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4-2.JPG



부슬비 내리는 날, 김치 배달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바다, 하늘이와 우산을 쓰고 김치 배달을 했다.

전라도 시댁에서 여기 제주도까지 맛있는 김치를 보내주셨는데

나누어 먹고 싶은 이웃 몇 분이 생각나서 두 포기씩 봉지에 담아 집을 나선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신이 나서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하면서 배달을 시작했는데

비도 오고 힘이 드니 나중에는 바다가 지쳐서 김치 봉지를 내밀며 “엄마가 들어...” 한다.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들인데 비가 오고 손에는 묵직한 김치가 들려있어서 

나도 왠지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배달을 다 하고 와서 김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텃밭에서 배추와 무와 고추와 갓을 키워서, 뽑고 따고 손질해서, 

김치를 담구고 포장을 해서 여기까지 보내주신 거구나. 

그 긴 시간과 노동과 우리가 잘 먹을 것이라는 기대와 사랑이 이 김치에 버물어져서 온 거구나.

이 가슴 벅차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우리 집에는 가끔 홍시로 익혀서 먹는 대봉이 한 박스, 고구마가 한 박스, 쌀이 한 가마니, 

땅콩이 한 가득, 말린 호박이 한 가득, 참기름과 들기름이 몇 병씩 배달되어온다. 

멀고 먼 전라도에서. 

그래서 그 음식들을 쌓아놓고 매일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먹는다.

큰산과 나는 “우리 참 풍요롭다.”라는 말을 자주 하며 부모님께 감사를 한다.

이렇게 사랑 받는 것을 느끼고 감사를 드린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크게 힘들거나 외롭지가 않나보다.

음식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런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다.

 

사랑이 넘쳐흐르는 곳이 한 군데 있으면 그 주변은 메마르지 않고 

사랑과 고마움으로 늘 촉촉하게 젖어있다.

부모님이 흘러 보내주신 사랑을 나도 잘 흘러 보내고 싶다.

나의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큰 세상에.


김치가 참, 달다.



+ 비 오는 날, 로즈마리 목욕! 사랑이 코 끝과 온 몸에 머문다. ^ ^


20170104-3.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최형주
20대를 아낌없이 방황하며, 여행하며 보냈다. 딱 30세가 되던 해 충북 금산 대안학교로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지금은 세 살 난 바다와 한 살의 하늘과 함께 네 식구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에 모유수유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표현한 ‘젖 이야기’를 연재 완료하였다.
이메일 : vision323@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jamjamlife
홈페이지 : jamjamlife.blog.m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684872/0d1/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 [최형주의 그림육아일기] 부슬비 내리는 날, 김치 배달 imagefile [5] 최형주 2017-01-04 3452
1761 [안정숙의 일하는 엄마, 글쓰는 엄마] 이런 질문하는 내가 싫다 imagefile [9] 안정숙 2017-01-03 5613
176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에게 받은 '잔소리의 제왕상' imagefile [10] 신순화 2017-01-03 4689
1759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게임에 대처하는 아빠의 자세 imagefile [2] 강남구 2017-01-02 5983
175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고맙다, 다 고맙다. imagefile [2] 신순화 2016-12-29 5276
1757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세상에서 제일 슬픈 글자 imagefile [2] 강남구 2016-12-25 7061
1756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61편] Memory Christmas! 세월호 9명을 기억하며~ imagefile [2] 지호엄마 2016-12-24 3083
175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감자샐러드로 크리스마스 트리 만드는 법 imagefile [1] 윤영희 2016-12-24 3285
1754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세상에 안 아픈 주사란 없다 imagefile [8] 케이티 2016-12-22 3340
175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그래도, 아직은, 산타!!! imagefile [4] 신순화 2016-12-22 6100
1752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아이가 나를 살게 한다 imagefile [2] 윤영희 2016-12-22 3100
1751 [이승준 기자의 주양육자 성장기] 역지사지 그래도 섭섭하다 imagefile [3] 이승준 2016-12-19 4610
1750 [윤은숙의 산전수전 육아수련] 6살 딸래미의 비선실세(秘線實勢) imagefile [1] 윤은숙 2016-12-18 4394
1749 [최형주의 그림육아일기] 고마워요, 고마워~ imagefile [2] 최형주 2016-12-16 4907
174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천천히, 오래, 꾸준히 imagefile [1] 신순화 2016-12-15 4940
1747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만 네 살, 우리는 여전히 [11] 케이티 2016-12-13 2960
1746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60편] 전업맘이 되어보니 어때? imagefile [1] 지호엄마 2016-12-13 3035
1745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우리집만의 12월 imagefile [2] 윤영희 2016-12-11 4099
1744 [최형주의 그림육아일기] 하늘이의 하늘 imagefile [1] 최형주 2016-12-10 3251
174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기대어 산다 imagefile [6] 신순화 2016-12-09 4519

Q.아이가 미운 행동만 해요

6세남자쌍둥이에요 그중 큰둥이 아이에요변덕이 심하고 산만하고 분잡하고 행동이 과격하고식탐이 많아요 자다가 제가...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