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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외국 명절이 우리나라에 아주 잘 정착된 사례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무슨 성탄문화부장관의 언어같지만, 9살 우리 아드님의 '성탄론'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대략 1개월 전부터 성탄에 대해 심대한 연구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1. 산타의 존재 


첫째, 산타는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가 증명된 바가 없기 때문에 본인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아들은, 앞뒤가 안맞게도 여전히 산타를 믿는다. 


(그만큼 몇 년동안 나의 동심 지키기 프로젝트가 처절하도록 완벽했다는 소리다. 우선 나를 칭찬하자.)


그렇지만, 올해 들어 의심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산타가 정말 있는 걸까? 없다는 애들도 꽤많아." 


그는 합리적으로 추론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집이 너무 고층이다. 뭐 하늘을 나는 썰매를 이용한다 치더라도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사이, 즉 현관문을 비롯해 거실 창문 등을 모두 닫고, 심지어 방충망도 달려있는데, 어찌 산타가 10층 넘는 아파트로 들어와 선물을 숨겨놓고 갔다 말인가? 


(우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녀온 후 커튼 뒤에 숨겨진 산타의 선물을 보고 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여행을 떠나기 전엔 커튼 뒤에 없었던 선물이라며 그는 1박 2일 동안 흥분했다. 몰래 숨기느라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고생했는 지는 나중에 알려주리라...... .) 


물론 산타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약 1분여간 짧게 지속된 뒤 해결되었다. 


"어쨌든 나에게 선물을 꼬박꼬박 주고 있으니, 산타는 있는 게 틀림없어." 


감탄이 나올 정도로 편리한 결론이었다. 


2. 무엇을 받을 것인가? (비선실세의 탄생) 


성탄절을 앞두고 가장 깊어진 고민은 바로 그 다음이다. 


과연 산타에게 무엇을 달라고 할 것인가? 산타의 실존에 대한 질문은 '답정너'로 끝낸 그는 이제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갔다. (고민을 시작한 시점이 11월이었다. 무려 11월초) 


한국에 잘 정착된 외국명절은 아들에게는 '대목'이다.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평소같으면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지 못할 선물 등)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가장 갖고 싶은 선물들의 리스트를 정한다. 산타의 몫, 그리고 친척들에게 요구할 것들.


그러나 올해부터 여기에 편법이 하나 동원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한 그 편법은 바로 아바타의 소환이다. 본인의 6세 여동생. 


세상에서 오빠랑 노는 것이 가장 좋은 딸래미는 여자아이임에도 불구 남아들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터닝*카드'의 광팬이다. 


오빠의 역할극과 캐릭터 분석에 몰입하며, 언제나 입을 벌리고 오빠표 연극을 감상한다. 비록 본인의 역할은 잠깐 잠깐 추임새를 넣는 것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성도가 매우 높다. 


(얼마전엔 같은 유치원의 여자친구들이 터닝*카드의 캐릭터를 제대로 모른다며, 애들이 시시해 슬프다고 했다.) 


여튼 오빠의 주입식 놀이에 매료된 딸래미는 언제부터인가 장난감을 고를 때 자신의 소신을 잃어버렸다. 예전에는 레고의 여자아이 장난감, 공주님이 그려진 퍼즐 등을 사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난 오빠가 사달라고 한 그 캐릭터 살거야" 


오빠의 소원이 곧 자신의 소원으로 바뀌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오빠의 장난감 왕국에 필요한 요소들을 완벽히 갖추기 위해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장난감 찬스를 아낌없이 바친다. 


예전에는 오빠와 이견도 있었지만, 어째 나이가 들어갈 수록 더욱 오빠의 취향에 감화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말 그걸 원해? 네가 정말 가지고 싶은 선물은 따로 없고?" 나는 매번 묻는다. 


더군다나 가끔 마트에서 레고 프렌즈 등에 눈길을 빼앗기는 딸을 봤기에, 그걸 성탄절 소원으로 비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딸의 눈빛은 결연했다. 


"아니 아니 내가 사고 싶은게 바로 오빠가 말하는 저거야" 


아니, 아들은 도대체 자신의 동생에게 무슨 약을 친 것인가. 둘이 재밌게 노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취향까지, 성탄절 소원까지 완전히 장악한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대망의 외국 명절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둘은 크리스마스 당일날 아침에 펼쳐질 장난감 왕국 생각에 이미 들떠있다. 


나의 9살 아들은 도대체 어떻게 동생의 비선실세로 등극한 것인가. 여튼 딸이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에 이걸로 됐다 싶기도 하지만, 자신의 크리스마스 선물 결정까지 오빠에게 맡기는 딸을 보면서 이래도 되냐 갸우뚱 하게 된다. 


'그래도 뭐 내년 7살이 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오빠가 자신과의 게임에서 불리한 룰을 적용해도 소극적으로 반항하고 울기만 하던 둘째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자신의 패배가 결정되는 그 순간 바로 훌리건으로 변신하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증상을 보면 자아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9살 소년아. 아바타를 활용해 성탄절 저의 장난감 왕국을 완성하려는 '빅 픽처'는 올해로 막을 내려야 할 듯 싶다. 푸른 기와지붕 집의 비선실세도 올해를 끝으로 박살났단다. ) 


결론은, 그리하여 여튼 올해도 동심 수호라는 명목 하에 무거운 카드 명세서를 떠안게 된 내 자신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기필코 나는 산밍아웃 하리라. (네가 니 산타님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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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올해 초  생생육아를 열심히 멋지게 올린다는 허황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특히 저의 글에 대해 팬심을 표현해주신 대한민국 5000만명 중 10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얼굴이 두꺼운 관계로 살짝 이야기를 해보자면, 작년에 우연치 않게 책을 같이 내자는 제의가 들어와서 (일과 육아 둘다 어중간하게 하고 있는 주제에) 책을 쓰면서 안그래도 적은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았었다는............그런 변명을 하고 싶네요. 


올해는 그냥 허언을 하지 않고 제 깜냥 안에서 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애 키우는 우주에서 제일 안 한가하고 제일 힘든 일을 하시는 모든 부모님들 2017년도 화이팅이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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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31살에 처음 엄마 세계 입문. 지금까지도 끝이없는 힘이 딸리는 육아의 신비에 당황하며 살고있다. 인성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마음속 지킬엄마와 하이드엄마 사이에서 매일매일 방황한다.현재는 스스로를 육아무림에서 수련을 쌓고 있는 수련생으로 설정, 특유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언젠가는 고수에 등극할 날이 있으리라 낙관하고 있다. 2011년에서 2014년 여름까지 중국에서 아이를 키웠으며, 현재는 한국 서울에서 '자칭' 날쌘돌이 9살 아들, 제1 반항기에 접어든 6살 딸과 기상천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메일 : rimbaud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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