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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가 한꺼번에 아픈 것은 몇 년 만 이었다.

열다섯 살 큰 아이는 B형 독감, 열한 살, 여덟살 두 딸들은 수두 판정을 받고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큰 아이는 수두를 앓지 않았고, 두 딸들은 독감을 앓지 않았으니 한 집안에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 닿지 않아야 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큰 아이는 판정을 받기 무섭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두 딸들도 피부 발진이

나타나며 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픈 세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음식을 끊는 것이었다.

고기, 생선, 밀가루, 달걀, 유제품, 설탕, 과일을 식단에서 뺐다.

열이 오르내릴때 설탕이 든 음식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 키워온 15년간의

경험으롵 터득한 일 이었고, 수두는 특히 피부 발진을 동반하기 때문에

피부에 예민할 수 있는 모든 식재료들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그러면 무얼 먹였을까..

좋은 곡식과 무르게 익힌 채소, 나물들과 이것을 재료로 끓인 국을 먹었다.

달달한 간식은 고구마가 유일했다.

 

열이 오래갔던 큰 아이는 이 마저도 잘 먹지 못했다.

하루종일 연하게 끓인 된장국과 미음을 약간씩 먹는 외에는 2리터 이상의

따듯한 물과 죽염을 먹으며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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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 셋을 돌보며 집에서 보냈던 한 주 동안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아... 하늘은 아실 것이다. ㅠㅠ

 

수두 걸린 막내는 발진이 특히 심해서 소변을 볼때마다 물로 진정시켜줘야 했고

하루에 열 두번 넘게 물을 찾는 알들에게 매번 따끈하게 온도를 맞춘 물을 대령했다.

기침이 심했던 아들은 한 밤중에도 물을 찾았다. 그때마다 아들에게 달려갔던 것은

물론이다.

기침을 하는 아들이 맘에 걸려서 집안의 먼지 청소도 더 열심히 했고

목 아파 하는 아들을 위해 여러번 윗밭으로 달려가 제일 크고 실한 대파를 뽑아

흰 부분만 잘라 마른 펜에 구워 면수건에 싸서 목에 감아 주었다.

언젠가 TV에 나왔던 한의사가 일러준 방법이었다.

말린 파뿌리와 양파껍질, 대추와 생강을 닳인 감기차를 내내 끓여 먹이는 일에도

열심을 내었다.

 

열이 내리면서 밥을 찾는 딸들을 위해 시레기밥을 짓고, 시레기 국을 끓이고

끼니때마다 부드러운 봄나물을 무쳤다. 소화는 잘 되면서 맛있는 채소 음식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행이 딸들은 잘 먹었다.

밀가루 탐식이 심했던 나도 아이들 덕분에 일주일 넘게 이런 맑은 음식들만

먹어야 했다. 내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달콤한 빵이 너무 너무 먹고 싶어서

4일째 되던 날엔 혼자 생협 매장에 가서 생크림 빵을 사서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

들어가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도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맘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은 어른인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세 아이가 아픈 날 5.jpg

 

이 바쁘고 고단한 와중에 파김치도 담갔다.

윗밭에 싱싱한 쪾파들이 더 놔두면 세질것 같아서 제일 연하고 부드러울 때

김치를 담가야 했던 것이다.

몸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아들은 이 김치를 보며 빨리 나아서

엄마표 파김치에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파김치를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노력하게 되었고, 이젠 아주 맛있는 파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되었으니

아들은 참 나를 많이 크게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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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마당에 무성하게 돋아난 민들레도 뽑아 김치를 담갔다.

파김치 양념이 남아 조금 만들어 볼까 했는데 민들레가 너무 싱싱해서 욕심을 부렸다.

늘 바빠서 집에 진득하니 붙어 있을 새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아파서 여러 날을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이런 부지런도 떨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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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내리고 수포가 가라앉기 시작한 후에는 자주 나가 봄 볕을 쐬고, 봄 바람을

맞았다. 싱그럽게 풍성해지는 봄 숲의 기운을 막내는 오래 오래 받으며 서 있곤 했다.

 

세 아이가 아픈 날 3.jpg

 

두 딸들은 힘들어도 열심히 견디며 애를 썼는데 한창 사춘기인 아들은 몸이 힘들어지자

감정이 더 뽀죡해져서 자주 부딪쳤다. 아프니까 받아줘야 하는데 나도 몸이 고단하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게 되니 감정이 같이 날카로와졌던 것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집안일 하느라 수시로 물을 찾는 아들에게 조금 늦게 갔더니

늦게 왔다고 버럭 화를 낼때에는 너무 속상해서 왈칵 눈물이 솟기도 했다.

밤새 열 재고, 물 먹이느라 잠을 설치다가 아침 나절에 잠깐 단잠에 들어 아들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더니, 자기가 부를때 오지도 않고 엄마는 잠만 잤다고 몰아붙일 때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분하고 억울했다. 매일 고단함과 싸우며 있는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철 없는 소리를 할 때는 도리없이 나도 무너져 버린다. 한바탕 퍼붓고 돌아서는 마음이 좋을리 없다. 속상했다.

 

니가.. 엄마를 정말 믿는구나..

엄마한테 어떻게 해도 저를 사랑할거라는 것을 믿으니까 이럴 수 있는 거지..

엄마를 너무 믿고 의지하니까, 온갖 것을 다 던져도 받아 줄거라고 믿으니까

엄마를 너무 사랑하니까 이렇게 아프게 할 수 있는거지. 그런거지....

그래.. 엄마니까... 엄마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니가 이 세상 그 누구에게 이럴 수 있겠니..

사정없이 부딪히고, 찔러대고, 요구하고, 기댈 수 있는게

엄마니까 그렇지.. 엄마니까 그렇지...

아주 오래 마음을 가라앚히고서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몸 고생하는 와중에 마음 공부도 아주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 녀석..

조금이라도 기운이 생기는 것 같으면 엉뚱한 소리로 속을 뒤집어 놓는다.

"엄마... 도넛.. 도넛 먹고 싶어요. 도넛 만 원어치만  사 주세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녀석이 느닷없이 도넛 타령인 것이다.

한 음식에 꽂히면 기어이 먹고서야 해결이 되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도넛이라니... 열나고 기침하느라 며칠씩 미음만 먹는 녀석이

가당치도 않았다. 나으면 사주겠다고, 조금 참자고 달래보아도

아들은 구슬프게 도넛을 외쳐댔다.

 

마침내 아주 오랜만에 미음이 아닌 밥을 조금 먹게 되었을때 아들은 다시

도넛 얘기를 꺼냈다.

 

"열도 내렸고, 기침도 좋아졌으니까.... 이 밥만 잘 소화시키면 도넛, 바로 사주세요"

그리고 잘 소화시킨 다음날, 나는 아들의 소원대로 도넛을 사러 시내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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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두가지 맛을 다 보고 싶다고 우겨서 동생들 몫의 도넛까지 반으로 잘라내어 주었다.

아들은 8일만에 먹어보는 달콤한 음식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아껴 먹었다.

그리고 웃었다.

이런 녀석이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딸들은 화요일부터 등교를 한다. 아들은 아직 내 곁에 있다.

감기는 거의 지나갔지만 아프느라 힘들었던 몸은 천천히 회복중에 있다.

내 일상도 조금씩 평소의 리듬을 찾아 가고 있다.

 

오래 건강했던 아이들이었다. 오랜만에 크게, 오래 아팠고, 잘 앓았다.

그게 참 고맙다. 있는 힘을 다해 잘 앓아 주었다. 나도 열심히 도왔다.

잘 회복되면 더 건강해질 것이다. 덕분에 내 몸도 새롭게 채울 수 있었다.

5월이 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이다.

새로 건강해진 아이들과 좋은 시간 많이 보내야지. 생각한다.

아들까지 학교에 가게되면 무엇보다 나에게 잘 해줄 생각이다.

나랑 잘 놀아줄 생각이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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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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