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의 옛 물건을 정리하다가
(중2 아이의 초등2학년 때 물건을 이제야 정리하는 나란 엄마;;)
발견한 아이의 그림일기 한 장.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작은 그림카드처럼 이어 그렸는데
빙수, 수박, 옥수수, 장수풍뎅이, 사마귀, 매미, 수족관,
수영장, 아이스크림, 토마토, 오이 ...
깨알같은 초딩의 그림들,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쓱쓱 툭툭 그린 그림인데도
너무 귀여워서 예전 추억이 방울방울.

날짜를 보니, 초등2학년 때였는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큰아이가 이때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어땠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는 거예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큰아이가 초등 2,3학년이었던 그 때는 엄마인 내가 너무 힘든 시기라
아이를 세세하게 봐주지 못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더군요.
딸 하나만 오래 키우다가 아들을 낳고나니,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손이 많이 가는 둘째 핑계를 대며, 큰아이는 이제 초등학생도 되었으니
스스로 알아서 해주었음.. 하고 유언무언으로 바라고 또 부추겼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리워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큰아이의 그 시절.
그림으로나마 오래 만나고 있는데, 한가지 걸리는 게 있었어요.
각 단어마다 빠짐없이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단 한 곳에 글만 있고
그림이 빠져있는 거죠.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에게 밥을 먹으며
이 그림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이거 누가 그린 거야??" 그러더군요.
누군누구야. 너지;; @@
이제 중학생쯤 되고 나니,
좀 어눌해보이는 글씨나 그림은 죄다 자기 남동생 것인 걸로 아네요.

"근데 너 여기 왜 '놀이공원'이라 쓴 부분엔 그림을 안 그렸어??"
물었더니,
"아.. 그거? 우리 식구는 맨날 동생 어리다고, 놀이공원에는 안 갔잖아요.
  가 본 적이 없으니까 뭘 그려야 될지 몰라서 그랬겠지 뭐."
"그럼 그때 놀이공원 가고 싶다고 그래보지. 네가 가고싶다 하면 갔을텐데.."
"얘기해도 그때 엄마는 금방 까먹고.. 아마 그랬을 걸?!"
... ...
사람많고 오래 줄서서 타야하는 놀이공원 같은델 원래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큰아이가 한창 그런 걸 타고 싶어하는 시기가 되어서도
은근히 어린 둘째 핑계 대면서 '가면 고생한다'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곤 했던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무튼, 올 여름방학엔 무조건
젤 무섭다고 소문난 놀이공원 가는 걸로;
큰아이에게 미안한 부모의 마음은 언제쯤 치유될 수 있을까요.
아이의 어린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우리 아이는
오늘, 듬뿍 마주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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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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