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바빠도 너무 바빴다. 주중에 하루 쉬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회사일이 반, 개인일이 반이었다. 3월 마지막 날 간만에 주중 휴일을 맞았다. 전날 둘째 유현이의 일일연락장을 가족들과 함께 읽으며 내일 등교 등원 길은 아빠가 꼭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815분 등교버스를 타야하는 첫째에게 아내는 밥을 챙겨주고 나는 옷을 챙겼다. 시간에 맞춰 급하게 나왔는데 15분차를 놓쳤다. 그 사이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에 줄을 선다. 나는 편의점 처마 밑에서 이웃에 사는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는지 한 남자아이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고 초등 3학년 정도 되는 여자 아이 둘은 대화수준이 꽤 높았다. 엄마둘이 마중 나왔지만 아이들 세상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첫째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안보일 때까지.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낼 때와 조금은 다른 기분이었다. 노란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일까.

이제 4살 유현이를 아파트 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다시 아이 옷을 입혔다. 첫째가 옷을 거의 물려받았다면 둘째는 주위에서 옷을 사주는 편이다. 야구점퍼가 예뻐서 누구 꺼냐고 물어보니 이모가 사줬다고. 통신문에 따르면 유현이는 요즘 어린이집에서 자기가 입은 옷을 엄마가 사줬어요’, ‘할아버지가 사줬어요자랑을 많이 한다고 한다. 새 옷이 아이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걸까.


<누나 등원길을 몇년간 베란다에서 바라본 둘째, 본인 등원길 첫째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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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까지 가야해서 둘째와 나는 각자 우산을 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도착하니 곧 선생님이 나와 유현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선생님이 아빠한테 배꼽인사하세요라고 하니 살짝 얼굴이 굳어져 10도 인사를 하는 유현이, 그리곤 신발을 자기가 벗어 신발장에 놓는다. 집에 오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둘째도 그렇게 아이들 세상으로 들어갔다.

집에 와서 아내와 단 둘이 이불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고민들이 계란 한바구니 가득 담겼다. 아이들 이야기, 아내의 공부 이야기, 그리고 일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 실타래가 길어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외식을 먹기로 했다. 요즘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에 들러 맛있게 먹고는 다시 첫째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선생님이 계신 교실. 기둥뒤에 숨어서 알림장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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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에 함께 가지 못해 첫째의 교실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현관 앞을 지나 2층 복도로 올라갔다. 첫째가 있는 교실 앞에 다다르자 교실에선 한창 알림장 받아쓰기가 진행 중이었다. 해솔이는 무얼 하나 싶어 자세히 보니 받아쓰기는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차! 어제 동생과 함께 알림장을 보고는 안방에 두고 온 것이다. 급히 기둥 뒤에 숨어서 알림장 내용을 휴대폰에 기록하며 첫째는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궁금했다.

메모를 다 하고나서 교실문밖에서 두리번거리는데 아이들이 하나둘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고 몇몇의 아이들은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첫째가 나를 봤는지 아빠하며 나온다. 선생님께 방해가 될까봐 교실 문밖에서 주저주저 하는데 교실 뒤편에 게시된 아이들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꿈’, ‘내 친구가 그린 내 얼굴’. 해솔이의 그림은 어떤 건가하고 보고 싶은데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서 보고는 싶은데 학부형이 선생님이 계신데 들어 가는게 민폐라는 생각도 들고. 망설이는데 해솔이 절친 유정이가 나를 보고는 내 손을 교실로 잡아끈다. “들어오세요

못 이기는 척 들어가 선생님께 멋쩍은 듯 인사를 하는데 해솔이, 유정이,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남자아이 석빈이가 서로 자기 그림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나의 꿈 그림판을 보며 해솔이 그림은 어디 있어?(해솔이는 뭐가 되고 싶어?)”라고 하니 첫째가 여기하며 보여주는데 무슨 그림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근데 단짝 유정이가 해솔이는 가수하고 싶데요라고 친절하게 얘기해주었다. 평소 집에서 노래를 많이 부르고 가수할거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니. 노래를 들으며 본능적으로 해솔아, 너 노래 못 불러라고 얘기할 뻔 했는데 아차 싶었다. 석빈이는 처음 보는데 내게 로봇과학자가 꿈이라고 얘길 했다.


<해솔이는 가수가 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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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솔이가 그린 진혁이, 시웅이가 그린 해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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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는 친구가 그린 자기 그림과 자기가 그린 친구그림을 보여줬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해솔이의 친구 모습 그림과 친구가 그린 해솔이의 모습 그림. 내 아이가 왠지 그림에 재능이 있는 듯 크게 들어왔고 친구의 그림은 못 그렸지만 친숙하게 다가왔다. 숨겨둔 보물이라도 본 것처럼 사진을 열심히 찍고는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왔다. 다시 첫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미용실로, 그 사이 둘째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 일과 중에 일부인데 휴일 짧은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 세상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아이의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아니 아이는 내가 아는 아이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려면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갈까, 혹은 아이가 내게 요구하는 게 무엇일까, 우선 그걸 귀담아 들어야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해본다.

    

<바다와 한라산이 동시에 보이는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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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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