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교직생활 20년을 마무리하면서 
내 아이는 꼭 대안학교에 보내겠다고 결심했었다. 
이런 결정에 대해 가까운 지인들은 우려를 표했다.
어떤 이들은 대안학교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기 아이만 특별한 교육을 시키겠다는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겪어보니, 고장 난 체제 밖에서 실천하는 
대안학교 내 고민의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아이들이 교사나 다른 부모들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마땅찮게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평어’를 쓰게 함으로써, 
거리낌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어른들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 고민 되었다.
가족 외의 어른들에게 존댓말을 쓰던 다엘의 언어생활에 혼란이 왔다.
나중엔 학교 밖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무심코 반말을 쓰다가 지적을 받는 일이 생기자,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대안 초등학교의 ‘반말 문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서 학교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장장 2시간여에 걸쳐 교사회, 부모들과 함께 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이 토론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 사람의 문제 제기에 대해 
모두 진지하게 경청하며 숙고하는 자세를 보이는 가운데, 
서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중요한 점은, 초등학교 입학 전 공동육아 시절부터 
익숙했던 반말을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을 뿐 
어떤 인위적인 개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학교 아이들이 학부모인 내 별명을 부르며 반말을 했을 때  
전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들이 내 아이처럼 가깝게 여겨졌고,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레 존댓말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섭섭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대안학교 생활이 점차 익숙해지자 
학교 행사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 중 기억 나는 것이 겨울방학식이다.
다엘의 학교에서는 겨울방학식 때마다 모든 아이들이 상을 받는다. 
이번에 다엘은 재미있는 상을 받았다. 
'경도의 왕' 상. 
내용은 이렇다.

'이 어린이는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할 때 
없으면 놀이가 재미없을 만큼 빼어난 활약을 하였으므로 
이 상을 주어 칭찬합니다.'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상장이 수여될 때면 
박수와 웃음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찡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께 상장을 수여한 것이다.
상급학년 아이들이 의논하여 만든 상으로, 
'희생 상', '아이디어 상', '도와 도와 상' 등 
이름만 들어도 선생님들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영양사 선생님께는 '편식 고쳐 상', 
방과 후 돌봄 선생님께는 '워워 상'(싸움을 잘 말려주셔서 그렇단다)도 빼놓지 않았다.

그 중 '희생 상'의 내용이다.
lastphoto.jpg

아이들이 애정 어린 눈길로 교사들을 세심히 보고 있다는 것,
일방적으로 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고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으로서의 선생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나리, 구슬, 기운센, 제비꽃마리…
다엘의 학교 선생님들 별명이다.
대부분 아이들이 붙여준 정겨운 이름이다.
교사의 별명을 부르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 모습이 
언뜻 무질서하거나 예의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권위적인 모습 대신 기다려주고 귀 기울여주는 교사들을 통해 
아이들은 전폭적인 수용과 존중의 경험을 하며 자란다.

다엘의 학교는 전교생 3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이다 보니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때로 매우 격렬하다.
다수 속으로 숨거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풀어갈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 입고 치유하는 과정이 되풀이 된다.

그런 면에서 1년 전 방학식 때 다엘이 받은 상은 
예전의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이름 하여 '고운 손 도우미’ 상.

'이 어린이는 어려운 일에 처한 친구를 다정하게 도와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쁘게 고운 손길을 내주었으므로 
이 상을 줍니다.'

인간관계에 서툰 어미 손에 커서 
친구와의 관계 맺기를 늘 힘들어 했던 아이가 이런 상을 받았을 때, 내 마음이 어땠겠는가.
상장은 일 년 내내 부엌 냉장고에 붙여져 
가문의 영광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

다엘은 매년 그랬듯이 이번 성탄 전야 때도 설레는 손길로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를 위해 
정성껏 과자와 우유, 편지를 놓아 두었다. 

어떤 관계든 일방적일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다엘을 기특히 여겨,
산타 할아버지가 다정한 답장과 선물을 남겼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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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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