 동생 스트레스가 더 해져 아이는 사소한 것에도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매일 지뢰밭을 넘는 기분이었다여기를 넘어가면 저기서 터졌다최악의 상황은 남편의 야근과 회식이 있는 날 밤에 벌어졌다아이의 떼를 받아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는 이성을 잃고 아이에게 화를 퍼부었다.

 

자신의 밑바닥을 볼 때절망감이 가득 찰 때가슴 속에서 불이 올라올 때몸속에서 말이 차오를 때 글을 썼다아니 글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날 것 그대로의 아우성이었다주로 아이에게 무섭게 화를 낸 날의 반성문이거나이상은 높지만 생활에 발목 잡힌 한 여자가 울컥했던 순간의 기록이었다그렇게 몇 장을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나를 다독거리고 있었다그래이만큼 한 것도 잘 한 거야잘하고 있어정인그러니 힘을 내자그렇게 계절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일기장 한 권을 다 채웠다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구구절절히 설명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마음을 토해 내는 글쓰기를 하면서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수 있었다내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정신실)이었다그간 나는 느리지만 한 뼘 자랐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조금 컸고 둘째도 어린이집에 다닌다나는 남편의 부재에도 그럭저럭 하루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그래도 내 일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여전히 손발이 묶인 것 같다얼마 전에 신형철 산문집을 읽다 서문에서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읽고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읽고 쓰기를 삶의 전부로 가져가기엔 다리에 차고 있는 모래주머니가 무겁게 느껴진다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생활에서 시작된 글쓰기이니 생활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로서 내가 서 있는 풍경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붙드는 일, 목소리를 잃지 않는 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는 일, 새삼 글쓰기에 고맙다.  

 


---------------------------------------


정숙님 셋째 소식을 들으며, [엄마와 글쓰기]라는 테마를 보며 그동안 눈팅만 했던 저도 한 마디 보태고 싶어져 묵은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도 엄마와 나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우리 동지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요!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3188 [자유글] 아침부터 습한게 느껴지네요. bupaman 2017-06-27 199
3187 [자유글] 디퓨저 향이 괜찮네요. bupaman 2017-06-23 321
» [자유글] [엄마와 글쓰기]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imagefile [5] 시에나 2017-06-23 710
3185 [자유글] [엄마와 글쓰기] 아이셋 엄마, 아이넷 엄마 imagefile [2] 윤영희 2017-06-22 762
3184 [자유글] [엄마와 글쓰기] 너는 밥에 김치 나는 김밥 imagefile [4] 안정숙 2017-06-22 830
3183 [자유글]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요.. bupaman 2017-06-22 273
3182 [자유글] 목이 계속 뻐근하네요. bupaman 2017-06-21 208
3181 [건강] 내몸에주는 최고의휴식 '건강단식캠프' 접수중입니다-[수수팥떡가족사랑연대] image okemos 2017-06-19 246
3180 [책읽는부모] <김밥은 왜 김밥이 되었을까?> 돼지 김~밥! imagefile 강모씨 2017-06-15 732
3179 [자유글] [엄마와 글쓰기] 또 먹고 싶어 [5] 난엄마다 2017-06-14 447
3178 [자유글] 집에가면서 치킨이나 사들고.. bupaman 2017-06-13 342
3177 [자유글] 머리가 자꾸 지끈지끈... [1] bupaman 2017-06-12 382
3176 [자유글] 경계에 서서 [2] 난엄마다 2017-06-12 332
3175 [자유글] [엄마와 글쓰기] 딸들을 위한 생리 노래 image [2] 윤영희 2017-06-11 812
3174 [자유글] 수많은 넋을 기리며 [2] 난엄마다 2017-06-11 599
3173 [자유글] 금요일이 제일 좋네요~ㅎ [1] bupaman 2017-06-09 346
3172 [직장맘] 세번째 육아휴직 imagefile [6] 강모씨 2017-06-09 731
3171 [자유글] 금요일아 얼른되라~ [1] bupaman 2017-06-08 309
3170 [책읽는부모] 돼지김밥 보드게임 imagefile [2] 푸르메 2017-06-07 762
3169 [자유글] 내일 드디어 쉬는 날이네요~ bupaman 2017-06-05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