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의 겨울방학은 2달 여의 긴 시간이다.
주로 집에서 지내는 이 시기에 매년 비슷하게 나누는 대화가 있다.
처음 시작은 다엘이 9살 때였다.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다엘과 한참 놀아주다 지친 내가 
소파에 털썩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에잇, 귀찮아!”
심통이 난 다엘이 말했다,
“귀찮으면 다시 보육원에 보내줘.”
눈 감고 누운 나의 답변,
“헛소리 하고 있네!”
그러고 나서 다시 놀기 시작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흔한 원망, ‘누가 낳아 달랬어?’라는 말이 
입양가족에게는 이런 식으로 변주된다.
다엘과 나의 대화는 겨울방학마다 업그레이드(?)되며 같은 주제를 반복한다.

지난해 겨울엔 이렇게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돌봐줄 감당이 돼서 입양한 거 맞아?"
“아니,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좋아서 입양한 건데?”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엄마를 잘 모실 감당이 돼서 입양된 거 맞아?”
“아니 난 아기였잖아. 엄마가 보육원에서 데려왔으니까 엄마 책임인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네가 거기 있었으니 데려왔지, 없었으면 입양했겠어? 그러니 네 책임이지.”
“어 그런가??”
 
이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다엘은 또 물었다.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야?”

입양과 관련된 어떤 말들은 우리 사회의 편견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잘 다루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입양교육의 핵심일 수도.

“다엘, 낳아준 분을 엄마라고 말할 수는 없어.
준비되지 않은 채 아기를 낳아서, 
키울 수 없었다면 엄마가 아닌 거지.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인 사람의 권리를 친권이라고 하는데
다엘의 친권을 가진 사람은 나거든.
그러니까 친권을 가진 내가 친엄마인 거야.”
아이의 얼굴이 급 환해지며 '아하, 그렇구나' 한다.

'낳아준 엄마'라는 말 대신 
굳이 '낳아준 분'이라고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출산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세상에는 새 생명을 몸에 품었으나 양육할 수 없는 이들이 있는데
신비화된 모성이니 혈연이니 하는 굴레를 강요하거나 
그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할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낳지는 않았으나 기꺼이 부모 된 자들에게
친부모는 따로 있으니 
당신들은 양부모, 임시부모, 유사부모라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어머니’에 대한 국어사전의 의미는 이렇게 되어 있다.
 
1.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2. 자녀를 둔 여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거나 부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중에서)

반면 미국의 유서 깊은 온라인 영어사전에 ‘mother’의 의미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

1. a female parent.(양친 중 여성 쪽)
2. a mother-in-law, stepmother, or adoptive mother.(배우자의 어머니, 계모, 또는 입양모)
( ‘Dictionary.com’ 중에서 )

이 사전에는 뒤이은 뜻에도 ‘어머니의 지위, 역할, 권위를 가진 여성’이라 되어 있을 뿐 
출산과 관련된 말은 나와 있지 않다.
영어에도 ‘생물학적 어머니’, ‘생모’라는 단어가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로 다루는 추세라 생각된다.

문화의 변화, 발전에 따라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디지털 사전은
사람들의 의식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만으로 부모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크기변환_크기변환_Like-Father-Like-Son-FINAL-.jpg »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출생 시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임을 알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출처: 다음 영화)

우리나라의 국어사전에서 ‘친부모’란 생부모, 즉 혈연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혈족의 의미에는 법률이 입양 등에 따라 이와 같다고 인정한 사람도 포함된다.
앞으로 생부모의 뜻은 ‘아이를 낳은 이’의 경우로 한정하고
친부모는 ‘친권을 가진 부모’의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언어를 만들고, 다시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기 때문에 이런 모색은 중요하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다엘은 예전과 비슷한 대사를 읊고 있다.
“엄마는 내가 싫은가? 자기 아들을 입양해놓고도 관심이 없네.”
또는,
“내가 기꺼이 입양됐는데 왜 신경을 안 써주는 거야?”
이젠 식상해서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언어의 귀재(?)인 다엘이 좀더 신선한 표현을 찾아낼지 모른다.

지금처럼 입양을 편안하게 말하기까지 다엘과 많은 대화가 있었다.
더 어렸을 때 다엘은 불안한 정서가 강했기 때문인지
내가 먼저 얘기하기 전까지는 입양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주로 잠자기 전, 자리에 누워 입양 과정과 생모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엘을 낳아준 분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얘기를 꺼내면 다엘이 말했다.
“얼굴이 네모일까, 세모일까?”
“다엘처럼 예쁜 아이를 낳았으니 참 예쁠 것 같아.”
“그럴까?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나를 낳아준 분은 방귀를 어떻게 뀔까?”
의외의 말로 나를 웃게 하는 아들이다.

다엘이 자라면서 때로는 분노와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생부모가 자신을 포기한 것이니 만나고 싶지 않다거나
혹시 만났을 때 자신을 데려갈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입양아의 경우, 생부모의 상실을 충분히 애도해야 훗날 억압된 정서를 갖지 않으므로 
슬픔을 계속 표현해야 한다고 일부 전문가는 말한다.
생모가 그립다면서 눈물 흘리는 아이를 안고, 함께 우는 부모도 있다.
일면 이해하면서도 의아한 점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생부모가 자신을 키우지 않은 것을 슬퍼할 수는 있다.
그런데 만나보지 못한 생부모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궁금할 수는 있으나, 그립다고 우는 것은 다른 감정을 숨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애도는 필요하되 과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다엘이 훗날 어른이 되어 고난을 겪을 때 
자신의 고통을 입양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당당히 맞서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입양이 가져온 상실에 허우적대지 않고
유머와 성찰을 통해 
입양을 먼 과거의 흔적으로 여기게 되기를.

생애를 관통하는 과제는 입양이 아니라
근원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존재 자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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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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