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번째 무인도 추억

당일, 아들은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주섬주섬 아들에게 먹을 것을 싸주었다. 가는 도중 아들은 10 여명의 친구, 선후배들과 통화를 했다. 2시가 집합 시간인데 12시에 도착했다. 아들에게 아빠학교에 올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싫다고 거절한다. 그래서 무인도에 함께 갔던 10년 동생인 결이와 신이에게 이 사실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논리로 이야기를 했더니 100미터 앞에서 찍겠다고 말한다. 아들과 사진을 찍고 차 한 잔을 마시니 1시가 되었고, 아들은 이제 집에 가시라고 말한다. 아들은 엄마가 싸준 음식이 든 종이 가방을 들고 이내 사라졌다.
다음 날, 아내와 외식을 하기로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초밥을 먹으러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초밥은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인데 아들도 없는데 내가 먹을 수가 없어요”라고 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거절한다.
작년, 아들은 엄마차와 아빠차를 운전하다 각각 1번의 접촉사고를 냈다. 그리고 연초에 아예 부부보험에서 아들을 추가했다. 50만원 정도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자동차 열쇠를 아들에게 주며 당부의 말을 했다. “네가 아직도 초보라서 그런데 아빠의 자동차를 타고 출발하기 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에게 전화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너도 긴장감이 있어서 안전운전에 도움이 될거야.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이 말에 동의했다.
그후, 중 3까지 했던 원격놀이(아빠와 아이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지만 전화 소통을 하루에 1분동안 하는 놀이)를 군대에 가기 전까지 다시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전에 전화가 온다. “아빠, 오늘 차 씁니다” 그러면 “그래”가 대답의 전부였다. 저녁에 강의나 글을 쓰고 있으면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아빠, 지금 집에 도착했어요” 그러면 “수고했다‘ 이 말이 전부였다. 이 놀이는 곧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통이었다. 일주일에 3~4일을 아빠의 차를 운전하니 늘 아들에게 전화가 오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5월 6일은 아들과 무인도로 1박 2일 답사를 떠났다. 한 달 전, 아들에게 무인도 답사를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바쁘다며 한 번 생각을 해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 가겠다고 말한다. 무인도는 아들에게 특별한 장소다. 아들에게 그동안 어디가 좋았냐고 물으면 ‘무인도의 모래위에서 야외 돗자리를 깔고,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6살부터 아빠와 무인도를 다니기 시작해서 고3까지 34번을 다녀왔고 이번이 35번째이다. 무인도를 처음 가던 6살, 도착해서 숲을 지나고 있는데 바닥에서 짹짹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푸드덕거리고 있다. 아들은 이 장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무인도에 도착해서 점심은 소라를 채취를 한 후에 쪄서 먹었다. 그리고 아들의 특기인 불장난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백사장에 밀려든 다양한 나무들을 주워서 저녁이 되기 전부터 불을 피웠다. 이 불위에 굴을 따서 구워먹는 석화구이를 라면과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11시가 되어 나는 잠자리에 들었고, 아들의 불장난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 멋진 추억이 만들어졌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전날에 딸이 집에 찾아왔다. 딸은 올 2월에 졸업을 했고, 작년 4월에 취업을 했고, 재작년 8월에 독립을 해서 자취를 한다. 그리고 엄마와 나에게 편지와 봉투를 준다. 그리고 “아빠, 그 봉투는 주무시기 전에 펴보세요”라고 말한다. ‘아니, 뭐가 들었길레 유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기 전, 엽서에 쓰여진 감사의 글을 읽은 후에 봉투를 열었다. 현금이 들어있었다. 순간, 나도 놀랐다. 며칠 후, 딸과 통화를 하던 중에 왜 돈을 넣었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자신이 아빠에게 돈을 받기만 했지 드린 적이 없어서 이벤트 개념으로 현금을 넣었다고 말한다. 사실, 맞는 말이지만 아빠도 돈을 버는데 딸의 돈을 받기에는 염치가 없는 듯이 불편했다.
6월 10일은 딸이 옥상 텃밭에서 친구 4명과 파티를 했다. 한 달 전, 딸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옥상에서 친구들과 파티 해도 되요?” 그 말에 당장 허락을 하고, 맥주는 아빠가 쏜다고 했다. 딸은 4월과 5월에 옥상에 1번씩 들었다. 아직 식물들이 성장할 시기라 꽃도 변변하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작년과 재작년에 가꾸어 놓은 옥상텃밭의 모습을 봤기에 딸은 파티장소로 옥상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모든 아빠는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는 인색하며 또한 그것은 아빠의 자유 시간을 빼았는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와 놀이를 꺼려하거나 혹은 도망을 가는 아빠가 많다. 그 결과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이 생기고 있다. 첫째, 초등학교 1학년의 20~30%가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라는 사실이다. 이 병은 한 마디로 놀이부족으로 생긴다. 아빠가 잘 놀아주면 저절로 예방이 된다. 둘째, 사춘기가 되면 집안이 뒤집어진다. 요즘은 영양상태가 좋아서 아이의 사춘기가 3~4학년에 시작을 하기도 한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와 자주 싸우거나 혹은 반목과 갈등이 심각해진다. 또한 중학생이 되면 아빠와 아이와의 대화가 단절되고 지속된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아이와 남남처럼 느껴진다. 그즈음, 아빠가 정년퇴임을 하면 아빠는 아이에게 왕따를 당하는 비극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아이와의 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문학적인 사고를 해보자. 또한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 해보자. 왜 아이와 놀아주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자. 결론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참으로 요상하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려고 하면 파랑새와 같이 행복이 자꾸 도망을 간다. 하지만 나의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 저절로 행복이 찾아온다는 점하다. 그래서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곧 아내를 가장 사랑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결국 행복은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으며, 부메랑처럼 행복으로 돌아온다. 또한 행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소통인데 너와 내가 서로 마주보기에서 시작된다. 바로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감이 활발해지고, 소통이 열리기 시작한다. 놀이는 곧 아이와 눈을 자주 마주치는 놀이다.
나는 20년 동안 아이들과 놀았다. 아니, 아이들이 아빠를 위해서 놀아주었다. 그래서 5,000가지의 놀이자료를 가지고 있고, 또한 대학생까지 원격인증놀이와 서점놀이 등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늘 소통이 원활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관련글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