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가 냉랭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 하고 아내가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하는데 오늘은 달랐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작은 방에 가보니 첫째가 엄마가 화가 났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이웃엄마와 아내가 평소 때처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엄마의 어린 딸이 없어져서 한참을 찾으러 다니고 회사 다니던 아빠까지 집에 올 정도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어린 아이를 봤던 다른 아이가 뽀뇨와 그 어린 아이가 함께 아파트 외진 곳으로 가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그 길을 따라 가다보니 둘이 놀고 있더라고.. 이웃 엄마는 혹여나 아이를 잃어 버린게 아닌가 하고 너무 놀라 눈물까지 보였기에 아이를 찾자마자 바로 집으로 갔다고 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잃어버릴 뻔 했는데 찾았고 또 아무 탈이 없는데왜 아내가 화가 났는지 의아했다. 뽀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도 다른 아이를 따라가서 생긴 일이라며 자기에게 화를 내는 엄마에게 도리어 화가 났다고 했다. 저녁을 천천히 먹으며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니 누구 편을 들기 보다는 아내 마음이 많이 상한 듯 보였고 아이에게 지난 일을 가지고 주의를 주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사실 아내가 화가 난데는 예전에 뽀뇨가 사고 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절친 또래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장난을 쳐서 아이가 다칠 뻔했고 함께 있던 절친 엄마가 놀래서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이후에 아이들끼리는 절친으로 지내지만 엄마끼리는 그때 기억때문인지 별로 소통이 없다는 아내의 이야기 속에 속상함이 묻어났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집을 이사한 후에 유치원을 두 번 이나 바꾸는 통에 안 그래도 숫기가 없는 뽀뇨가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는데, 동네 절친 마저 등을 돌리는가 싶어 아내는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사건이 생겼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웃 엄마가 평소 자주 이야기하던 뽀뇨의 친구 엄마였고 놀이터에서 종종 어울리며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지인중에 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내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뽀뇨가 어울릴 친구가 하나 줄어드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아내의 지인 한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대신 나서기로 했다. 평소에 뽀뇨 보다 숫기가 더 없는 아내여서 오늘 아니면 풀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밥 먹다 말고 “**엄마 집주소 알아요?”, “아니요. 잘 모르는데요?”, “카톡이나 전화로 한번 물어봐주세요. 내가 사과하러 갈테니”. 아내에게 지인분의 동호수를 알아내고 뽀뇨를 앞세워 회사에서 가져온 제철 농산물을 챙겨 들었다.

딩동. 우리가 가는 줄 알고 아이 아빠와 아이가 현관에서 반갑게 문을 열었다. “오늘 일 때문에 너무 놀라셨죠? 혹시 **어머니 계셔요?”, “에이, 아이들끼리 일인데요 뭘. 애를 소홀히 본 잘못도 있죠. 여보. 뽀뇨네 왔어요조금 뒤에 이웃엄마가 멋쩍어 하며 나왔다. “뽀뇨,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꾸벅.. “제가 제주 농산물 꾸러미 일을 하는데요. 매주 목요일에 이렇게 남은 농산물을 조금씩 집으로 가져와요. 오늘 가져온 쪄먹는 감자랑 조생양파, 콜라비를 좀 드릴게요. 속상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뽀뇨와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현관문을 여니 아내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래.. ‘재택근무하며 동화 쓰는라 바쁜 아내에게도 친구가 필요 했구나싶어 마음이 짠했다. 아내를 대신해 용기 내길 잘했다.

    

<뽀뇨 돌 때 아내와 나는 '뽀로로'를 합창했다. 아내는마이크 든 모습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다>

뽀뇨돌 2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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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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