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6.jpg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앵두 파는 아낙네가 된다.

마당에 있는 여러 그루의 앵두나무에서 열매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팔 생각까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실컷 먹고, 친정 부모님이 가져다 드시고, 이웃과 나누어도

앵두는 많았다. 얻어 먹어 본 사람들이 앵두 좀 따서 팔라고 조르기 시작하자

그러면 한번 팔아 볼까? 시작했던 일이 몇 해 전이다.

 

올해는 귀찮아서 안 하려고 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앵두까지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러다가 앵두가 익어서 우두두 쏟아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 아까운 것들을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될까봐 부랴부랴 아이들 반 밴드에

올렸다. 몇 통이라도 팔면 덜 아까우려니... 생각했는데 일이 커졌다.

아주 커졌다.

막내 반에서만 무려 스므통 가까운 주문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큰 애 반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500g 들어가는 통에 가득 담아 5천원씩 받았는데 주문받은 양을 돈으로 따져보니

10만원 돈이 넘었다.

나는 눈이 반짝 떠졌다. 오호.. 괜찮은데?

10만원이면 여름 신상 원피스를 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예!!

 

그리하여 나는 주문 받은 날 아침 9시부터 앵두를 따기 시작했다.

앵두따서 돈 벌 생각에 아침 먹는 것도 잊었다. 앵두 따다 유난히 크고 잘 익은

것들을 몇개씩 입에 넣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앵두는 넘치게 많았다.

금새 10만원이 들어올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신이 났다.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절반쯤 따고 보니 따기 쉬운 곳에 있는 앵두들이 죄다 털렸다.

그 다음부터는 빽뺵한 가지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높은 가지에 있는\

앵두들을 따야 한다.

일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고 따면 감각이 둔해서 알이 자꾸 굴러떨어져버린다.

그래서 맨손으로 따는데 가지에 긁히기가 일쑤다.

앵두나무 사이로 벋어있는 환삼덩굴이나 가시덩굴도 고약하게

괴롭혔다.

안방 창가 앞에 있는 앵두나무에는 열매가 흐드러지게 많아서

소쿠리를 안고 덤볐다가 앵두나무 안에다 집을 짓고 사는게 틀림없는

벌들한테 공격을 받았다.

손등을 쏘였는데 끔찍하게 아팠다. 꿀벌보다 조금 더 큰 벌이

내 머리에서 무섭게 윙윙거리고 있었다.

기겁을 해서 도망쳤다.

어쩔 수 없이 마당끝에 있는 여러그무 몰려있는 앵두나무에서

열매를 따야 한다.

비탈길가쪽에 열매가 많아서 의자를 놓고도 따고 사다리도

가져와보고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가며 앵두를 땄다.

나뭇가지 부스러기며 말라붙은 앵두꽃들이 온몸으로 떨어졌다.

햇볕도 뜨거웠다.

앵두를 탐하는 온갖 벌레들로 몰려들었다.

노린재가 달려들고, 커다란 쐐기벌레를 앵두와 같이 따기도 했다.

다리가 긴 거미들도 손등위를 돌아다녔다. 나비와 벌들도 많았다.

벌레에 꽤 둔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깜짝깜짝 놀라 손을 털었다.

힘들게 한 소쿠리를 채우면 집으로 가져와 식탁위에 쏟아놓고

알을 골라야 한다.

물러서 터진 것들, 벌레 먹은 것들, 덜 익은 것들을 고르다보면

속에 숨어있던 벌레들도 같이 기어 나왔다.

허리도 아프도 다리고 아프고 손도 아팠다.

 

앵두 7.jpg

 

좋은 알들로 통이 채워지면 앵두 잎사귀 두개로 장식해서 뚜껑을 덮는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학교나 아파트 단지로 배달을 간다.

돈 10만원을 거저 벌리가 없다.

 

아파트를 떠나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텃밭에 농사를 짓기 전까지

나는 내가 먹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내 식탁까지 오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머리로는 좋은 음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유기농 매장 이용하는 일은

열심이었으나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그 반듯하고 좋은 상품들이

어떤 손길들을 거쳤는지 실감할 수 없었다.

내가 농사를 짓고, 앵두를 팔게 되자 그 과정들과 손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단으로 묶여있는 부추, 대파 한단에 어떤 손길들이 더해져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은 대관령 고랭지 밭에서 품일을 하셨다.

새벽 네 다섯시에 나가 밤 아홉시는 되어야 돌아오셨다.

변변찮은 도시락을 싸 가서 하루 종일 10시간도 넘게 일 하고 받으시는 돈은

고작 6만여원이었다. 일흔이 넘은 고령자들에게 돌아오는 일거리는 늘 그랬다.

그거라도 한번 빠지면 안 시켜준다고 어머님은 기를 쓰고 다니셨다.

어느날은 끝도 없이 넓은 파 밭에서 일 하셨다는데 파를 뽑아와서 흙을 털고

누런잎 떼어내고 가지런히 다듬어 한단씩 묶는 일을 종일 하셨단다.

그렇게 일 한 품 값 중 10여만원을 준다 준다 하면서 안 준다고 속상해 하셨다.

전화번호 달라고, 내가 받아드리겠다고 나서자 그러면 다음부터 일 안 준다고

우리가 나서면 안된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품일 하던 밭둑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어머님 유품 중 낡은 수첩에는 일 해주고 못 받은 돈들이 여러곳 적혀 있었다.

3만원, 5만원, 7만 5천원...

그 숫자들을 보는데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돈을 받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희미하게 적혀있는 연락처도 없는 그 돈들을

받아낼 방법이 없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너무 너무 화가 났다.

어머님이 애써서 일 해준 대가는 그렇게 영원히 보답없는 숫자들로만 남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시장에 나와있는 대파 한단 볼 떄마다 어머님 생각났다.

그 파들을 뽑고 다듬었을 거칠고 애쓰는 손들이 보였다. 그 손들의 주인들은

제대로 일한값을 다 받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쓰렸다.

 

우리가 먹는 딸기에는 열악한 인권속에서 제대로 보상받지도 못하는

노동에 시달리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눈물이 스며있다.

한겨울에 말끔하게 세척되어 나오는 시금치들을 볼 때마다 찬물에

이것들을 행구었을 손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함부로, 무심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어느것도 없다.

 

그날 나는 여덟시간 앵두 스물 세통을 땄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국수로 때우고, 저녁은 모임시간에 쫒겨 몇 술 떠가며

늦도록 아파트 단지로 배달을 다녔다.

그리고 10여만원을 벌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내 노동은 그나마 덜 힘들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나와 내게 앵두을 건네받은 반 친구 엄마들은

그 앵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온 것인지 모를것이다.

앵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작고 촘촘하게 얽혀있는 가지들 사이를

훑어가며 손으로 앵두알을 일일이 따 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따 온 앵두알을 일일이 골라담은 수고가 어떤 것인지 알지못할것이다.

그저 그들에게는 통안에 담겨 있는 구슬처럼 이쁜 붉은 알들만 황홀할것이다.

 

이틀동안 스물일곱통의 앵두를 팔아서 13만원을 벌었다.

여름 원피스를 사네, 맛난 것을 사먹네.. 했던 마음은 애진작에 쏙 들어갔다.

너무 귀한 돈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벌어온 돈은 참 쉽게도 써 왔구나... 가슴을 치고 있다.

궁리궁리 하다가 언젠가 세계여행을 가려고 모아두는 통장에 넣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이 돈은 어느 먼 나라의 거리에서 몇 끼의 따듯한 밥,

혹은 시원한 음료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애쓴 보람이 있다.

 

이제 앵두는 제일 꼭대기가지에만 조르르 달려있다.

볕을 제일 많이 받고, 사람 손이 덜 타서 최고로 크고 맛있는 알 들이다.

그 앵두는 일요일이 생일인 아들의 케익 위를 이쁘게 장식할 것이다.

 

애쓴 나도 잘 익은 앵두 한 알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상큼한 붉은 물이 입안에 퍼진다.

이른 여름의 기운이 담뿍 들어있는 계절의 맛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한알의 앵두가 내게 일러준 많은 것들을

되새겨 본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27617/a93/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885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나는 죽음에 적극 반대한다 imagefile [3] 정은주 2017-06-20 8394
188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돈 보다 더 귀한 것 imagefile [11] 신순화 2017-06-20 16919
188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스토리가 있는 육아 imagefile [3] 윤영희 2017-06-19 10511
188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청와대에서 온 손님 imagefile [4] 홍창욱 2017-06-18 9756
»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앵두 한 알의 세상 imagefile [12] 신순화 2017-06-15 14621
1880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육아도 재해가 있다 imagefile [6] 박진현 2017-06-15 8510
1879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부엌-텃밭-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육아 imagefile [8] 윤영희 2017-06-13 10596
187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소리.. 그 소리 imagefile [2] 신순화 2017-06-08 11345
187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그래, 아내에게도 친구가 필요해 imagefile [1] 홍창욱 2017-06-06 9514
1876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중학생 엄마들이 들려준 이야기 (1) imagefile [3] 강남구 2017-06-05 12127
1875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너의 용기, 나의 두려움 imagefile [1] 정은주 2017-06-05 9093
187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그 강가에 다시 서다 imagefile [2] 신순화 2017-06-01 13008
1873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 달 imagefile [2] 최형주 2017-05-31 9697
1872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대안교육, 고민과 만족 사이 imagefile [3] 정은주 2017-05-29 9661
187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어린이식당, 그 1년 동안의 이야기 imagefile [4] 윤영희 2017-05-29 13262
1870 [박수진 기자의 둘째엄마의 대차대조표] 육아 휴직 대차대조표 imagefile [2] 박수진 2017-05-24 9049
186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리를 키운 건 8할이 수다!! imagefile [4] 신순화 2017-05-24 11596
1868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괜찮으냐고 묻지 마세요 imagefile [4] 정은주 2017-05-22 12833
1867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갔다 imagefile [4] hyunbaro 2017-05-19 9385
1866 [이승준 기자의 주양육자 성장기] ‘깨어나라, 육아 동지들’ imagefile [1] 이승준 2017-05-18 8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