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40%만 받아 매달 쪼들리지만 

아이와의 추억을 쌓는 ‘흑자 생활’


[Web발신]

하나, 03/2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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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 750,000원, 육아급여 고용부

잔액 **0,000원


휴직 뒤 매달 받는 육아휴직 급여 입금을 알리는 문자메시지 내역이다. 대부분의 작장인이 그렇듯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월급 로그아웃’에 마음속으로 운다. 신용카드 결제, 관리비, 통신비, 후원금 등 출금 알림메시지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곧 재계약인데 집주인이 세를 올려달라면 어쩌나 걱정도 든다.


아이가 있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넘겼는데, 아내와 내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한 지난 2년여간은 여유가 없어졌다.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회사가 주는 게 아니다.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사업주는 정부로부터 매달 3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40%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한액이 월 100만원이다. 게다가 이 가운데 25%는 복직 뒤 6개월 이상 근무한 경우 사후 지급된다(휴직 기간이 끝난 뒤 직장 복귀를 유도하려는 취지다).


육아휴직은 적어도 월급의 60% 이상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기저귀값 번다”는 진부한 표현이 육아를 시작하자 새삼 절절하게 다가올 정도로 아이가 태어난 뒤 늘어나는 지출은 버겁다. 사실상 적자는 불가피하다. 아빠 유아휴직자 수를 늘리려면 여러 문제가 풀려야 하지만 거기에는 육아휴직 급여의 점진적 현실화도 포함될 것이다. 남녀 임금 격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빠 육아휴직은 가계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물론 이마저도 정규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149078962001_20170330.JPG » 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노는 요령도 늘어난다. 하루는 라면 상자를 뜯어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이승준


휴직 초반 줄어든 월급을 고민하면서 ‘차라리 내가 회사를 다니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등·하원 도우미를 쓰면 몇십만원이라도 더 이득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일상에 비춰 복직 뒤 삶을 그려보니 이 생각은 ‘1차 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육아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일인데 말이다.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는 결국 돈을 들여 시간을 사고 불안을 줄인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빨래할 시간이 부족한 맞벌이 부부는 옷을 많이 사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아내와 내가 회사 일로 녹초가 되면 가사도우미를 쓸지 로봇청소기를 살지 고민할 것이다. 아이와 시간을 많이 못 보낸다는 미안함에 주말에는 키즈카페, 문화센터 등에서 큰 비용을 들여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매일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지금은 아이 옷을 많이 살 필요가 없다. 자주 청소하니 그럭저럭 무난한 상태를 유지한다. 라면 상자 따위로도 아이와 노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굳이 키즈카페에 기댈 필요도 없다. 아이와 우리 부부의 식사를 거의 매일 준비하면서 이전보다 식재료를 버리는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예상치 못한 이득이다. 뒤집어보면 육아와 가사노동의 가치, 전업주부의 노동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너무 저평가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통장 잔액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세밀히 지켜보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속을 썩더라도 지금의 기억으로 조금은 덜 미워할 것 같다. 결국 아빠의 육아휴직은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선뜻 아빠가 육아휴직을 선택하기에는 해결돼야 할 문제가 여전히 쌓여 있지만 말이다.


이승준 <한겨레> 기자 gamja@hani.co.kr


(*이 글은 한겨레21 제1155호(2017.4.3)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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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남성의 육아휴직에 태클(?) 걸지 않는 <한겨레> 덕에 육아휴직 중. 아이가 아프거나 이상행동을 보일 때면 엄마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어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주양육자의 얼굴이 다양해질수록 육아라는 책임과 부담을 엄마에게만 전가하는 왜곡된 한국 사회의 모습이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메일 :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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