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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차장이다.

 

요즘 내 삶의 유일한 낙은 <미생> 시청. 매주말 새벽에 <미생>을 보면서(아이를 재우고 보려니 본방사수는 언감생심!) 때로 박수를 치고 주로 긴 한숨을 내쉰다. <미생>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워킹맘 선차장이 등장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뒤 한번 돌아보지도 못하고 황급히 생활전선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기시감이 느껴진다. 내가 한번이라도 돌아봤던가.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울컥할 마음을 외면하느라 별일없겠지, 그저 내일같은 오늘일 뿐이야, 무심한 척하면서 하루하루를 달려온 것같다.

 

오차장병이 유행이라고 한다. 다들 자신이 오차장처럼 열정 넘치면서도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정이 넘치는 상사인줄 착각한다는 거다. 뜨끔하다. 상사이기 전에 엄마로 찔린 기분이다. 어쩌면 나는 오차장병에 걸렸으나 실상은 마부장이나 정과장같은 엄마가 아니었을까. 이랬다 저랬다 일관성 없이 아이를 대하고, 화를 낼 때는 “너는 장난감 가지고 놀 자격이 없어”라며 인격적으로 비난을 한 적도 여러번이다.

 

사실 나는, 아니 많은 엄마들은 마부장도, 오차장도 아닌 그저 ‘장그래’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놓여진 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왕좌왕하다가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사실 하나로 안도하는 초보 엄마. 그래서 신입사원 장그래가 독백하는 그 많은 대사들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나 보다.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미생의 엄마지만 아이 손을 잡고 ‘완생’으로 나아가고 싶은 엄마들에게 쥐어주는 든든한 ‘비기’ ,<미생>의 주옥같은 대사들을 복기해본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플레이가 선언되는 순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6년동안 기다린 아이가 태어났다. 남들은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덜컥 들어서 당황했다는 둥,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부터 생겨 신혼이 없었다는 둥 하소연을 하는데 기다려도 너무 오래 기다렸다. 준비를 해도 너무 오래했다. 결혼한지 1년 뒤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엽산을 먹다가 2년만에 끊었다. 어렵게 임신이 된 뒤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9개월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출산, 육아 서적을 읽었으며 얼마나 긴시간 육아커뮤니티를 섭렵했던가.

 

임신을 하느라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출산까지 이르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보상처럼 순탄했다. 노산이라 걱정했던 출산도 열시간에 못미치는 진통 끝에 숨풍! 성공했다. 퇴원할 때까지 젖이 도는 느낌이 안들긴 했지만, 젖이야 물리고 기다리면 저절로 나온다는데 뭐가 걱정이랴. 자연주의 육아서적을 섭렵하며, 분유를 사놓으라는 친정엄마에게 ‘애 인생 망칠 셈이냐’는 식으로 대꾸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계속 젖을 물렸다. 먹는 것같기도 하고 안먹는 것 같기도 하고 감이 오지 않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육아책대로 충실히 실천했을 뿐. 그런데 육아책과 다른 점이 하나 포착됐다.

 

하루에 열 개씩은 나온다는 신생아 기저귀가 3개도 안나왔다. 이틀이 지나니까 기저귀에 오줌 대신 주황색 크림같은게 조금씩 묻어나왔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퇴원한지 3일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태어난지 5일된 아기의 팔에 굵은 주삿바늘이 들어가 새빨간 피를 뽑아냈다.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생각했던 초보엄마는 엉엉 울었다. 병명 아닌 병명은 ‘탈진’. 아이는 태어난지 사나흘 동안 쫄쫄 굶은 것이었다. 내 젖은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루이틀이면 나오는 젖이 아니었던 거다. 남보다 오래 준비한 나는 초보를 건너뛰고 고급반 엄마로 월반할 줄 알았다.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탈진시킨 나는 고급반은커녕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 나머지공부반 수준이었다.

 

 “뭔가 하고 싶다면 일단 너만 생각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출산 후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운좋게도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제도가 정착되어 눈치볼 것없이 결정했다. 출산하고 7개월 쯤 지난 뒤 한 부서장에게 전화가 왔다. 인력이 모자란데 당겨서 복직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단칼에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생각해보겠노라고 답했다. 딱히 일해보고 싶었던 부서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부서였다. 문득 지금이 아니면 직장연차도 꽤 된 내가 언제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앞의 아이는 무릎으로 기면서 아빠빠빠(아이는 이상하게 아빠 소리를 훨씬 빨리 했다)를 외치며, 극한의 귀여움을 떨치고 있었다. 1분1초를 모두 녹화하고 싶을 만큼 이 사랑스러운 시간을 5개월이나 포기하라고? 이변이 없는 한 기껏해야 아이 인생에서 딱 1년, 엄마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그걸 중도포기한다는 건 너무나 이기적인 게 아닐까.

일주일 정도 고민을 했다. 지금 복직하면 아쉽겠지만 이 제안을 거부하면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부서장과 통화하고 한달 뒤에 복귀하기로 했다.

 

복귀한 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 만땅이었다. 처음엔 내가 왜 고생을 사서할까 후회도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그럭저럭 적응을 하게 됐고, 새로운 부서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자신감과 경력을 보태주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경력 단절의 불안과 고민을 안고 사는 워킹맘들은 모두 각자의 ‘수퍼우먼 컴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처자식 걱정하는 박대리처럼 ‘일단 너만 생각해’라는 친구의 조언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대리가 ‘일단 나만 생각’했을 때 그의 어깨에서 날개가 돋아나지 않았던가. 그렇게 엄마가 행복해지면 결국 그 행복감은 아이에게로 흘러간다.

 

“바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왕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기는 버티는 곳이 이기는 곳이야. 버틴다는 건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참을 인(忍)자를 서른세번 정도를 머릿속에 쓴 것 같다. 물론 앞에 열 개 정도는 궁서체의 필치로 또박또박 써내려갔지만 중간 열 개 정도는 손글씨체 정도로 휘갈긴 다음 마지막 글자들은 발가락이 붓을 들었는지 지렁이가 마실나왔는지 모를 암호를 내갈겼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마치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면 곧바로 다음 단계 미션이 주어진다. 갓난 아기때 자는 아이를 눕히면 바로 잠이 깨어 울고불고 하게 만든다는 등센서 해결 미션이 끝나고 나면 걸레고 핸드폰이고 닥치고 쪽쪽 빨아대는 빨기 신공 제어 미션이 시작된다. 대형마트만 가면 장난감 사달라고 데굴데굴 구르는 조르기라는 22단계 미션을 클리어한 지난 가을, 아이는 ‘미운 말 무한 반복’이라는 23단계의 미션을 나에게 던졌다. “똥, 방구, 똥꼬, 바보, 멍청이”라는 다섯 단어의 무한반복과 변용이었다. 물론 나는 너그럽고 자유로운 영혼의 엄마이므로 처음에는 웃어넘겼다. 하지만 “점심 뭐 먹을래?”“똥이요” “오늘 유치원에서 무슨 노래 배웠어?”“방구 노래”“이모한테 인사해야지”“이모 바보똥꼬~똥꾸멍~”하루종일 수십번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엄마는 멍청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혀 “니가 더 멍청이야. 엄마는 한글도 잘읽거든”이라고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응대를 하기도 했고 더 화가 나면 아이를 쫓아낸다고 협박하고 밥주걱으로 엉덩짝을 패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번번이 후회했다. 좀 더 버텼어야 하는데...

 

요사이 <버티는 삶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도 나왔지만 육아도 매단계 강도 높아지는 아이의 도발에 얼마나 버티느냐의 문제같다. 그건 내 자신의 감정과 싸워 이기는 것이기도 하다. 가끔 극한단계(사춘기)의 미션 수행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공포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이런 잠언이 있지않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소리지르며 화를 내도 끄떡없던 아이의 미운말 퍼레이드가 두세달 지나면서 제풀에 조금 꺾였다. 엄마의 혈압을 올리는 새로운 미션이 다시 등장하겠지만 그 또한 지나가리라.

 

더할 나위 없었다. YES!

 

오늘도 똑같다. 며칠 동안 야근 때문에 아이 자는 얼굴밖에 못봐서 그리운 마음에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눈물의 모자 상봉을 한지 정확히 10분 뒤. 내 이마에는 빗금이 백개 그어지며 쉰 목소리의 독백을 내뱉는다. “역시, 괜히 일찍 왔어” 왜, 엄마가 일찍 와서 좋다고 말을 못해! 아이는 퇴근한 나만 보면 광란의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나와 할머니, 이모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만 한다. 그것도 뼈가 부러져라 몸을 내던지며 그러고 있으니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가야 이 세리모니가 끝날까 싶다.

 

처음에는 밑에 집 시끄럽다는 이유로, 다칠까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꾸짖다가 나중에는 엄마 말을 안듣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나는 이성을 상실한다. 소리 지르고, 때로는 현관 밖으로 끌어내는 제스처를 취하고 방 안에 가두기도 한다. 속 상하고 화가 난 아이는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미안함과 죄책감과 인내심 부족에 후회하는 밤의 연속이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언제나처럼 내 다리 사이에 자기 발을 집어넣고 비비면서 눈을 뜬다. 내 눈을 보고 씩 웃는다. “인아 사랑해” 내가 말하자 아이는 대답한다. “땡! (틀렸다는 의미)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훨씬 더 더 더 사랑한다구요” 아무리 야단을 치고, 때로는 드라마에 빠져 제대로 놀아주지 않아도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여자”고 “다른 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인” 그런 엄마다.

 

책으로 배운 육아는 늘 뭔가 절반은 실패하는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의 엇갈리는 조언은 아이한테 일관성 없는 행동으로 이어지며,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세심하기 보다는 무심한 날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엄마를 향해 열렬한 사랑을 퍼붓는다. 남편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것 같은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정도면 우리는 제법 잘 어울리는 파트너 아닌가.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더할 나위 없다. 그래!

 

※ 이 글은 월간 <베스트 베이비> 2015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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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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