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 할 이들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간략히 나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사별, 이혼, 입양에 대해서.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얘길 한다거나 대충 넘기기엔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한 다리 건너면 전혀 전파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내가 일하는 시민단체에 함께 다녀온 다엘이 말했다.
"00선생님이 아빠 얘길 자꾸 물어보시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간단히 말하면 되지. 따로 살아서 모른다고."
"왜 따로 사냐고 또 물으시면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이혼하셨어요', 하면 되지. 이렇게 말이야. '자, 따라 해 보세요. 이! 혼!'"
아이가 깔깔거린다.
(다엘을 입양하고 나서 몇 년 후, 전 남편이 아빠 역할을 해보려고 애썼던 때가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한부모 가정이 되었다.)

다루기 힘든 주제일수록 분명한 표현을 써야 한다.
입양부모가 아이에게 '너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하면
아이는 실제로 엄마 가슴에서 자신이 태어나는 해부학적(?) 상상을 한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이다.

다엘이 커가면서 언어에 깃든 편견이나 오해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누려고 한다.
다엘의 언어감각이 날로 성장하는 요즘,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국어사전을 안겨주었다.

사전을 뒤적이던 다엘이 어느 날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입양의 뜻이 왜 이래? 남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것이 입양이래!"
"이상한 뜻풀이네. 네 생각은 어떤데?" 
"아 몰라. 어쨌든 이건 틀린 설명이야."
"그럼 출판사에 연락해서 의견을 말해보자!"

출판사 편집부에 다엘이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제가 국어사전을 보다가 입양이란 말의 뜻을 봤는데요.
설명이 잘못 나온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남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것은 입양이 아니라 납치거든요."
(주변사람이 ‘납치’라고 한 말을 듣고 바로 인용하는 민첩성!)

전화를 건네 받은 내가 잘못된 정의에 대해 말했다.
편집자는 매우 진중한 태도로 혹시 대안이 되는 견해가 있는지 물었다.
먼저, 입양은 '남의 아이'를 대상으로 하지 않음을 말했다.
출산을 했다고 해서 아이가 자동적으로 그의 소유물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받아들여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입양의 정의는
'아이에 대한 친권을 옮겨오는 법 절차를 거쳐 
부모 자식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_1보리국어사전사진s.jpg

입양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할 때도
먼 여행을 떠났다거나 영원히 잠들었다고 하면 
여행이나 잠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다든지 죽은 이가 자신을 버렸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고 한다.

딸 민이의 죽음 얘기는 우리 집에서 금기 사항이 아니다. 
민이의 앨범은 쉽게 손이 닿는 곳에 있어 
가끔 다엘이 꺼내보기도 하고 질문도 한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다엘이 말했다.
 
“옛날에 민이누나 말고 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네! 그런데 엄마한테는 민이누나가 아니라 네가 주인공이야.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나오고 끝까지 가는 거거든."
“그런가? 그런데,  혹시 내가 민이누나 아니었을까?”

전에 읽은 책 내용과 다엘의 말이 겹쳐지며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왔다.
베트남 스님 틱낫한의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 유산된 사람은 나의 형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아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아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나였을까?'

언젠가는 다엘이 이렇게 물었던 적도 있다.
“엄마는 민이누나가 좋아, 내가 좋아?”
"당연히 네가 좋지! 민이누나는 갔고 넌 왔잖아. 난 오는 게 좋거든."
“앗싸~!”

내 마음 속 민이는 더 이상 나 자신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아이의 육신이 세상을 떠났기에 현실 속 비교의 대상을 넘어서 늘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자기 전에 다엘과 함께 수국차를 앞에 놓고 차담을 하거나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짧은 명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엘이 먼저 이런 실천을 하려고 하는 마음이 기특하다. 

다엘과 대화 한 토막.
"스님들은 왜 그렇게 가족을 떠나서 어렵게 사는 거야?"
"스님들도 우리보고 똑같이 생각하실걸? 이렇게 좋은 기도와 수행 생활을 두고 왜 저리 힘들게 살고 있지? 하고 말이야."
"그럴까? 나도 그럼 스님이 될까? 그런데 결혼도 하고 싶은데…"

1_2목탁사진.jpg » 다엘이 애지중지 하는 자신의 목탁. 사진 정은주.

무엇을 하고 살든, 
네가 선 자리에서 너만의 행복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엄마는 기쁘겠다.
예전엔 좋은 아내 만나서 아이 많이 낳고 입양도 많이 하라고 했는데
어찌 보면 수행자의 길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넌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첫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시골집에 불이 나면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안 나오려고 버티는 고집을 당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럴 때 한 가지 방법은 소의 여물통을 엎어 버리면 된단다.

내가 집착했던 여물통이 몇 번이나 엎어지고 난 뒤에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장 강력하게 손길을 내민 이는 생후 4개월의 작은 아기였다. 
그렇게 내게 온 아기가 이제 10대 소년이 되었다.
가슴으로 품은 아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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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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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4세, 52개월 남아입니다. 작년 가을무렵부터 입던 옷만 입으려고 하고 새 옷이나 자주 입지 않던 옷은 안입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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