삘긴머리 앤.jpg

 

얘들아, 이거 엄마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이야, 빨간 머리 앤..

벌써 만들어진지 35주년이 됬네? 그런데도 여전히 너무 재밌어..

엄마가 젊었을때 꿈이, 이 담에 딸을 낳아서 그 딸이 컸을때 빨간 머리 앤을 같이

보고 읽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워도 하고 그러는 거 였는데

이제 너희들이 이만큼 커서 같이 보면서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어렸을때는 그냥 재밌는 만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서 다시 보니까

이 만화가 원작을 정말 충실하게 반영했더라. 긴 대사도 다 살리고..

물론 책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지만, 이 만화도 너희랑 꼭 같이 보고 싶었거든.

어른이 되서 보니까 예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다 보이는거야. 등장인물의 마음,

감정같은 것들이 다 이해되고... 그러니까 모든 장면이 다 뭉클해지더라.

예를 들면 앤이 매튜 아저씨를 처음 기차역에서 만나서 초록지붕집까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 같은 거 말이야.

 

앤은 정말 너무 너무 좋아하잖아. 이제까지 한번도 누구의 아이가 되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부터는 초록 지붕집의 아이가 된다고 좋아하잖아.

너무 행복해서 아침부터 여러번 팔을 꼬집어 볼 만큼 앤은 설레고 기대하고

좋아하는데 옆에서 그런 말을 들어가며 이 아이가 집에 도착했을때

사내아이가 아니라서 키울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떨지

염려하는 매튜의 마음은 또 어떻고..

 

빨간 머리 앤 3.jpg

 

초록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 앤이 지낸 시절들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말 마음 아파.

신생아때 부모님이 모두 죽고, 이웃들 집을 전전하며 어린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데 이룸이 니가 어린 아이 쌍둥이를 세 쌍이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힘들고 고단할지..

가난한 집에서 얹혀 살면서 종일 힘든 일을 해야 하고 친구 하나 없는 환경에서

앤은 상상속에서 만들어낸 친구들을 의지해서 그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나가잖아.

 

빨간 머리 앤2.jpg

 

아.. 이 장면..

매튜아저씨와 함께 활짝 핀 사과나무 꽃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지나는 이 장면..

앤은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할말을 잃고 감동하잖아. 그리고 이 길의 이름을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붙이고..

엄마가 읽은 책에는 '환희의 하얀 길'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앤은 세상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난 것 같아.

다른 사람 눈에는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앤은 놀랍고 뛰어나고 아름다운

면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그리고 감동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엔 자기만의 이름을 붙여줘. 흔한 사과나무 길에서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붙이고 평범한 연못에 '빛나는 호수'라고 붙여주고..

새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들은 앤에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것들이 되지. 앤의 세상은 매 순간 이런 가슴 뛰는 발견과 감탄이 있어.

정말 놀랍지 않니?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앤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들어있을까. 그건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엄마가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까 이런 마음으로 사는게, 특히 어려운 환경속에서

이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게 정말 쉽지 않거든.

그런데 앤은 그렇게 살아왔어. 이렇게 어린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아는거야. 이건 정말 너무나 멋진거지.

 

이 만화가 만들어진게 35년 전이고 빨간 머리 앤이 책으로 나온 것은 100년도

더 전인데 지금도 매년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새롭게 앤과 친구가 돼.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이렇게도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앤에게

감동하고 앤을 좋아하게 되고.... 빨간 머리 앤은 지금도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 정말 대단하지 않니?

 

어렸을때도 수없이 읽었고, 어른이 된 다음에도 거듭 거듭 읽고 있지만

읽을때마다 새롭게 감동하게 되는 책이야.

평생 따스한 정과 사랑같은 것은 느꺼보지 못하고 단조롭고 엄숙하게

살아왔던 마릴라와 매튜아저씨가 앤을 만나며 변화해가는 모습이나

아이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릴라 때문에

또래들 속에서 많은 것들이 속상하지만 견디는 앤의 마음이나

그러면서 매일 매일 일상속에서 새로움과 놀라움,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는 앤의 모습에서 매번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돼.

정말 좋지.

 

어떤 책은 한번 읽으면 잊혀지지만 어떤 책은 나랑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평생 친구가 되는 책이 있는데 `빨간 머리 앤'이 그래.

 

내가 아이였을때, 처녀였을때,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을때,

지금처럼 앤 나이와  비슷한 딸들을 지켜보면서 다시 읽을때가 다 달라.

아마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또 새롭게 느껴지겠지.

 

그토록 좋아했던 책을 너희랑 같이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앤을 닮은 딸들의 엄마가 된 것도 정말 감사하고..

엄마 마음속에서 여전히 어리고 명랑하고 잘 감동하는 앤이

살아숨쉬고 있는 것도 좋고..

그토록 오래 기다려서 너희랑 이 만화를 같이 보며 수다를 떨 수 있게

된 것도 기쁘고..

 

내일은 드디어 앤이 인생의 친구가 되는 '다이아나'를 만나는 장면이 나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남자친구 '길버트'가 등장할 날도 머지 않았어.

너무 기대되지 않니?

앞으로 며칠간은 매일 밤마다 빨간머리 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게 된게..

아.. 신난다.

 

조금씩 흰 머리가 늘어나고 있지만 엄마도 오래 오래 '까만 머리 앤'으로 살꺼야.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놀라고 감탄하면서..

너희랑 같이 보니까 정말 정말 좋구나..

 

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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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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