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초등학교가 집 가까운 곳에 있어
큰 고민 없이 다엘의 입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얼마나 유별나게 키우려고 대안학교에 보냈냐고 묻는 지인에게
나의 답은 어찌 보면 평범했다.
경쟁교육이 없는 곳을 원해서.


순위를 매기기 위한 시험 등 외적인 강제가 없다는 건
타고난 자생력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해진 교과서 없이 아이들의 상황에 맞추어
교사들이 만든 교재로 수업을 하는 것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나는 다엘의 초등 입학과 함께 알게 된 중등 대안학교에서
영어 강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교과서 아닌 영어 이야기책으로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자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첫 책을 끝낸 후 다음 교재로
영어책을 수준별로 제시하고 선택해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다양한 책을 다 읽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가건물의 찜통더위 속에
축사용(?) 대형 선풍기를 껐다 켰다 하며 수업을 했었다.
이런 환경에 대해 아이들이 불만 한 마디 내비치지 않는 것도 기특했지만
학습 의욕이 생생히 살아있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다엘의 학교 교육과정 중 일반학교와 공통된 것은 수학이다.
교과서를 참고로 해서 수학 수업을 진행하는데
공교육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는 걸로 보인다.
다엘이 5학년이 된 후 어느 날,
수학이 어렵다고 하소연하기에 내용을 훑어보고는
그 충격을 일상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어
민중문학(?)의 형식을 빌어 보았다.

 

초등5년 전심전력    노는데에 집중하여
근육튼튼 키도쑥쑥   장한아들 키웠다고
자화자찬 화통웃음   안빈낙도 누렸더니
청천벽력 어느순간   아드님의 고백일세
수학공부 어렵다고   눈물뚝뚝 왠말인가
수학책을 들춰보니   약분통분 기약분수
최대공약 최소공배   외계어가 따로없네
초등수학 수준보고   멘붕와서 우왕좌왕
정신수습 하고보니   나만홀로 딴세상에
독야청청 살았던가   기초연산 할라치면
손가락이 동원되는   우리아들 수학실력
공부라면 학을떼는   어미땜에 이리됐나
구구단을 끝냈다고   손뼉치며 칭찬한뒤
아들공부 나몰라라   덮어뒀던 지난시간
나의업보 돌아보니   웃음밖에 안나오네  
실성하면 아니된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이비에스 초등수학   들어가서 살펴보니  
그야말로 별천지라   심오할손 한국교육
대한민국 초등생들   위대하고 영명하다  
세계1위 수학실력    초등부터 싹텄구나
늦었지만 발심하여   세계적인 수학자로
우리아들 키워볼까   오늘하루 백일몽에
아들안고 위로하며   새출발을 꿈꿔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엘은
공부가 어렵다고 눈물 쏟은 적이 언제였냐는 듯
하교 후엔 가방을 현관에 던져놓고 뛰어나간다.
전심전력을 다해 놀고 나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슬라이딩한다.
나 역시 새출발의 장황했던 다짐은 깨끗이 잊고
다엘의 요리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다엘의 특기인 숙주나물과 시금치나물 무침의 강점을 살려가야 하는데…

 

대안학교를 끝까지 다닐 조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교사회에 대한 믿음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으로서의 교사가 완벽할 수 없음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전체 대안교육 연대를 통해 성장하는 활동가로서,
집단지성으로서의 교사회에 대한 신뢰는
내가 대안교육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최종적인 힘이다.

낮은 보수에 고강도의 노동,
쉼없이 자기 연수를 해야 하는 대안학교 교사는
안정된 주류 직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 전체를 투신한 이들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 입지를 부모로서 간과한다면
대안학교 생활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학교 시간표 중 다엘이 좋아하는 산책과 행복 시간이 있고
점심시간 영양사 선생님의 식단 덕에 토속적인 입맛을 갖게 된 것,
학기마다 들살이(여행)를 통해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들살이를 앞 둔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함께 준비를 하고
여행지에서는 조별 요리경연 후 서로 음식을 나눈다.
취침 전 동생들을 도와서 씻도록 하는 것은
고학년 형과 누나들의 몫이다.

 

다엘의들살이.jpg » 1학년 때 들살이 사진. 다엘을 보고 잠시 정차한 버스 기사와 어르신들의 표정이 따뜻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다.

 

대안교육을 한다고 해서
기성사회에서 완벽히 벗어난 이상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대안적 삶을 찾아가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도
고민하는 사람으로, 공동체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다.

 

대안교육이 공교육의 교육과정을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공교육에서도 대안교육의 실천을 백안시하지 않을 때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혁신학교의 사례들을 보며
그런 접점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청소년기를 향해 쑥쑥 커가는 다엘에게서
무한긍정의 힘을 볼 때면 매일매일이 새출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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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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