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혼자 와도 괜찮아요
숙제를 가지고 와도 괜찮아요
함께 놀면서 저녁을 먹어요
아이와 어른, 동네 사람 누구라도 함께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 마을의 어린이식당이 이번 5월에
꼭 1주년을 맞이했다.
베이비트리에도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아이나 어른, 노인들까지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시민운동이다.
2013년 도쿄에서 시작된 어린이식당은
2017년 현재 전국에 400여 곳을 넘어서고 있다.

도쿄 근처에서 살고 있는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이 어린이식당을
우리 마을에서 같은 생협을 이용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2016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 어린이식당이 지난 1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것이다.
사실, 너무 사연이 많아 다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는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청와대에서 딱새 둥지 속의 새끼들을 걱정하는 대통령 이야기를
들으며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꿈과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치 않는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태어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자! 우리 마을 어린이식당으로 잠깐 놀러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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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식당이 열리는 날은

일단 그 날 필요한 식재료를 수거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식당 오픈 몇 달 만에, 이미 각 식재료의 기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는데

동네 텃밭을 가꾸는 주민 한 분이 제철 채소들을(위 사진 모습),

유기농 두부를 만드는 우리 마을의 두부공장에서 두부와 두유를,

동네 빵집에서는 그날 팔고 남은 빵들을,

전액 무료로 기부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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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열리는 생협 건물에서 걸어 2,3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 빵집.
우리 식당 멤버가 찾아가면, 기부할 빵을 넉넉하게 준비해 주신다.

"오늘은 통밀 식빵이랑, 치즈가 들어간 빵이 많아요. 맛있게 드세요!"

지난 1년동안 어김없이 이어져 온
젊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이 가게와의 인연.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먹는 것으로 잇는 우리 마을의 네트워크.. 어린이식당이 아니었다면,
이 빵집과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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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동네 빵집에서 식재료들이 모이고
주식이 되는 쌀이나 국수, 면류는 이미 기부받은 양이 너무 많아 충분하다.
식당 조리실에서는 오후 3시 이후가 되면, 자원봉사자 분들이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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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준비된
40인분의 채소 반찬들, 후식용 과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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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어린이식당의 조리팀 리더를 맡고 있다.
식단을 짜거나 메인요리를 책임지고 있는데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메뉴에 한국 음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위 사진은 김밥을 40인분 만든 날의 모습!
한일관계가 예전같진 않지만, 지난 15년간의 한류 영향인지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초등학교 급식 메뉴로도 나물이나 비빔밥 등은 정기적으로 등장한다.
우리 식당에선 아이, 어른 모두에게 비빔밥이 가장 인기인데


채소 반찬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비빔밥으로 한그릇 음식을 만들어주면
이렇게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우리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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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출석부에 도장찍듯 빠짐없이 참석하는 초등 남아군단이 있다.

적게는 5,6명, 많을 때는 10명 쯤 모이는 이 아이들.

밥도 빵도 두 그릇씩 먹는, 한창 클 때인 이 아이들을 실컷 먹일 때가 제일 뿌듯하다.

집도 가깝고 이 공간에도 익숙해진 초등 고학년 이후의 아이들은

부모 없이도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편하게 식당을 드나든다.

가끔 아이들의 부모님이 오셔서 어떤 곳인가, 보러 오시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하시기도 하고,

때론 쌀이나 간식을 기부해 주시기도 하고, 설거지를 도와주시기도 한다.


이미, 식당운영이 3,4년을 넘긴 다른 지역의 어린이식당에서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던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이나 어른으로 자라

어린이식당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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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식당은 빈곤층의 아이들을 위한 무료 혹은 저가의 식사를 제공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일본 전국 400여개의 어린이식당 모두가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생협 회원이 많은 우리 마을 식당의 경우는,

되도록 유기농 재료를 이용해 동네 엄마들이 집밥과 다름없이

식품첨가물을 쓰지 않은 한 끼 식사를 만드는 걸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돈이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라해도

부모가 제때에 따뜻한 식사를 차려주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건강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은 아이들이

타인에게도 사회에도 신뢰를 가지고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 사진 속, 돼지고기 간장조림 정식은 우리 식당의 1주년 기념 메뉴였는데

정말 따뜻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이 맛의 기억으로 식당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내일 하루 또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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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을 열기 무섭게 하나둘 찾아오는 동네 주민들.
저 멀리 초등 고정 멤버들이 있고, 자주 오시는 노인분들,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
잠든 아기를 업은 채, 식사를 하는 젊은 아빠 몇몇은
밥과 된장국을 리필하시며 정말 행복해했다.
보는 우리까지 다 행복^^
어린 아이 키울 때, 누가 차려주는 밥 한끼,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너무 잘 아니까.

이렇게 1년간 쉼없이 달려왔다.
많이 경험했고, 많이 배웠고, 많이 깨달았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것도 모두 우리의 자산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크게 느낀 건
사람들 각자 속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 '변했으면 좋겠다'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
라는 씨앗같은 마음이 수도 없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런 마음들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그런 소중한 마음을 어떻게 상처받지 않게 소중하게 키워갈 것인가다.
일본의 어린이식당이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한 곳에 모아지는 계기와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꼭 한 살이 된 우리 마을 어린이식당.
어떻게 성장해 갈지, 어떻게 키워가야 할 지, 걱정 반 기대 반이지만,
1년 전에도, 1년이 지난 지금도,
다음엔 어떤 음식으로 아이들을 기쁘게 해 줄까..
비용 걱정없이도 그런 고민만 행복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지난 1년동안 우리 지역의 여러 신문, 방송, 라디오 각 매체에 소개가 되는 것은 물론
거의 식당개최일마다 기자와 카메라가 찾아오고, 옆 마을에서 어린이식당을 열고 싶은
시민들이 견학을 왔다.
한국 온라인 매체나 대안교육잡지에 나는 이 소식들을 소개했고
마을의 대안적인 삶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께 많은 연락을 받았다.
내가 쓴 어린이식당 글을 읽고,
제주에서는 벌써 어린이식당을 시작한 부모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며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일본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어린이식당도 많아졌다.
시장이 직접 어린이식당을 견학하고 밥을 먹고 가는 이야기가 뉴스에도 나왔다.
일단 시작하고 잘 가꾸어가다보면 도움의 손길은 넘치도록 다가온다.

자기계발보다 동네계발이 더 필요하단 말이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혼자 끙끙대기보다 한발짝만 더 세상 앞으로 나와
함께 연대하고 꿈을 꾼다면
지금보단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은 이번 5월, 그 어려운 일을 현실로 이뤄냈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그걸 부러워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런 작은 성취들을 이뤄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더 빨리 커버리기 전에,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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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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