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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병은 아이의 일부일 뿐… 드러내 공감 얻어 행복 2배

양선아 2017. 06. 13
조회수 4485 추천수 0

[뇌전증 아이 키우는 황수빈씨 조언]


내 아이가 왜? 인정하기 싫었다

 

‘정상아’로 되돌리고 싶어

역술가·민간요법사 찾고 부적도 쓰고

 

별 짓을 다해도 소용 없었다

절망 넘어 원망과 분노가 커졌다

 

그랬던 그가 180도 달라졌다 

병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512_3.jpg »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황수빈씨와 아이. 황수빈씨 제공

“처음엔 뭐라도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아이가 뇌전증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3년 전 아들이 뇌전증 진단을 받았을 때, 황수빈(33)씨의 머리는 하얘졌다. 과거에는 간질이라고 불렀던 이 병은 뇌에 경기파라는 일반인과 다른 뇌파가 흘러 발생한다. 이 병을 앓으면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지고 발작을 일으킨다. 국내 뇌전증 환자의 약 69%가 만 1살에서 만 19살 아동·청소년기에 발생한다.


황씨는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이 병에 대해 잘 몰랐다. 또 정상아와 비정상아라는 틀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내 아이가 그런 병에 걸릴 리 없어’라고 부정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정상아’로 되돌리고 싶었다. 역술가를 찾아가고 민간 요법사도 찾았다. 막대한 돈을 들여 천도재를 지내고 부적도 썼다. 생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잠자는 아이의 배에 생닭을 칭칭 매달기도 했다. 다 소용없었다.


틈틈이 쓴 글들 모아 책도 펴내


국내 뇌전증 환자는 2015년 기준 약 13만7760명이고, 9살 이하 환자는 1만575명 정도 된다. 뇌전증 아동은 경련과 발작을 조절하기 위해 최소 2~3년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약물의 독성이나 부작용으로 주의력 장애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환자의 70%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진다. 의사는 “감기에 걸렸다 낫는 것처럼 뇌가 감기에 걸렸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뭘 해도 안 되니까 정말 절망스러웠어요. 그때부터는 원망과 분노가 커지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하는 ‘몹쓸 생각’도 했다. 애초 남편과의 선 자리를 주선해 결혼하게 한 친정 엄마에게 “왜 그랬느냐”며 따지기도 했다. 출근이라는 명분으로 아이와 자신만 남겨둔 채 밖에 나가는 남편도 미웠다. 아이만 보면 ‘너 때문에 사람 만날 시간도 없어’ ‘너 때문에 운동도 못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좀 나아졌어?” “이유가 뭐래?”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싫어 사람도 피했다.

512_2.jpg »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황수빈씨는 처음에는 아이 병을 부정했으나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사진은 경련과 발작으로 인해 입원한 아이를 간호하면서도 아이와 진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황씨의 모습이다. 황수빈씨 제공

그랬던 그가 이제는 180도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밝은 얼굴로 아이에게 날마다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아이의 발작으로 밤새 잠을 설쳤지만 웃으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 모임도 나간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관련 강연을 듣고, 자신이 썼던 글을 모아 최근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는 책도 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했을까?


영유아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 많은 체력과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이도 힘든데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6년 한국아동간호학회지에 실린 ‘뇌전증 아동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 영향요인 분석’(장미나·김희순)이라는 논문을 보면, 뇌전증 아동의 부모 중 절반가량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뇌전증 아동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는 정상 아동이나 천식 아동의 부모에 비해 더 높다. 또 어머니의 양육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어머니의 우울 수준이 높고 언어적 학대의 발생률이 높다. 특히 뇌전증 아동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살펴보면, 아동의 질병 요인보다는 부모의 교육 수준과 양육 효능감, 부부 의사소통 수준 정도가 양육 스트레스에 더 영향을 준다.


양육 효능감 쑥쑥


이 논문 결과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황씨가 극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양육 효능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지지와 공감은 변화의 밑거름이었다. 양육 효능감이란,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자신의 역량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말한다. 황씨가 아이의 병을 부정할 땐 ‘나 같은 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양육 효능감이 바닥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이의 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이의 병은 아이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 뒤 양육 효능감은 높아졌다.


“아이가 정상아로 돌아가야만 행복한 게 아니라,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프지 않은 날은 아프지 않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 부모로서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죠.”


정상아로 돌아가야 행복한 게 아니라

아프면 아픈대로 

안 아픈 날은 안 아픈대로 행복했다

 

아이도 되레 친구가 많이 생기고

발작 빈도도 기적처럼 줄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황씨가 힘들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책을 손에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힘든 어느 날, 그는 <가짜부모 진짜부모>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했고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옥복녀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육아서였다. 옥씨는 아이가 4살 때 남편과 사별했다. 그 뒤로 5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이자 우울증 환자로 지내다, 어느 날 꿈속에서 망가진 딸과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황씨는 자신과 다른 아픔이지만 아픔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삶을 사는 옥씨를 삶의 모델로 생각하기로 했다. 황씨는 인터넷을 통해 옥씨에게 연락했고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옥씨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황씨는 이후 ‘책과 글쓰기로 인생을 요리하는 북셰프맘’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의 병이 치부라고 생각하고 숨기고 살았어요. 드러내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막상 드러냈더니 우려했던 일들은 생기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이의 병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면서, 오히려 아이에게는 유치원에서 친구가 생겼다. 기적처럼 예전보다 아이의 발작 빈도도 줄었다. 원망, 분노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살고 있네”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


경험 나누고 책 인세 기부도


달라진 삶 속에서 그는 뇌전증에 대한 편견을 깨고 뇌전증을 앓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작은 행동에도 나섰다. 책 인세를 한국뇌전증협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뇌전증이 아니더라도 공황 장애를 겪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왕따를 당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건넸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더 이상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이 그런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뇌전증에 대한 편견도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면서 안 아프고 사는 사람 없잖아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데, 잘 몰라서 발작하는 것만 보고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뇌전증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작은 힘이 되고 싶다는 그는 “아이가 세상을 축제로 보게 되길” 빌며 오늘도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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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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