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꽤나 허약한 편이었던 나는 유아기 시절 병원을 전전하는 날이 많았다. 동네 병원 단골 손님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멀리까지 간 적도, 종합병원에 입원을 한 적도 있다. 병원에서 주사 혹은 링거를 맞아야 하는 지경이 되면, 엄마나 아빠는 가느다란 주사 바늘을 보고 겁에 질린 내게 늘 이렇게 말했다. “주사 안 아플 거야, 안 아프게 놔 달라고 엄마가/아빠가 얘기해놨어.”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사는 늘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분명 안 아플 거라고 했는데 거기다 실은 아프다고, 그것도 무지하게 아프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딘지 속은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을 안고 알코올 솜으로 주사 맞은 부위를 한참이나 문질러야 했던 그 기억. 그 때문에 한동안 병원이란 공간을 끔찍이도 싫어하게 됐다. 병원이란 공간을 상상하면 늘 그 솜에 묻은 알코올 냄새, 그리고 그 솜에 선명히 남은 한 두 방울 핏자국을 떠올렸다. 한참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뒤에도, 병원 진료를 받으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때가 되면 나는 지레 몸을 움찔, 했다. 그런 나를 보고 간호사들은 아주 정직하게 따끔할 거예요,” 하거나 이거 많이 아파요,” 하고 말해주었고, 역시 당연하게도 주사는 늘 아팠다. 어릴 적 내게 주사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일러주었던 엄마 아빠의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세상에 아프지 않은 주사란 없는 법이다.  

 

케이티를 데리고 병원을 자주 오가면서 나는 늘 아이에게 우리가 왜 병원엘 가야 하고 무엇을 하게 되는지를 얘기해주었다.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프지 않을 거라고, 별 일 아니라고 둘러대기보다는 아이 입장에서 너무 갑작스럽다고 느끼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등 수술을 앞두고서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차분히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12월 초입 어느 날, 잠자기 전 책 읽는 시간에 처음 아이에게 수술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아직 수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지라 그것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는 나의 제왕절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이거 봐, 엄마 몸에 선이 그어져 있지? 이게 수술 자국이야. 케이티는 아기 때 엄마 뱃속에 들어 있었잖아. 케이티를 꺼내기 위해서 엄마가 수술을 받았어. 이런 걸 니 오른쪽 발, KT 발에 하게 될 거야.”

?”

..KT 발은 크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내 발에서도 뭘 꺼내는 거야?”

 

신기하게도 아이는 단번에 이렇게 스스로 이해했다. 실제로 이 수술은 아이의 발등에 과다하게 생성된 지방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이어서, 말 그대로 뭘 꺼내는수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아이의 반응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워서, 그 날은 일단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다음주에 이어서 조금씩, 천천히 수술 전 과정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수술을 하면 자국이 남고, 처음엔 좀 아플 수 있다고 얘기하니 아이는 겁이 나는 듯 많이 아프냐고, 피도 나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처음엔 많이 아플 수도 있어. 피도 날 수 있고. 근데 우리 원래 KT 발 아프면 약 먹고 그러잖아. 그것처럼, 수술하고 나서 아프면 약 먹을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조금씩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이름도 알고, 며칠에 병원에 가는지도 알고, 그 전날 밤부터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고, 수술실엔 엄마 아빠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어느 날은 엄마 아빠 대신 데리고 들어갈 친구인형도 함께 골랐다. 그렇게 조금씩 준비를 하니 아이는 수술 당일, 정말로 그 모든 과정을 차분히 받아들였다. 수술 전 대기실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의료진 역시 그때 그때 아이에게 짧게 설명을 해 주면서 모든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취할 때 쓰게 되는 마스크를 직접 만져보고 써 보고 장식하면서 긴장을 푸는 시간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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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수술실에 입장해야 하는 시간이 되자, 아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이제 가도 돼. 이따 봐.” 그렇게 아이는 며칠 전 함께 고른, 집에서 데려 온 토끼 인형을 한 손에 들고 간호사 품에 안겨 우리에게 손 인사를 하고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눈물 한 방울,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서.

 

그렇게 아이를 들여보내고 초조한 마음으로 보호자 대기실에 가 있는데, 곧 간호사가 따라 들어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내내 의료진과 수다를 떨다 편안하게 누워 마스크를 쓰고 마취에 들어갔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 이제 수술만 잘 되면 되겠구나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아이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그 몽롱한 순간에도 울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엄마 아빠를 마주 보며 우리 손을 잡았다. 그리고 회복실로 옮겨져 쉬는 동안, 아이는 금세 수술 전의 개구쟁이 모드로 돌아와 별 탈없이 간식을 먹고, 놀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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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제거 가능한 지방 조직 대부분을 제거해 발등 부피가 제법 줄어들었다. 기대했던 효과 중에 어떤 것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도 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뼈와 근육 자체가 과성장한 부분이 많아 지방조직을 제거하는 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어차피 어떤 방식으로든 완치법이라는 건 없다는 걸, 그래서 어떻게 해도 왼쪽과 같은 발을 갖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 새삼스럽진 않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아이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회복세가 빨라 다음날 바로 퇴원을 했고, 지금은 집에서 오른발에 붕대를 감고서 열심히(!) 요양 중이다. 붕대를 감고 있어 제대로 걷기는 아직 어렵지만, 기어 다니거나 부축을 받아 조금씩 걷기도 하면서 이전과 별 다름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제법 큰 부위를 절개했기 때문에 봉합 부위가 완전히 아물려면 6주는 걸린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붕대를 풀어 연고를 바르고 다시 새 붕대를 감을 때마다 그 깊고 적나라한 상처가 드러나 마음이 아프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세상에 안 아픈 주사는 없는 법. 피가 묻어나는 붕대를 열어젖혀 아이 발에 크게 남은 상처를 볼 때마다, 그 상처에 연고를 바를 때마다, 우리 부부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난다. 오늘 낮 남편이 일을 하다 말고 끄적였다는 짧은 시 속에, 그런 우리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연고를 바른다

 

너의 수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역자 모양으로 발등의 피부를 찢어 고정한 후

발 안에서 불필요한 지방을 잘라내었고,

펼쳐놓았던 피부로 다시 발등을 덮은 후

칼을 대었던 자리를 실로 꿰맸다

 

나는 오늘도 그 선을 따라

연고를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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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 소식에 응원과 기원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단 말씀 전합니다.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집에 돌아왔네요. 모두 건강한 연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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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작가-활동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의 별칭인 케이티(KT)는 불치의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이다. 가난한 유학생 가족이 미국에서 희소질환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공유하며,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꼬집어 내는 글을 쓰려고 한다. 때때로 조금 불편하게 읽히더라도,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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