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세요?"

 

평소에 연락을 주고 받던 변호사님에게 모처럼 전화를 걸었다. 그가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와 닮은 변호사님. 공교롭게도 아내가 입원을 했던 그 주에 변호사님은 대학교 강단에서 강의를 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내 병실을 찾은 날엔 인근 병원에 입원을 한 변호사님을 찾았다. 아내는 한 달 후면 퇴원인데, 변호사님의 퇴원은 기약이 없어 보였다. 내 마음 속엔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곧 퇴원을 하는 아내가 있는 내가, 변호사님보다는 그래도 처지가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란 생각. 누군가 앞에 있으면 난 그렇게 내 처지와 상대의 처지를 비교를 하곤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데 예기치 않게 아내가 먼저 떠났다.

 

아내가 떠났다고 말을 전한 날, 그는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난 어느 날 갑자기 가족 한 사람을 잃었고, 변호사님은 어느 날 갑자기 절반 가까운 몸의 기능을 잃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처음부터 몸이 불편했다면, 우리 두 사람은 적어도 상실이 가져다 주는 고통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말하는 사람들, 때로는 변호사님에게 좋은 머리와 경제적 능력이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거는 사람들, 한 두 마디의 위로는 상실이 남긴 빈 자리를 채울 수가 없다는 걸 우리 두 사람은 묵묵히 배워야만 했다. 그럴 때가 있다. 배우기 싫지만 배워야만 하는 것들. 난 죽음을 통한 상실을 배웠지만,변호사님은 더 이상 몸이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을 배워야만 했다.

 

"강 기자님, 제가 가장 부러운 게 뭔지 아세요?"

2년 쯤 전이었던가, 여름 밤 한강 다리 위에서 두려운 미래를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가 물었다.
그 때엔 그랬다. 한 사람은 가족을 잃고 한 사람은 몸의 절 반을 잃었는데, 세상은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평온한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참 평온하구나. 마치 세상은 두 사람의 고통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한적한 여름 밤을 즐겼다. 그 평온한 일상이 예뻐 보이지 않았던 건 우리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우린 이렇게 힘든데 세상은 뭐가 그리 행복한 건지, 사람들은 공원 위에 텐트도 치고 조깅도 하고 음식을 놓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다리 난간 아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 소원은요..” 여름 공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히 담았다. “저기 한강 공원에 있는 사람들처럼 달리는 거예요…참 부럽다…” 참 부럽다, 란 말이 한강 다리 위에서 퍼져나갔다.

그의 소원은 두 다리로 예전처럼 자유롭게 달리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했다. 마지막엔 “나도 아들과 저렇게 달리고 싶다”는 말을 혼자서 되뇌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설리번 선생을 보고 싶다던 헬렌 켈러처럼 변호사님도 그렇게 말했다. 걷고 달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 줄 아느냐고. 신이 내려와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면 자신은 아들과 함께 달리는 게 소원이라고.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면 변호사님 생각이 자주 났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일상을 보여주고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수업. 교수님은 자주 물으셨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최선을 다한다는 게.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가 떠올라 다시 그의 글을 읽었다.

 

주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

 

수업 시간마다 장애가 심한 아이들과 살아가는 가족의 영상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의 삶은 그저불편함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상 속에 나온 어떤 장애아이는 집 안에 용변을 본 뒤 그 위에서 발장구를 치고 놀았다. 가족들은 울부짖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일주일에 단 몇 십 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던 건 저런 일이 내 삶이 된다면 이라는 가정을 할 때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그 변호사님과 가장 친한 지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장애인의 삶을 들여다 본 영상을 보다보니 난 그의 삶을 잘 모른 채로 지냈다. 어쩌면 그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일상을 상상한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으니까. 그 괴로움은 무의식적으로 나의 상상력을 차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일상을 상상을 하면 난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랬군요, 당신의 삶이 말이에요.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당신도 눈을 뜨는 순간부터 괴로움이 몰려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그 시작부터 말입니다. 수업을 들을 때면 그 변호사님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혼자서 말을 걸었다.

 

그는 이제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한다. 4월 첫째 주에 일부 짐을 옮긴 변호사님은 주변 정리를 한 달 정도 마친 뒤 이제 한적한 시골로 거처를 옮길 준비를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처럼 그도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돌볼 시간을 찾아 떠나는 듯 했다. 혼자 사는 집이지만 방이 세 개나 있는 집으로 정한 건 멀리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이랑 꼭 놀러 오세요. 그러면서 옥상에서 별을 보며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자고 했다. 그가 이사를 가는 동네는 나무와 초록이 가득한 동네라고 했다.

 

이사 준비가 잘 되어가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그는 농담과 진담을 섞어 볼멘소리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무슨 말이지? 평소에 농담을 잘 하시니 농담인가 하는데 다시 같은 말이 반복해 들려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라는 말. 이사인 걸 알면서 연락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섭섭함을 드러냈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이렇게 없느냐는 재활 치료사의 말도 전했다. 미안해요, 그럴 줄 몰랐거든요. 무소식이어서 희소식인 줄 알았다 며 미안함을 감추었다. 변명을 대는 건 잘못을 인정하기 싫거나, 그래야만 좀더 내가 더 그럴 듯한 사람으로 남는다. 그냥 혼자 잘 해나가시는 줄 알았거든요, 라고 말은 했지만 지난 해 이사를 준비를 하는데 걱정과 불안으로 제대로 며칠 밤 잠을 설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죽 했을까, 혼자서 이사를 그것도 타지로 한다는 게.

 

그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어도, 그의 감정을 내가 대신 느낄 수는 없으며 그의 좌절과 절망도 대신 감당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자주 그를 만나고 전화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더 많이 바라볼 것. 바라보는 시간이 길수록 상대를 향한 감정도 봄의 꽃망울처럼 줄기 끝에 달렸다가 점점 커져갈 테니까. 자주 가자 고 다짐을 했다. 알아서 보이는 게 아니라, 자주 보다 보면 그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이사 가는 동네엔 편의시설이 많지 않아 불편하겠지만 변호사님이 한가롭게 걷고 산책도 하며 커피 한 잔과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그를 받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먼 훗날, 어느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외국의 한 동네에서처럼 장애가 있어도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보고 싶다.

 

가끔 서울을 떠나 변호사님을 보러 가야겠다. 만나서 자주 물어야겠다.

"어떻게 지내세요?"

사람풍경.jpg

(사진출처: http://www.lifeofpix.com/photo/sunset-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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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하고 OBS 방송국 뉴스앵커와 기자생활을 그만둔 뒤, 거들떠보지 않던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담은 <지금 꼭 안아줄 것>이란 책을 출간한 뒤 또 다음 책을 준비중이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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