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입원.jpg

 

아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새해 첫 날의 일 이었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어르신들에게 제공했다는 떡국 한 그릇을 대접 받으시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택시가 아버님을 들이 받았다.

아버님은 대퇴부 골절을 입으시고 그 다음날 서울의 한양대 병원으로 실려 오셨다.

 

4년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 아버님은 강릉 본가에서 혼자 지내 오셨다.

고령에 건강도 약하신 편이었으나 태어나서 살아오신 당신의 모든 뿌리가 있는

곳을 떠나시는 것을 아버님은 원치 않으셨다.

세 아들과 며느리가 한달에 한 번씩 본가에 들러 아버님을 보살펴 드리면서

제일 염려하던 일이 마침내 일어난 것이다.

 

구미에 계시는 큰 아주버님과 형님, 그리고 대전에 사는 동서네 부부가 바로 올라와

아버님 곁을 지켰고, 지난주 금요일부터는 남편이 휴가를 내어 아버님을 간호했다.

다리 수술도 큰 일이었으나 폐렴도 심한 상태라 24시간 곁에서 가래를 받아내고,

시중을 들며 보살펴 드리는 일이 시급했다.

 

아버님은 살가운 성격이 아니셨다.

핏줄에 대한 정은 깊으나 다감하게 표현하는 법은 평생 배우지를 못하셨다.

손주들이 이쁘면 꼬집거나 쿡쿡 찌르는 것으로 당신의 애정을 표현하셨다.

자식들이 어릴때 울기라도 하면 시끄럽다고, 울지 좀 못하게 하라고 역정부터

내셨다는 얘기를 하시며 어머님이 한숨 쉬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을때 힘이 없어 문지방을 못 넘겠어서 손 좀 잡아달라고

했는데도 끝내 외면하셨다면서 "어찌 그리 사람이 그럴 수 가 있나"하시던

어머님의 표정엔 여전한 원망과 서운함이 가득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무뚝뚝함과 무심함으로

평생 가슴에 서운함을 많이 품고 사셨을 것이다.

젊은 날 사진속에서 아버님의 모습은 고집스럽고 단호하고 뚝뚝해 보이셨다.

아무것도 없는 살림을 시작하면서 젊음과 노력 하나로 적지않은 재산을 일구시는 동안

가족에게는 따듯하지도, 다정하지도 못했던 가장이었던 듯 했다.

세 아들들에게도 그러셨을 것이다.

끔찍히 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셨겠으나

표현이 없는 아버님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어머님은 지극한 정성과 애정이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살아오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나 특히 아버님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별로 없다.

세 아들들도 아버님을 대하는 것이 살갑지도 따듯하지도 못했다.  

혼자 계신 아버님을 염려하고,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들은 하나같이 지극한데

막상 아버님을 대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지청구나 잔소리, 짜증이나 화로

표현되곤 했다.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받고, 따뜻하게 그것을 표현해본 경험들이

없는 상태에서 어른이 된 아들들은 여젼히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다.

 

그랬던 아들들이 갑작스런 아버님의 사고로 인해 아버님과 24시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며느리들도 번갈아 병실을 지키고 있으나 한밤중에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 수발을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힘이 좋은 아들들의 몫이 되었다.

큰 아주버님과 서방님에 이어 아버님을 돌보게 된 남편의 모습은 내겐 참 새로왔다.

50 평생에 처음으로 남편은 아버지를 제대로 보살피고 충분히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일상에서 장성한 아들들이 부모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어머니에게는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특히나 아버지에게는 잘 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부모와 자식이 친구처럼 지내는 문화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들은 늘 바쁘게 집 바깥에서

돈 버는 일에 매달리고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근엄한 가부장으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 같은 것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낮간지럽고

그냥 한번 안아 드리거나 손 한번 잡아드리는 것도 어색하다.

부모님께 필요한 물건을 장만해 드리거나, 용돈을 드리거나, 고장난 것들을

손 봐주는 것들에 몸과 마음을 내는 것은 쉬워도 손 한번 잡아드리고

안아드리고, 따뜻한 말 한두 마디 건네는 것은 도무지 안 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아들들이다.

남편 역시 그런 아들이었다.

 

세 아들 중 가장 늦게 출가하는 동안 본가의 살림을 돌보고 부모님을 챙기는

일을 가장 오래 한 아들이었으나 자기 주장이 확실한 형과 아우 사이에서

둘째로 자라는 동안 남편은 늘 침묵하는 것으로 집안의 평화와 균형을

지켜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남편이 아버님의 머리칼을 쓸어 드리고,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고

몸을 주물러 주며 잠 든 아버님 얼굴을 오래 오래 바라보는 모습은

뭉클한 것이었다.

 

80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깊은 마음, 자식과 가족을 위해

애써온 그 삶에 대한 존경, 낳아주고 키워주신 정성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마음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넘치는 마음을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던 남편은 이제 다치고 약해진 고령의 아버지를 자식을

돌보는 부모처럼 스스럼없이 보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색하고 쑥쓰럽고 익숙하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 같은 것이 다 상관없어진

상황에서 남편은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마음껏 솟구치게 자신을 풀어 놓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참 다행이다... 다행이다....'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님의 입원2.jpg

 

남편은 4년전에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님은 한 여름 폭염속에서 일 하러 가셨던 밭둑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그야말로

손 뜰 사이 없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우리가 했던 것은 차디찬 시신이 된 어머님의 모습을 확인하고 무너지는 일 뿐이었다.

아무런 과정도 없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애써 볼 최소한의 노력과 수고조차 기울 일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을 끔찍한 일이다.

그냥 평범하게 이어지던 길이 어느날 갑자기 뚝 끊어져 눈 앞에 시커멓고 아득한 절벽만이

남은 상태... 그 길 앞에서 남편은 오래도록 멈추어 서 있었다. 어쩌면 아직까지 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절벽을 어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순간에 부모를 잃는다는 것이 자식에게는 그런 일일 것이다.

 

전화라도 드릴 수 있었다면..

눈 감는 순간 손이라로 잡아 드릴 수 있었다면..

한 마디 말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면..

애통하고 사랑하는 이 마음을 전해드릴 수 있었다면...

 

수많은 가정들이 다 막혀버린 절벽앞에서 남편은 지금도 통곡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버님의 사고는 안타깝고 고통스런 일이지만 보살펴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애써볼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도움이 되고

나를 의지하는 아버지를 느끼고, 내 손길이 필요한 그 시간들을 올올이 내가 감당해 내는 동안

오래 쌓여왔던 미안함도, 오래 눌러왔던 따스함도 남편의 마음에서 다 살아날 것이다.

눈길로, 손길로, 몸과 마음으로 다 아버지에게 전해 질 것이다.

감사하고 눈물나는 일이다.

 

과정이 있는 일은 이해할 수 있다.

애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납득하기 쉽다.

최선을 다 해보고 오는 결론은 받아들 일 수 있다.

슬픈 일이라도 최소한 캄캄한 절벽이 되지는 않는다.

아득하게 희미해지는 길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머님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깊은 상처를 품고 있는 남편은

아픈 아버지를 돌보면서

마음의 상처도 돌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을 참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풍성하고 따스하게 하는 것은 잘 쓸 줄 아는 자신의 감정일테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되면 좋으나 감정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남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아들을 키우면서 감정을 억누르게 하지 않았다.

아들은 마음껏 울고, 웃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랐다.

열 다섯살이 된 지금도 애정 표현에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넘치게 기울인 것은 언젠가는 흘러나온다.

짜증도, 화도, 잔소리도 넘치게 퍼 부었지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귀하고, 소중하고, 너로 인해 행복하다는 말도 넘치게 들려 주었던

세 아이는 모두 제가 많이 들은 것들을 상대방에게 전해줄 줄 안다.

다행이다.

 

남편은 아버지의 손을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한번 열려진 마음은 앞으로는 조금 더 편안하게 흘러갈 것이다.

이렇게 아프기 전에, 이렇게 약해지기 전에, 이렇게 크고 힘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충분히 시간이 있을때, 아직 기회가 있을때

우린 서로에게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좀 더 따듯하게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랑하는 일에, 사랑을 주고 받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것은 아끼더라도 이일 만큼은 아끼지 말고, 언제든 넘치도록 내 몸과 마음을

내어야 한다.

 

아버지의 손을 오래 잡아주고 잠시 집에 돌아온 남편을

나는 아주 오래 오래 뜨겁게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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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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