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다엘의 상처와 치유에 대해 쓴 후
나의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교사 시절의 충만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교직을 택한 건 극히 우연이었는데,
대학 시절 친구가 교직 과목을 들어 두면 좋다고 하여
수강 신청을 했던 데서 출발했다.
졸업반이 되어 교생 실습을 나갔던 여고에서
나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나는 기적을 맞이했다.

 

‘내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 많은 이들에 둘러싸여 지내 본 적이 있었나?’
한 달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며 보냈는데
마침 지도 교사가 결혼을 하여 그의 수업을 모두 내가 대신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어댔고
그들 앞에서 침을 튀기며 수업 하던 나는 참 행복했다.

 

예전의 개그 프로에서 어리버리한 맹구가 벼락을 맞으면
갑자기 똑똑해지는 장면이 있었다.
마치 벼락 맞은 맹구처럼 환골탈태한 나는,
물 만난 고기인 듯 아이들과 하나가 되었다.

 

교직이 천직이라 생각하여 들어간 남자중학교에서 만난 아이들도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5교시 수업을 하러 가면, 종소리에 슬라이딩 하듯 아이들이 교실로 쫓아온다.
점심시간에 정신 없이 뛰놀다 교실로 달려오는
그들의 땀에 젖은 동그란 이마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담임 반 아이들과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
연극, 문집, 토론, 탐방 등을 학생들과 함께 했고
학교 밖 교육운동에 참여했다.

 

고등학교로 발령 난 뒤에는 연극반 담당교사가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화도 많았지만
입시경쟁 시스템 속에서 소진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퇴직을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지금, 나는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이 일의 당위성은 늘 새기고 있지만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잊은 지 오래 된 것 같다.

 

숨가쁘게 몰입하던 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열정과 웃음으로 가득 찼던 시간은 후일담으로만 남았나?
나이 들어 열정이 사라졌다고 하기엔
물리적인 나이와 별개로 그간 행복 찾기에 게을리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니스 프레이저라는 저자가 말하기를
행복은 감당해야 할 전투이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새기며 자신을 돌아봤다.

 

지금껏 내 인생의 스크린이 다른 이들로 가득 찼을 때
나 자신은 구석에 숨어 있었다.
이제 머리 속 수많은 should와 must의 목록을 지워갈까 한다.
무의미하게 상처 받는 일이 있다면,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내 인생의 첫 몰입 상황이 떠오른다.
네 다섯 살쯤 됐던 어린 시절, 나의 실종 사건이 있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어린 아이가 몇 시간씩 보이지 않으면 사고가 난 것이기에
아버지는 내가 웅덩이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장대를 들고 동네의 웅덩이를 휘저으며 찾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정신 없이 온 동네를 헤매 다녔다고 한다.

 

그때 지나치던 만화가게의 열린 문으로
낯익은 내 빨간 신발이 어머니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의 어두컴컴한 만화가게에서
땀을 흘리며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던 나를 찾아내면서
부모님의 지옥 같은 시간은 막을 내렸다.

 

인생의 출발점에서 어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후반을 위해서도 혼자 깊이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엘은 성장통을 겪으며 엄마를 떠날 것이고
나 역시 아이를 보내는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한다.
신화학자 고혜경씨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분석하며,
세상의 해와 달이 되기 위한 아이들의 통과의례와 더불어
어머니의 과제에도 주목했다.

 

아이를 보내는 엄마의 고통은 자신의 온몸을 떼어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지막 남은 엄마의 머리통이 오두막을 향해 굴러 갈 때,
역설적이게도 호랑이에게 아이들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어쩌면 엄마의 무의식 속에 이미 단절 욕구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라고
고씨는 묻는다.

 

tiger.jpg »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책 표지들이 호랑이와 아이들을 담고 있는 반면, 이 책에는 엄마의 결연한 모습이 보인다.

 

내가 다엘에게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힘을 모아 세상을 향해 등을 떠밀어 주는 것,
그리고 과거의 내가 낱낱이 해체되는 고통에 직면하면서도
나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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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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