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엄마와 인간 사이 강요받는 선택, 후보들은 알까

베이비트리 2017. 04. 24
조회수 1393 추천수 0
장하나 <엄마 정치> 공감한 이들 “한국 모성정책 제한적·편협”
변하지 않는 현실에 꽂힌 독박육아의 ‘분노’

22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엄마 정치’ 집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발언하고 있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엄마 정치’ 집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발언하고 있다.

“왜 애를 가졌나 후회가 많습니다. 누가 제게 육아 현실을 알려줬다면, 절대 임신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모인 30명가량의 엄마들은, 육아 책임이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된 이 땅의 현실을 토로하고 공감하고 분개하며, 서로 위로했다. 3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 자리는 열띠다 못해 처연했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이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 중인 칼럼 ‘엄마 정치’가 이들을 불러 모았다. 장 전 의원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 ‘엄마의 삶 그리고 정치: 독박육아 대 평등육아’란 이름으로 연 집담회엔 직업과 육아의 병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각자의 경험과, 휴직·사직 뒤 오는 ‘독박육아’의 우울, 경력 단절로 인한 자존감의 훼손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들은 상당수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19대 국회 임기 중인 2015년 초 딸을 낳은 장 전 의원은 “젊은 여자를 뽑아놓으니 애 낳는다고 쉰다는 소리 들을까봐 국회에서 임신·출산에 당당하지 못했다”며 “아르헨티나 여성 의원이 국회에서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보며 더 후회했다. 내가 더 드러냈다면, 엄마 이야기를 세상에 화두로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웠다”며 운을 뗐다.

아이 셋을 뒀다는 오은정씨는 “박사학위를 받고 남편 일 때문에 미국에서 3년 간 경력이 단절된 뒤 돌아왔는데 와보니 일자리 기본요건이 ‘최근 3년 이내 논문 몇 편’이었다”며 “한국 모성정책은 제한적이고 편협하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 만든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0여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다 “아이를 낳고 세상이 친절하지 않음을 느껴 지난해 퇴사했다”는 이고은씨는 “이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거대한 시스템이 고통을 만들지만 아무도 공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엄마들이 연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회가 분리한, 육아의 ‘독방’에 갇혀 경험한 우울을 호소했다. 대학 졸업 뒤 연구조교를 하던 중 임신했다는 권미경씨는 “이후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자연스레 배제됐다. 배려인 줄 알았으나 스스로 그만두게끔 밀린 것”이라며 “일을 그만두고 최근 남편 사업을 도우며 스스로 ‘쓸모’를 느낀다. 이마저도 못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우울하고 힘들까 생각한다”고 했다. 남편과 일부러 함께 왔다는 조성심씨도 “둘째를 낳은 뒤 다시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반면 남편은 자신의 일과 가정을 함께 가져갔다. 세상에 구조적으로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고 내 헌신은 무얼까 싶어 우울했다”고 말했다.

‘분노’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꽂혔다. ‘워킹맘의 딸’이었다는 김신씨는 “30년 전 엄마가 워킹맘이었을 때 모습과 현재 내 모습이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하소연으로 끝낼 게 아니라 ‘엄마의 정치’로 봐야 한다. 사회 이슈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하나 전 의원이 마지막을 맺었다. “국회에 10여년 전부터 저출산·고령화 특위가 만들어져 있지만 변화가 없었다. 돈 아무리 줘도 출산율 안 오른다. 엄마들이 모여 하소연 하고 끝나선 안 된다. 단체 만들고 정치에 참여해야 정치인들이 이야기를 듣는다. 대선 후보들도 그래야 이런 자리에 와서 우리 얘기를 듣는다.”

‘엄마들의 정치세력화’에 공감한 이들은 이날 모임 뒤 스스로 ‘정치하는 엄마들’(준)이라 이름 지었다. 대선 뒤인 다음달 중순께 다시 모임을 열기로 했다.

글·사진/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트위터 : ibabytree       페이스북 : babytree      
홈페이지 : http://babytree.hani.co.kr

최신글




  • 어린이 활동공간 4곳 중 1곳은 중금속·실내공기질 기준 초과어린이 활동공간 4곳 중 1곳은 중금속·실내공기질 기준 초과

    베이비트리 | 2018. 02. 23

    2009년 이전 설립·연면적 430㎡미만 4639곳 중 1170곳 개선 필요두 기준 모두 초과한 곳은 112곳환경부가 소규모 어린이 활동공간을 진단한 결과 25.2%가 환경안전관리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기사와 상관없음)소규...

  • 겁 많은 초등생 아들이 무서운 웹툰 보기에 빠졌어요겁 많은 초등생 아들이 무서운 웹툰 보기에 빠졌어요

    베이비트리 | 2018. 02. 19

    스마트 상담실“공포에 대해 적응감 키워가는 아이만의 방법”Q. 초등 3학년 아들이 어릴 적부터 겁이 많고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겁이 많고 낯선 상황에서 행동이 소극적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가 무서운 내용의 웹...

  • '엄마됨'을 강요하는 사회,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엄마됨'을 강요하는 사회,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

    양선아 | 2018. 02. 13

      엄마들이 말하는 `엄마의 오늘' “저는 기존 육아서에서 ‘엄마가 일관성을 갖고 엄마가 중심을 잡고 뭔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어요. 사실 교육 정책이고 뭐고 계속 바뀌는데 어떻게 엄마 혼자 중심을 잡나요?...

  • ‘가나다순’ 출석번호를 제안한다‘가나다순’ 출석번호를 제안한다

    베이비트리 | 2018. 02. 13

    0교시 페미니즘2016년 1월13일 예비 소집일에 서울 이태원초등학교에서 입학 등록을 마친 어린이가 1학년 교실 안을 둘러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새 학기 액션플랜. 아직도 남학생은 1번, 여학생은 51번부터...

  • 국공립유치원 5년간 2600개 학급 신설국공립유치원 5년간 2600개 학급 신설

    베이비트리 | 2018. 02. 12

    국공립유치원 40%확대 5개년 세부계획택지개발지구 등 의무설립 규정 활용해경기 162개, 서울 65개 새로 지을 예정 정부가 2022년까지 국공립 유치원 2600개 학급을 더 만들겠다고 12일 밝혔다. 한겨레 자료사진정부가 신규 택지개발지역을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