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자유글 조회수 878 추천수 0 2017.04.03 06:48:39

며칠 전 오랜만에 떡볶이와 함께 튀김을 샀다. 오징어, 김말이, 만두, 야채, 고구마 중에 단연 내가 선택한 것은 고구마였다. 함께 튀김을 먹던 큰아이도 고구마가 맛있다고 해주니 괜스레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잘 익은 노릇한 고구마가 튀김옷까지 입어 더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꿀맛이었다.

 

어렸을 때 집에서 고구마를 먹기는 쉽지 않았다. 가끔 외갓집에 가서야 먹을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시골 마을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그 해 직접 씨를 뿌리거나 가꾼 것들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고구마를 심지 않았다. 주 작물로 고추랑 사과, 대추와 벼농사가 한 해 농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엄마는 집에서 먹을거리로 깻잎, , 감자, , 배추, 옥수수, 당근, , 부추 등도 소소하게 가꾸셨다. 나를 비롯한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다 챙겨서 지을 겨를이 없었을 거다. “엄마, 우리 고구마도 심자.”라고 몇 차례 말했더라면 우리 집 고구마를 먹었을지도. 최근 10년쯤부터 어머니가 고구마도 직접 심으셨다. 작년에도 고구마를 작은 박스로 보내주셨는데 직접 쪄서도 먹고 껍질만 깎아서도 잘 먹었다. 아이들은 껍질만 깎은 고구마의 아삭한 맛을 아직 잘 모르는 건지 쪄 먹을 때의 씹는 식감에 익숙해서인지 생고구마를 권하면 고개를 저었다

 

고구마는 구워먹어도 쪄먹어도 그냥 먹어도 맛있다. 집에서 먹지 못한 고구마를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곳이 하양에 있는 외갓집에 갔을 때다. 허리가 구부러진 외할머니는 하얀 머리를 뒤로 묶고 얼굴이 조그맣고 키가 작은 분이었다. “아이고 우리 새끼하며 살갑게 불러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방은 쇠죽을 끓이는 건너 아랫방이었다. 군불을 지피는 방은 장판이 시커멓게 될 만큼 아랫목이 뜨끈뜨끈했었다. 아랫목에서 먼 곳에 이불이 펴진 곳도 뜨뜻했다. 이불을 덮고 먹는 따뜻한 군고구마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흐뭇한 기억이다. 외갓집에서는 매년 고구마를 재배했었다. 우리 집과 멀어서 집으로 고구마를 갖고 간적은 없었다. 네 아이를 데리고 오가기도 멀었던 외갓집이었다. 게다가 그 때는 집에 차도 없었다.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외갓집을 매년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는 큰 집에 갔을 때다.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버지는 맏딸인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일 년에 서너 번은 영양에 있는 큰집에 갔었다. 제사 음식으로 올라오는 몇 가지 전 종류 안에 고구마전이 있었다. 제사 음식으로 준비하다보니 먹고 싶다고 많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하지도 않았다. 어린 나이에 큰 집 살림도 넉넉지 않다는 걸 눈치 챘는지 맛있다며 더 해달라고 말해 본적도 없었다. 가끔 제사상에 올라오는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집 가는 게 좋았다. 이제 내 손으로 명절이나 제사상을 차리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명절에 떠올리는 음식이 있을까? 외갓집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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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제삿날 상을 차릴 때면 어릴 때 큰집에 모인 왁자지껄한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한다고 고구마전을 일부러 많이 만들지는 않는다. 고구마는 이제 내가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만날 때 빠지지 않는 음식. 나는 우리 집에 사람들이 올 때 어떤 음식을 내놓는지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음식을 해주고 있나 문득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고구마가 먼저 생각났고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과 어릴 적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글쓰기가 나를 위로하면서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과정이 되고 있다.

 

올해 초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 중 한 방법으로 베이비트리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2012년 이후 '내가 감히'라며 엄두도 내지 않았던 생생육아에 글쓰기를 올려볼까 생각했던 거다. 내가 아는 생생육아에 글을 올리는 분들만 하더라도 책을 한 권이상 내셨거나 오랜 기간 글쓰기가 단련된 분들이 많아 그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아래문구에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생생육아는 전업주부 아빠, 직장인맘, 한겨레 기자들의 생생한 육아 경험듬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생생육아 필자로 참여를 원하는 분은 babytree@hani.co.kr로 메일을 주세요. 

 

메일을 보냈다. 내게 돌아온 답을 보고 처음에는 나도 [시쓰는 엄마]라고 타이틀을 잡고 매번 시를 올려보자고 생각했었다. 처음엔. 지금은 생생육아에 글 올리는 걸 포기했다. 예전 같으면 포기를 하고 싶어도 이렇게 바로 포기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변화된 내 모습 중 하나, 때로는 포기를 해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처음 한 두번 제목 앞에 넣었던 [시쓰는엄마]를 그 이후엔 시를 올릴 때도 붙이지 않았다. 아직 글 솜씨가 여러 사람들을 사로 잡을 만큼도 안되고 글쓰기 스트레스로 '한 주에 한 편 이상 쓰는 것'까지만 내게 주기로 정했다. 글쓰기도 일종의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글을 통해 서로 오가는 교감이 예전같진 않지만 글쓰기 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보려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더욱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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