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주에 정관수술을 한 것이다. 사실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아이 둘을 낳은 후 가족계획에 대해 더 생각하거나 아내와 의논하지는 않았지만 둘째로도 충분히 족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아이 한명을 돌보는 것과 둘을 돌보는 것은 ‘1+1=2’가 아니라 과장 조금 보태어 ‘23은 됨직한데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대학에 들어갈 때 우리가 몇 살인지 알아요?’라는 이야기보다는 사실 마흔이 넘은 아내가 출산을 했을 때 아내도 아이도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꾸는 꿈 또한 또다시 연기되거나 포기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내게는 큰 이유가 되었다.   


결심을 하고도 수술을 곧바로 하지 못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에서 수술비를 지원하지 않다보니 비용이 수 십 만원이나 들었다. 빠듯한 살림에 그냥 피임기구를 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한 형은 와이프랑 얼마나 하려고 수술을 하냐. 그냥 콘돔 써”. 형의 계산대로 하자면 콘돔 하나가 천원, 일주일에 평균 1번 관계를 한다고 했을 때 10년 치의 콘돔비용과 수술비용이 얼추 맞아 떨어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세월인지라 꽤 많은 시간이지만 사실 비용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그냥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예전에 친한 형이 수술을 했는데 무자격자가 시술하여 부작용으로 수술부위가 엄청 부어오른 적이 있다. 수술날짜를 잡았더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남자들이 대부분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남성 기능의 장애 우려때문인데 아마 그 이유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클 것이다.


수술예약을 하고 일주일이 금방 갔다. 퇴근길에 비뇨기과에 들러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수술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세히 설명 안 해도 되는데..’ 이제 곧 수술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궁금했다. “저기요. 혹시 수술을 하고나서 다시 풀 수도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임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집니다.” 임신은 하지 않더라도 왠지 임신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이미 수술실 문은 열렸고 나는 당당히 걸어 들어갔으나.. 수술 30분이 내게는 3시간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내가 지금까지 많은 수술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최고로 아픈 수술이었다. 가장 민감한 부위이다 보니 마취를 했는데도 마취가 안 된 듯 느껴졌고 의사가 사전에 수술과정을 설명한 순간들이 수술을 받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라 무서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수술이지만 윙~하고 돌아가는 수술 기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이 되고 너무 큰 소음인지라 귀를 막았다. 잔잔하게 들리는 수술실 클래식 음악이 수술기구의 굉음과 부조화속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났다. 엉거주춤 걸어 나오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내게 무슨 용기가 생겨 이런 수술을 하게 만드나 싶더라. 아내는 수술 잘 끝났냐며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약을 먹는 동안은 술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무알콜맥주를 몇 병 사다 마셨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새벽이면 오는 신체적인 반응 또한 수술 전과 마찬가지다. 수술을 하고 임신이 목적인 생물학적인 남성은 수명을 다했지만 아내의 옆지기로서의 사회적인 남성은 조금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직후, 비유하자면 수도꼭지에 남아있는 물 몇 방울이야기를 들은터라(정관수술을 하더라도 요도에 남아있는 약간의 정자로 인해 약 20회 정도는 피임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 몇 방울 생각이 나더라. 하지만 그건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더 행복하자. 행복은 욕심부려도 된다>

 수미사랑.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22885/913/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870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괜찮으냐고 묻지 마세요 imagefile [4] 정은주 2017-05-22 5243
1869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갔다 imagefile [4] hyunbaro 2017-05-19 1327
1868 [이승준 기자의 주양육자 성장기] ‘깨어나라, 육아 동지들’ imagefile [1] 이승준 2017-05-18 2845
1867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에릭 칼을 좋아하세요? imagefile [3] 윤영희 2017-05-18 1702
186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세 아이와 함께 보는 '빨간 머리 앤' imagefile [8] 신순화 2017-05-17 1713
1865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잠들기 직전의 노래 imagefile [3] 안정숙 2017-05-17 3495
1864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67편] 미세먼지 많은 날엔 이런 음식이! imagefile [5] 지호엄마 2017-05-16 1235
»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imagefile [6] 홍창욱 2017-05-15 8264
1862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특별한 사람을 만드는 평범한 시간 imagefile [6] 강남구 2017-05-15 2815
1861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템플 스테이, 아빠 찾아 삼만 리 imagefile [2] 정은주 2017-05-15 2265
186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내게로 온 책상 imagefile [1] 신순화 2017-05-12 1854
1859 [박수진 기자의 둘째엄마의 대차대조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 imagefile 박수진 2017-05-12 1041
185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오겠지 imagefile 신순화 2017-05-10 2259
1857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다엘, 천 생리대를 만들다 imagefile [2] 정은주 2017-05-09 9773
185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육아와 살림은 부모의 양 날개로 난다 imagefile [2] 홍창욱 2017-05-07 1765
1855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부처야, 생일 축하해 imagefile [2] 최형주 2017-05-03 2763
1854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사랑고생 [4] hyunbaro 2017-05-02 817
1853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세상 속으로 등 떠밀기 imagefile [1] 정은주 2017-05-01 2242
185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재외국민 엄마의 제19대 대통령선거 참가기 imagefile [3] 윤영희 2017-04-28 3775
185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첫 제주 글램핑 체험기 imagefile [4] 홍창욱 2017-04-28 2633

Q.생후 55일 아기 - 낮잠을 너무 오래 자는데 (2...

안녕하세요.  대략 생후 7주경 (생후 48일) 부터 수면의식을 시작하고, 퍼버법 등으로 딸아이의 수면 교육을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