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12일 회원초청행사를 잘 마치고 배부르게 점심도 먹고, 선물배달까지 완벽하게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 쉬는 휴일출근이지만 주중에 하루 쉬었고 소중한 분들과 가든파티도 하며 즐겨서 피곤하지는 않았다. 1일차 행사 때문에 밤늦게 들어와 아이들 얼굴을 못 본게 미안해서, 저녁을 먹은 후에 간식으로 돼지 안심을 엷게 저민 후 오븐에 구웠다. 배가 부르니 노래가 절로 나서 오랜만에 베란다 창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백일몽노래를 불렀다. 내 소소한 일상이 꿈이 아니기를.. 작은 행복이 오래가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가족끼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온천욕을 하고 나오는데 가수 김세환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우린 박수도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는 무서워서 말 한번 제대로 걸지 못했고 커서는 함께 있을 시간이 없어서 늘 서먹한 사이였는데 그때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아버지는 뭐가 그리 바빠 밖으로만 돌아다니고 뭐가 그리 힘들어 저녁에 술을 먹고 들어왔을까?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어렴풋이 추측만 하거나 엄마를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


나는 8년 전 만삭의 아내와 함께 제주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제주에서의 삶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주 후 처음 2년 동안은 2백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우리 가족이 살았다. 서울에서 모은 돈을 까먹는 삶이었지만 돈 없어도 잘 살수 있다는 용기를 배웠다. 육지의 가족근처에 살았더라면 조금 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독립적인 삶,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이 영혼을 더 살찌웠다.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병행하며 마을일을 시작했을 때 참 막막했다.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나는 경험을 쌓는 셈치고 시작한 일이 올해로 6년째다. 내가 2년 동안 똥 기저귀를 갈아가며 키운 뽀뇨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내가 둘째 출산준비로 처가에 있는 5개월 동안 기러기아빠가 되어 매주 향했던 전주, 그곳에서 낳은 둘째 유현이는 올해 4살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도 우린 집이 없어 20년도 넘은 아파트에서 다시 스크루지 같은 집주인의 전세아파트를 거쳐 마침내 서귀포 임대아파트에 자리 잡았다. 제주에서 무슨 임대아파트냐 하며 청약통장을 탈탈 털 수도 있었겠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야 한다는 아내의 소신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 같다. 그동안 제주는 너무나 많이 변했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많은 사람들이 나갔다.


내 삶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뽀뇨 육아일기를 개인블로그에 매일 썼던 게 2010, 그로부터 2년 후에 베이비트리에 생생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만 4년 만에 그 글들이 책으로 출간되어 나왔다. 덕분에 방송에서 강연도 하고 여러 번 지면에 소개되기도 하여 지역에 뿌리내리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듯하다. 글쓰기분야는 제주살이, 아빠육아에서 조금 더 넓어져 최근엔 서귀포신문에 농업농촌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40대가 되어서는 주위에서 경제적인 안정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많이 듣고 있다. 현재의 내 나이에 경제적으로 확실히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 자녀 밑에 들어갈 미래자금과 노후에 대한 보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선배들의 이야기여서 귀담아 들어야 하겠지만 아내와 내가 몇 년간 제주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부분에서 의견일치를 본 것이 있다. “열심히 모으나, 안 모으나 1년 모은 돈이 똑같으니 우리 너무 돈돈 하지 맙시다.” 부부의 나이브한 경제관념 때문인지 지난해엔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한 푼도 모으지 못했다. 내 유럽농업연수로 2백만원을 썼고 엄마 책을 만드느라 백만원을 들였다.


아내가 동화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해부터 동화창작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올해부터 새로운 재택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어올 테니 자기는 열심히 글만 쓰세요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했고 대신 찌질한 남편같이 힘이 들면 내가 도와줄게요라는 문자메시지만 남겼다. 올해부터 우리 부부의 맞벌이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매달 통장의 잔고 걱정하며 빠듯하게 사는 인생이지만 우리 가족은 현재 더 없이 행복하다. 매일 첫째, 둘째 알림장을 열어 함께 읽어볼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는 점, 40분 오븐요리를 기다릴 저녁이 있다는 점, 아이를 통학버스에 태워 보내며 손을 흔들 아침이 있다는 점, 매일은 아니지만 설거지를 하며 음악을 들을 여유가 있다는 점, 아이들이 아직 휴대폰보다 아빠와의 놀이를 더 좋아한다는 점..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는 아이,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이 있어 좋다. 평생을 가난한 아빠, 찌질한 남편으로 살기 싫지만 그렇다고 얼굴보기 힘든 아빠, 가정에 무관심한 아빠로 남고 싶지는 않다.


제주살이 8년차의 내 소소한 일상이 꿈이 아니기를.. 작은 행복이 오래가기를 바란다


<둘째는 쑥쑥자라고..>

  둘째.jpg


<아빠또한 쑥쑥 자란다. 뽀뇨가 찍은 아빠사진 ㅎㅎ>


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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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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