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을 앞둔남자 아이이지만 중 2 병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유난히 큰 눈에 웃는 미소가 편안한 얼굴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누나들과도 한참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응석이란 단어보다는 배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다. 어쩌면 나이드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그 아이의 생각을 글로 읽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내 아이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아이를 더 예쁘게 바라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그 아이의 큰 눈이 그날은 유난히 슬퍼보였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 아이는 자주 고개를 떨구어 바닥을 쳐다봤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표현하며 글을 써내려간 지도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아내와 사별을 하고 육아휴직기간에 우연히 아이들 논술 지도 의뢰를 받아 시작한 수업이 유치원생이 될 만큼 나이가 먹은 셈이었다. 그 시간은 내게 회사를 나와도 경제적으로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심어 준 시간이었고 (가끔씩 관심 있는 분들은 뭐를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또 한편으로는 아내의 빈 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울적할 수 있는 시간을 견디게 해 준 시간이기도 했다. 철없고 해맑은 동심을 가까이서 느끼며 난 슬픈 시간을 견디어 온 셈이다. 집에서 수업을 하는 탓에 집을 개인사업 등록까지했으니 아이들 덕분에 인생 계획에 없던 개인사업자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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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을 앞둔 겨울 방학. 그 방학은 중학교 1학년을 앞둔 겨울방학과도 또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이 특정 시기가 되면 어떤 고민에 어떤 슬픔에 때로는 어떤 발악을 하는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의 감정에도 익숙해져갔다. 중학교 2학년이 오른다는 건 본격적으로 진학 준비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과학고등학교와 같은 특수목적학교에 가야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일반고등학교를 들어갈 것인지,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무사히 넘긴 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갈림길에 앞에 서 고민을 했다. 오래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한 나와는 무척 다른 세대였다. 2017년의 고등학교는 내가 경험했던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엄마가 학원을 세 개나 더 등록했어요.”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던 아이가 속마음을 드러냈다. 학원이 세 개나 더 늘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신의 겨울방학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를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늦잠은 잘 수가 없고, 도서관에 오래 있어야 하며, 오전과 오후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분명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과는 많이 달랐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는 자유학기제라고해서 시험이 없이 한 학기를 보낸다. 그 한 학기동안 아이들에게 꿈과 끼를 찾아보고 자신의 적성을 탐색하는 학기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다름 아닌 자유학기제였다. 그 한 학기동안엔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없다. 가끔씩 수행 평가를 보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쪽지시험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바빠진다는 건 다시 시험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걸 의미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적 반영비율이 높아진다는 걸 부모와 아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빠요.”
 그러자 마주 앉은 여자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도 새로운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도 엄마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참 한국에서 엄마는 잘해주면 잘해주는 대로 못해주면 못해주는 대로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남자 아이부터 시작한 하소연은 서로 다른 목소리였지만 비슷한 불만들을 쏟아냈다. 어느새 집안은 겨울방학같지 않은 겨울방학 이야기로 가득찼다. 이야기가 어느정도 끝날 즈음,
“그럼 다니지 않겠다고 하면 되잖아?”
라고 물으면 다시 그 대답의 주어는 ‘엄마’로 되돌아갔다. 많은 책임들이 불쌍한 우리 엄마들에게 돌아갔다.

 

 엄마들도 고민이다. 자녀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으니까. 그냥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쉽지만 한국 경제상황이나 취업률 이야기를 들을 때면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이상적으로는 아이를 믿고 아이를 기다려주면 스스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면서도 믿고 기다려주었더니 아이는 좌절의 경험만 쌓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첫째를 자율적으로 키운데에 실패해 둘째만큼은 여러 신경을 쓴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이면서 동시에 학벌사회라는 현실을 바라보면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선행 교육을 시켜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이 혼자서 자기의 갈 길을 가도록 하는 게 맞는 건지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어쩌면 아직 내 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뒤로 미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끼리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를 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어떤 심정인지 물으면 대체적으로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저 친구의 말을 들으면 어떠니?”
 그러자 마주앉은 아이가 대답했다.
 “OO이 말을 들으니까 저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나 남들이나 비슷비슷하구나 란 생각이 들어요.”
 한바탕 불만을 쏟아놓고나면 아이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우리 엄마만 그런 건 아니었네요.”
 ‘대부분 그렇고 그렇지 않은 엄마들이 극소수지.’
한 아이는 오히려 지난 한 주간 자신의 생활이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다라면서 후회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개 아이들의 반응은 그랬다. 한 아이가 먼저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작은 눈송이가 점점 뭉쳐지며 커져나가는 것처럼 주변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갔다.

 

 집단 상담이 그랬다. 여러 사람이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상담. 가장 답답한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를 하면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용기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다시 옆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누군가가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주변 사람들은 말로 그리고 감정으로 그 사람을 위로했다. 슬픔이란 감정이 갖는 힘이었다. 슬픔이란 감정이 드러나면 그 감정은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끌고 오는 힘이 있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3,4 명이 모인 자리에서 비록 표현은 거친 감정을 담아 내놓을지라도 한참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아이들 방식만으로 격려와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이면서 동시에 치유자였다.

 

 이기적인 슬픔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특히 자신만 슬프다는 느낌. 그 슬픔 안으로 빠져들면 밖으로 나오기가 어려웠다. 가끔씩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만 엄격하다거나, 자신만 학업에 혹사당한다거나, 자신만 엄한 어머니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슬픔들. 그 슬픔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이유는 이렇게 보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 그리고 그러한 슬픔에 빠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해지는 느낌, 그 느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을 때 아이나 어른이나 슬픔의 동굴 안에 갇혀 지낸다.

 슬픈 표정을 지었던 아이가 어느새 고개를 든 채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어쩌겠어요. 열심히 해야죠.”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 표정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끔씩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을 때엔 문득문득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가 없는 건 그래도 조금 더 경험을 하고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내 속의 거만함이 뭉클뭉클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기 때문이었다. 나도 내 나름의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나 또한 한 아이의 아빠이니까. 그 유혹을 참고 조금 더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찾아갔다. 대부분은 그랬다. 대.부.분.

 논술 2.JPG

 수업을 시작했다.
 “지난주엔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지? 어땠니?”
 그 책은 삶의 고민이 가득한 사람들이 마법의 빵집에서 자신의 고민을 일시적으로 해결해 주는 마법의 쿠키 하나를 구해 평소에 싫어하는 이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 마법의 쿠키를 먹이면 그 쿠키를 먹은 상대는 평소와 다른 행동과 말로 위급하거나 부끄러운 상황에 몰렸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있는 이 곳이 ‘위저드 베이커리’라고 상상을 하고 쿠키 하나씩을 지금 받았다고 해 보자. 누군한테 이 쿠키를 먹일래?”
 잠시 아이들은 생각을 했다.
 “엄마나 아빠 아니야?”
 웃으며 질문하는 말에 아이들도 잠시 웃었다.
 “그러면 선생님이니?”
 아이들은 더 크게 웃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방학을 맞이해 아이를 뒷바라지 하는 부모도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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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하고 OBS 방송국 뉴스앵커와 기자생활을 그만둔 뒤, 거들떠보지 않던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담은 <지금 꼭 안아줄 것>이란 책을 출간한 뒤 또 다음 책을 준비중이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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