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육자가 감정노동에 찌드는 이유

“대부분 아빠들이 장난감이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더라.”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 아이 장난감을 사는 데 온통 정신이 뺏긴 나를 보고 육아휴직을 했던 회사의 한 워킹맘 선배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애랑 놀려면 당연히 장난감 아닌가….’
148299611198_20161230.JPG » 장난감에 관심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감자를 잘라 도장을 만들어 내밀었다. 다행히 관심을 보여 한시름 놓는다. 한겨레 이승준 기자
새 장난감을 찾아 “이거 사자!”고 야심 차게 ‘결재판’을 내밀 때마다 “안 된다”던 아내에게도 섭섭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장난감 한 보따리를 살 기세였지만, 아내의 눈살에 결국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 장난감 대여점에서 내 욕망을 채우기로 타협했다.

많은 아빠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장난감에 집착(?)하게 된 것은 휴직 전 주말에 잠시 아이를 보는 시간이 길고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혼자’ 잘 가지고 노는, 그러니까 내게 잠시라도 자유시간을 주는 ‘절대 장난감’을 찾겠다는 포부에 불타올랐다.

물론 육아휴직으로 쪼그라든 급여를 보며 값비싼 장난감을 매번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난감 대여점에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장난감과 설명서를 ‘분석’했다. 아내를 설득해 장난감을 살 때는 “이 정도면 오래 갖고 놀겠지”라는 결론이 날 때까지 집요하게 제품 설명을 읽고 또 읽으며 옥석을 골랐다. 날씨가 추워지고 아이가 감기를 달고 살며 밖에서 놀 수 없자 이런 나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취재를 이렇게 집요하게 했다면….)

하지만 ‘절대 장난감’은 없었다. 잠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는 금세 싫증을 내고 내 팔에 매달렸다. 장난감이 잘 작동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로, 장난감이 싫증 나면 싫증 나는 대로 아빠에게 같이 놀자고 짜증을 냈다. 자유시간을 머릿속에 그리며 설레던 나는 어느새 자동차 장난감에 인형을 태우고 “부르릉, 빵빵”을 외치며 집 안을 횡단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무엇보다 허탈한 건, 그것도 10분을 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이는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내가 성의를 보였으니 이제 새로운 것을 또 내놓으시오”라는 얼굴로 내 팔을 끌어당기거나, 싱크대 속 조리기구를 꺼내달라거나, 손이 닿지도 않는 가스레인지를 켜겠다며 아우성을 쳤다. 언젠가부터 대여점의 장난감을 볼 때마다 “이건 5분, 저건 10분”이라고 자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주양육자의 삶은 계속된다. 좌절로 보내던 어느 날, 아이가 하도 달라고 보채서 별 생각 없이 꺼낸 스카치테이프를 가지고 놀다, 아이가 원하는 게 번쩍대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당연하지만) 아이 역시 ‘상호작용’을 원했다. 스카치테이프를 뜯어서 서로의 손이나 얼굴에 붙이며 눈을 맞추거나 냄비에 블록을 넣고 주걱으로 뒤적이다 서로 먹여주는 시늉을 하는 등의 놀이를 할 때 아이가 더 집중하고 활짝 웃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물론 이때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여전히 적응 안 되지만) 아이에게 피드백해야 한다. (취재원들에게 이런 정성으로 피드백했다면….) 한창 인지능력과 운동능력이 발달하는 아이에게 장난감은 그저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주양육자들이 감정노동의 고단함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진 않았지만 조만간 ‘뽀로로 월드’에 입문할 것이라는 예감도 든다. 몇 년 뒤 부모들의 애를 태우는 ‘로봇 대전’에 입문할 걸 생각하면 아득하다. 하지만 이제 ‘장난감’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만큼 주양육자의 무게를 또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을 맞아 장난감 사다리차를 주문했다. ‘절대 장난감’일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감에 ㅡㅡ;;)

이승준 <한겨레> 기자 gamja@hani.co.kr

(*이 글은 한겨레21 제1143호(2016.12.29)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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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남성의 육아휴직에 태클(?) 걸지 않는 <한겨레> 덕에 육아휴직 중. 아이가 아프거나 이상행동을 보일 때면 엄마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어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주양육자의 얼굴이 다양해질수록 육아라는 책임과 부담을 엄마에게만 전가하는 왜곡된 한국 사회의 모습이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메일 :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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