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먹는 아이에게 찾아온 피부 질환 

엄마에겐 빵과 커피 금지령이 내려지고


148585195316_20170201.JPG » 얼굴 전체를 덮었던 홍반이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나는 매일 ‘밀가루의 유혹’과 싸우고 있다. 박수진 기자


나는 빵 성애자다. 닭고기 살처럼 길게 찢어지는 식빵을 우유에 찍어 먹을 때의 촉촉함, 초콜릿이 진하게 든 크루아상을 바삭 베어 먹을 때의 달콤함, 견과류와 바질이 가득한 식사빵에 상온에 적절히 녹은 버터를 발라 커피와 곁들여 먹을 때의 향긋함. 진 빠지는 육아노동을 ‘빵과 커피의 시간’으로 달래왔다. 저녁에 집에 오는 남편에게 빵 주문을 하고, 아침에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도 잠든 시간 호사를 누렸다. 수유 직후 아이가 잠들면 커피도 함께.


과했던 걸까. 하루 한 번 빵이 하루 두 번 되고, 세 번 되고, 그래서일까. 아이 얼굴에 탈이 났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라오더니 쉬이 낫지 않고 노란 딱지까지 앉았다. 머리를 감기다보니 머리에도 노란 딱지가 군데군데 보였다. 지루성 피부염.


만 3개월 이하 영아의 지루성 피부염은, 피부 질환이 대개 그렇듯 뚜렷한 원인은 알 수 없다. 피지 과다 분비이거나 지루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진균 때문이라고도 하고, 온도·습도가 맞지 않아서라고도 하고. 원인은 모르지만 처방의 칼날은 나를 향해 왔다. 모유 먹는 아기이기 때문이다. 밀가루, 우유, 달걀, 카페인 금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얼굴을 벅벅 긁어대는 아기를 쳐다보며 ‘밀가루 프리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났을 때 철없는 남편이 저 먹겠다고 시킨 피자 한 판에 나는 훅 무너졌다. 오랜만에 놀러온 사촌동생이 사정을 모른 채 나를 위해 사온 한 아름 빵더미에 또 무너졌다. 아이의 얼굴은 나아가다가 내가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면 다시 벌게지고, 또 나으려다 내가 빵 한 점 먹으면 다시 벌게지는 것 같았다. 결국 가족들이 모여 백일잔치를 하기로 한 날, 아이 얼굴 상태는 절정에 이르고야 말았다.


잘됐다, 이참에 분유로 갈아타자. 분유로 갈아타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가슴이 아파와서 모유를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지만 점차 분유 횟수를 늘려갔다. 그리고, 디데이. 사흘 동안 분유만 먹였다. 그런데 아이는 모유 먹을 때, 다 먹고 나서 보여주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밥 먹기 전 기대감으로 가득 차 쳐다보는 반짝이는 눈빛과 동동거리는 귀여운 발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웃음과 발 동동이 보고 싶었다. 기분 탓인지, 짜증이 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얼굴에 큰 차도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일주일여간의 실험을 마치고 다시 모유로 회귀했다. 존재를 오롯이 양육자에게 의지하는 갓난아기 육아는 어쩔 수 없이 양육자의 희생을 요구한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주변에 호언했다. 이번에는 ‘육아’가 아니라 ‘휴직’을 하겠다고. 모유는 대략 100일까지만 먹이겠다고. 책도 좀 읽고 공부도 좀 하고, 아이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그러나 이는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한 정치인의 어리석은 장담과 비슷한 게 아니었나 싶다. 육아휴직 기간은 출근해서 회사로부터 돈을 받지 않을 뿐, 더 많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며 나를 파먹는 시간이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이 노동을 하는데 왜 내 노동의 값이 반으로 깎여야 하는지 억울하다. 동네 전업 엄마들이 받지 못한 노동의 값에 생각이 이르자 울화가 치민다. 여성들을 가정주부화한 뒤 공짜로 착취하며 이 사회는 버텨왔다. 사회가 매기지 않는 돌봄노동의 값을 이제는 여성이 나서서 매기고 받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 가격에는 내가 유보한 ‘빵과 커피의 시간’도 포함해야 할 테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이 글은 한겨레21 제1147호(2017.1.3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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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서른여덟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육아휴직 중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감정적으로 휙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 일도, 육아도 그렇게 해서 온 식구가 고생하는 건 아닌지 또 고민하는 ‘갈짓자 인생’. 두 아이의 엄마로서, 좋은 기자로서 나를 잃지 않고 행복하고 조화롭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뭘까, 그 길을 찾는 것이 지금의 숙제다.
이메일 :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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