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섰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이 커다란 포도송이처럼 아이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곧 수돗물 소리가 들려 왔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나 보다. 아이가 일을 벌일 때에는 태풍이 오기 전날 고요처럼 집안은 조용했다. 아이는 집중을 했고 난 긴장했다.
“아빠, 구피야.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1/3씩 갈아주래. 먹이는 하루에 한 번.”
아이의 새끼 손가락보다 더 작고 가느다란 물고기 한 쌍이 보였다. 구피 라는 물고기가 세상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날, 순간 아이가 얄미워 보였다. 왜 구피까지 내가 챙겨야 한담? 아이는 밥을 주고 보살펴 주는 게 바로 아빠의 일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아빠는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생명은 끝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건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살아 있는 건 모두 소중했다. 비록 작은 물고기라도. 가만히 어항 속을 들여다 봤다. 어항을 가로지르는 길이가 겨우 손바닥 만했다. 비좁게 느끼지는 않을까 란 생각을 하니 안쓰러웠다. 작은 어항 안에 암컷과 수컷 물고기 한 쌍.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렴. 사는 공간이 좁다고 다투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도 언젠가 상대의 끝을 볼 테니까.

 

물고기.jpg

(자료 출처 : http://www.lifeofpix.com/photo/clownfish/)

 

 

아이 말대로 미리 물을 받아 놓은 뒤 어항 물을 갈아주고, 때에 맞춰 꼬박꼬박 먹이를 주었다. 하루 이틀. 어느새 학교에서 가져온 먹이가 다 떨어졌다. 아이와 같이 밥을 먹다가 물고기를 쳐다보니 미안했다. 게다가 깜박하고 전날은 하루 종일 굶겼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내 착각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물고기 두 마리는 자주 입을 뻐끔거렸다. 혹여 물고기가 죽기라도 하면, 아이는 눈물을 눈가에 맺히며 가슴 아파할 것만 같았다. 지금은 5월이니까. 지난해 아이는 엄마가 떠난 5월 한 동안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라며 ‘은하철도 999’를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동네에서 가장 큰 할인 매장을 찾았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물고기에 관심이 없었다. 물고기 사료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럼 어디서 사야 하느냐 고 매장 종업원에게 물었다. 규모가 큰 다른 지점 매장을 가르쳐주었지만 그곳까지는 자동차를 타고서 20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인근에 몇몇 수족관 전화번호가 떴다. 전화를 건 수족관 매장은 모두 기기만 취급하고 설치만 한다면서 사료가 없다 답했다. 그러는 동안 벌써 반 나절이 또 지났다. 애를 쓰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걱정보다는 짜증까지 몰려왔다. 물고기만 집 안에 가져다 놓은 뒤 고생은 나만 하는 것 같다는 짜증.

 

그래도 참자. 5월이니까. 마음을 가라앉히니 오래된 잡화점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도 낯선 DC 마트. 큰 할인 매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자주 갔던 지하 매장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마자 매장 아주머니를 찾아 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이 들려왔다.
“00 번 기둥을 따라 끝까지 가세요.”
어쩌면 가장 기쁜 선물은 예상하지 않을 때 받는 선물일 것도 같았다. 아주머니 자주 올게요, 라고 속으로 외치며, 기둥을 따라 가니 물고기 사료뿐만 아니라 관련 용품들이 보였다.

큰 어항이 있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통보다 훨씬 크고 예쁜 어항들이 보였다. 여러 종류의 어항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어떤 어항을 더 좋아할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사료를 찾지 못해 짜증이 가득 했는데 어느새 어항을 살피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인공 수초도 눈에 띄었다. 처음으로 관심을 두고 바라보는 인공 수초를 하나씩 들었다 놓았다. 장난감처럼 귀여운 수초를 살펴보다가 미리 고른 어항 안에 하나씩 넣었다. 역시 자연의 색은 초록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여러 색깔 가운데 초록 수초를 골랐다. 어항에 인공수초 그리고 먹이까지 챙긴 뒤 계산대 앞으로 갔다.

 

왜 그랬을까. 물고기는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었을 뿐인데. 물고기는 나의 시간을 빼앗아갔고 기르기 위해서는 비용도 들어가는데 말이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짜증까지 나기까지 했다면 버리거나 대충 키우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일일 텐데, 난 왜 더 잘해주고 싶었을까. 게다가 물고기가 나의 정성이나 노력을 알아줄 수도 없다는 건 내 어린 아이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변한 게 있다면 난 아침 저녁으로 물고기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그 시간 동안 난 물고기 먹이를 챙겨 주었다. 물을 미리 받아 두었다가 하루를 넘긴 뒤에 물을 갈아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상대에게 주는 게 많아질수록 두 마리의 물고기는 나에게 점점 더 소중해져 갔다. 상대가 나에게 많은 걸 베풀어 줄수록 상대를 소중히 여길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던 셈이다. 주는 게 많을 수록 오히려 상대가 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세상엔 수만 수 십 만 물고기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고기 두 마리. 내가 직접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고 오랫동안 바라 본 물고기.

 

그 생각을 하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난 부모님에게 무척 특별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 40년이 넘도록 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걸 받았다. 내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처럼 나도 갓난 아이였을 때, 내 아이가 걸음걸이를 시작할 때처럼 나도 걷기를 시작할 때, 유치원에 입학을 하고 초등학교를 입학을 하는 사이, 그리고 하나뿐인 며느리를 일찍 잃은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많은 걸 주셨다. 그 시간만큼, 많은 걸 베풀어 주신 만큼 어쩌면 난 부모님 두 분께 무척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하니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하게 차 올랐다.

 

스승의 날인 의미보다, 아이의 엄마 기일의 의미가 더 큰 5월 15일 아침. 아이는 아침을 깨우는 노랫소리가 선 잠을 깨웠다고 평소처럼 한참 투정을 부렸다. 그 투정은 어쩌면 나를 특별히 여기시지만 고마움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아이야, 너가 그렇게 쉽게 아빠에게 화를 내는 건 그건 너가 아빠에게 주기보다는 더 많은 걸 받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구나, 란 생각. 한편으로 내가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 뿌듯하다.
아이는 누가 뭐래도 나에게 무척 특별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아내가 없던 그 시간 동안 아낌없이 내가 그 아이에게 시간과 눈빛과 마음과 정성을 다 주었기 때문일 것 같았다. 비록 아이가 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가 변한 건 내가 아이를 위해 많은 걸 주는 사이, 그 아이는 나에게 무척 특별해져 갔.다.

 

특별한 상대를 만나고 싶다면, 그건 상대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오랜 시간 동안 특별히 내가 대했기 때문이다. 관계를 만드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미워할 사람도 없고 사랑을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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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하고 OBS 방송국 뉴스앵커와 기자생활을 그만둔 뒤, 거들떠보지 않던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담은 <지금 꼭 안아줄 것>이란 책을 출간한 뒤 또 다음 책을 준비중이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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