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불만 (1).jpg



아직도 나는 2016년의 어느 봄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는 아름답고 시원한 저녁 공기를 즐기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내 아이 둘은 뒷좌석에서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했다. 아무일도 없었지만, 괜히 즐겁고 신나는 그런 순간이 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꺼내면서 갑자기 상황은 달라졌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큰 아들이 운전을 하는 나에게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아 맞다. 엄마, 혹시 숫자 5가 제일 싫어하는 집이 어딘줄 알아?"

"응? 그게 어딘데?"

"바로 오페라하우스야"

뭐라고? 오페라 하우스? 설마, 설마..........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으나, 나는 스스로를 달래며 태연한 척 아이에게 물었다. 

"왜?"

"바로 5를 패는 곳이기 때문이지. 엄청 웃기지?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큰 아이는 너무 웃기다는 듯 자지러졌고, 둘째 아이도 덩달아 웃으면서 쓰러졌다. 너무 웃어서 자동차 좌석 밑으로 구르기까지 했다. 

"5를 패다니...5를 패다니...으허허허허허허허허" 

차 안의 거울을 통해 뒷자석을 보니 아이들은 5가 싫어하는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리며 몇분 동안이나 뒹굴뒹굴 깔깔깔깔 거렸다. 계속 말을 반복하면서. 

"엄마, 엄마 진짜 웃기지?"

아이들은 물었다. 나는 마지못해 답했다. 

"어........정말 웃기다. 하하하하" 

그러나 나의 속마음 속에서는 눈물의 폭포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내 아들이 아재라니. 내 아들이 아재라니. 의사양반 내 아들이 아재라니!!!!' 

아직 9살인데, 아재 유머에 저렇게 자지러지다니. 게다가 6살 딸까지 똑같다니.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들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아재 개그를 구사하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예를 들자면

인도 몇시야? - 인도네시아 
자동차가 놀라면? - 카놀라유 
바다가 3개 있으면? 해삼 

때로는 창작 아재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바다 위에 산이 있고 그 위에 물이 있으면?- 정답은 해산물" 뭐 이런 식이다.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들을 때마다 영혼없이 웃어줬는데, 아들은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 지 예전에 유우머 1번지의 '변방의 북소리'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걸작)를 보면서 좋아하던 나처럼, 그렇게 해맑게 박장대소를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주입식 유머가 반복되다 보니, 나도 가끔 아재 개그에 반응하게 됐다. 

"산타가 싫어하는 차는? -산타페" 같은 유머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하는 것이다. (아, 그렇게 자존심이 상할 수 없다)   

물론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아들의 태권도장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횡재를 하기도 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범님이 문제를 낸 것이다. "자, 이건 일종의 아재 개그인데요. 차가 놀란 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 1년동안 아재 개그에 단련된 내가 모를 리 없다. 나도 모르게 봉숭아 학당의 맹구처럼 맹렬하게 손을 들었고, 0.5초 만에 정답을 외치는 나에게 당황한 사범님은 엉겁결에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카놀라유~~~~~~~~~~~" 

그렇게 나는 정답 '카놀라유'를 기어코 맞추고, 상품으로 받은 진짜 카놀라유 1병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날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 불빛은 왜이리 쓸쓸하던지) 

그러나 그날 거둔 수확은 카놀라유뿐만이 아니었다. 태권도장에 온 아이들을 보니 현세의 아이들에게 아재개그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들만 그런 상무님 개그에 즐거워한 것은 아니란 소리다. 

유행은 피고 지는 것, 아직 아들의 유머코드가 '아재형'으로 굳어진 것은 아니라, 그저 유행에 반응한 것뿐이라는 사실에 다소 안도했다. 

그러나 얼마 전 아들이 자작 만화 한 편을 보여줬다. 코믹 만화라고 했다. 나는 드디어 움트는 아들의 유머코드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만화를 읽었다. 

"제목: 바보짓 / 부제: 따라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밑에는 몇 칸의 만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작가(아들)가 생각하는 세상 최고의 웃긴 바보짓들이 만화로 그려져 있었다. 

1. 거대한 바늘 위에서 잠자기 

2. 머리를 이용해 통통통 계단을 내려오기 

3. 머리 위에서 우유를 뿌려 혀로 받아먹기 

4. 개를 오토바이로 착각하고 타기 

5. 벼랑 위에 집을 지어 나오자 마자 추락하기 

6. 상어 위를 산책하다가 잡아먹힐 뻔 하기 

7. 상어를 피하다 뱀장어에 엉덩이를 물리기 

보면서 웃기는 웃었는데, 뭐랄까. 이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유머 코드였다. 지금은 거의 죽은 말이나 마찬가지인데, 한때 유행했던 '아햏햏하다'라는 형용사로 밖에 표현이 안되는 유머였다. 

과연 어떤 바보가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며, 과연 어떤 사람이 저런 바보짓을 따라할 수 있단 말인가. 뭔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런 종류의 만화였다. 

엄마와 나는 만화를 보고 한참을 깔깔 웃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도록 웃고나니, 엄마인 나는 문득 숙연해졌다. 

아햏햏. 아햏햏한 정서로 점철된 아들의 유머. 아직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유머 코드가 아들의 교우 관계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지는 않을까. 역시 걱정도 팔자인 엄마답게 그런 고민도 살짝 들었다. 요즘은 조금만 튀어도 아이들이 싫어한다던데...... .  

그러다가 다시 도리질을 한다. 믿는 만큼 아이들은 큰다고 했다. 아햏햏하더라도 나는 아들의 1호 팬이며, 그의 가장 거대한 팬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동생은 물론 할머니를 비롯한 이모들도 팬심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리!!!!!!!! 

여하튼 새로 또 새해를 시작하는 설날도 다가오니, 올해는 절대 아들이 이야기한 바보짓을 따라하지 않으며 현명하고 알찬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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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31살에 처음 엄마 세계 입문. 지금까지도 끝이없는 힘이 딸리는 육아의 신비에 당황하며 살고있다. 인성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마음속 지킬엄마와 하이드엄마 사이에서 매일매일 방황한다.현재는 스스로를 육아무림에서 수련을 쌓고 있는 수련생으로 설정, 특유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언젠가는 고수에 등극할 날이 있으리라 낙관하고 있다. 2011년에서 2014년 여름까지 중국에서 아이를 키웠으며, 현재는 한국 서울에서 '자칭' 날쌘돌이 9살 아들, 제1 반항기에 접어든 6살 딸과 기상천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메일 : rimbaud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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