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잘 먹되 뭘 어떻게 먹을까
학회 참석차 프라하로 날아왔다, 그것도 목발을 짚고서. 몇 달 전에 삐긋했던 오른쪽 발목이 도저히 그냥 내버려두어선 안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약 한 달간 통기브스와 그 이후 한달 동안에도 걷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통기브스를 한 상태로 프라하로 날아갔다.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 학회이기에….
외국엘 가면 꼭 들러야만 하는 곳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점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처럼 외국에도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과 같은 대형서점이 있겠지마는 외국 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서 방문하는 내가 서점을 찾는 방법은 단 하나. 시장이나 번화가를 뒤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되었건 번화가나 교통 요충지에 꼭 커다란 서점이 자리를 지키고 나를 반겨준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고르느냐? 학회 때문에 방문하는 일이 태반인 외국의 경우 타이트한 학회 일정 때문에 실은 유적지 방문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직접 가보는 것에 목숨 걸고 덤비지 않는 내 성격 때문에 서점에서 그 도시 혹은 그 국가와 관련된 책자를 고르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사진이 예쁘고 더더군다나 짤막한 역사를 소개한다면 금상첨화. 항상 내 머리 속엔 ‘아이들 참고’용이라며 기뻐하면서 책을 고르지만 막상 한국에 오면 우리 아이들은 책장 한번 흘깃 넘길 뿐 별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관광책자를 골랐고 다음으로 고르는 책자는 바로 요리책이다. 그 나라 음식과 관련된 요리책자. 사실 그런 요리책들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참으로 많은 종류의 책자들이 서점에 있다. 그러면 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사진과 또 한편으론 이건 요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전해지는 책자 몇 권을 고른다.
이번에도 그랬다. <체코음식의 현대적 변신>. 그리고 짤막한 포켓용의 <체코 쿠커리> 책 두 권을 고르고선 만족스러움에 감격하여, 그만 계획했던 트램 여행을 그만두었다. 시내 구경도 중요하다만 서점에서 한발로 책을 고르느라 조금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또 이렇게 골라든 책이 주는 즐거움에 충분히 행복했던 탓이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사둔 요리책을 들여다 보면서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요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러나 요리를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 우기는 나는, 요리책만 봐도 요리 과정의 즐거움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조용히 흥분되고야 만다. (저 정말로 음식은 맛나게 잘해요^^)
그렇다. 요리는 참으로 중요한 의식주 중의 일환 아닌가! 먹어야만 육체를 움직이고 생활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또 행복한 꿈도 꾼다. 먹는 일이야 말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 과정, 함께 먹는 과정이 즐거움과 행복을 주지 않는가?
임신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잘 먹어야 한다, 무조건. 그러나 어찌 먹어야 할 것인가? 질(quality)은 생략하고 무조건 많이만(amount) 먹어야 할 것인가? 그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듯 한 상 가득, 아기와 산모, 2인분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이제는 임산부의 먹거리도 좀 더 과학적으로 또 좀 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행위로 인식되어야 할 때이다.
임신을 계획하는 모든 여성들은 실은 임신 전부터 잘 먹어야 한다. 엽산에 대하여는 누차 그 중요성을 말해왔지만 다시금 강조하자면 음식만으로는 임신 전 혹은 임신 초기 요구되는 엽산의 절대량을 결코 충족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일반 직장 남성들이 몸보신 하듯이 하루 한 두 알 정도 섭취하는 비타민이나 혹은 간장약과 마찬가지의 생각으로 엽산이 함유된 멀티비타민은 가임기 여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권한다. 적어도 하루 400ug의 엽산을 이러한 보충제로 공급해야만 한다. 평소 간질약을 복용하는 분이거나 혹은 당뇨를 앓고 계신 여성이라면 이 양은 보다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므로 1mg을 복용하길 추천하는 바이며, 신경관 결손증 태아를 분만한 기왕력이 있는 여성은 4mg을 복용해야 한다.
그 외에는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임신 전부터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임신 중에 그러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확립하여야 하며 출산 이후에도 계속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평생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우선 임신을 계획하는 경우, 내 체중이 건강한 몸무게에 해당되는지를 점검한다. 저체중의 여성일수록 아기는 자궁 내에서 발육부진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아기는 나중 어른이 되어서도 만성적인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과체중 혹은 비만한 여성은 불규칙한 생리주기와 불임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임신기간에도 당뇨, 고혈압, 제왕절개와도 같은 임신 합병증의 발생위험이 높다. 이러한 경우 체중을 약 10% 정도만 감량하더라도 임신 가능성을 높이고 임신 중 합병증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임신 전 철분 보충제를 복용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매일 철분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굴, 육류, 달걀, 시금치, 콩 등에 철분이 풍부하다. 그 외 밀가루 혹은 설탕 류의 정제된 곡물 음식보다는 보리, 귀리, 현미 등의 통곡물류 섭취를 늘리고 저지방이면서도 영양소가 풍부한 단백질도 공급해야 하므로 기름기가 적은 육류, 저지방 유제품, 콩, 완두콩, 두부와 불포화 지방이 풍부한 올리브 오일, 카놀라, 씨앗, 오메가 3지방산이 함유된 생선, 호두 등의 섭취도 건강에 좋다.
얼마 전 미 식품의약국(FDA)와 환경보호국(EPA)는 어류와 갑각류의 수은문제에 따른 임산부 가이드라인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참치 등은 상대적으로 수은 함량이 높은 상어, 황새치, 왕고등어, 옥돔은 섭취를 제한하도록 하며, 작은 새우와 라이트 튜나로 만든 참치캔, 영어, 명태, 메기 등은 수은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긴 하되 안전한 섭취량을 제시하였다. 즉, 라이트 튜나(일반 참치캔)의 경우 일주일의 용량이 340g이 넘지 않도록 하며 날개다랑어는 170g을 넘지 않도록 권하였다. 외래에서도 많은 산모들이 과연 임신 중에 회를 먹어도 되냐고 질문들이 많은데, 그 비싼 회를 자주 먹을 수 없는 우리 형편으로 아예 먹지 말라고는 못 하나 비교적 위생이 철저한 곳에서 신선한 회를 드시도록 권하는 바이다.
임신 중에는 여러 가지 몸의 변화로 인해 우울감과 짜증이 갑작스레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이럴 때 위로가 되는 과자나 빵…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지만, 이러한 밀가루 등의 정제된 곡물을 이용한 과자나 흰쌀밥 등은 섭취 이후 급격히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당대사 이상을 초래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산모의 몸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 또한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마아가린과 같은 트랜스지방은 입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달콤함을 선사하지만 고콜레스테롤혈증을 비롯한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과자를 선택할 때에는 영양 표시를 잘 확인하고 실은 가장 좋은 것은 가급적 이러한 군것질을 삼가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임신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리면, 여러 어른들이 또 한편으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 중 한 가지가 커피일 듯 싶다. 커피의 카페인을 과량 섭취하는 경우 저체중아 또는 키가 작은 아기를 분만할 수 있다는 논문이 여러 편 보고되었는데, 보통 이렇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루 커피 섭취 기준은 6~8잔 정도이다. 이쯤하면 누가 하루 6~8잔 씩 마시나 싶지만, 카페인은 커피 뿐 아니라 아이스크림, 녹차, 홍차, 콜라, 청량음료, 종합 감기약, 일부 약제 등 다방면으로 함유되어 있으므로 이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휴, 가뜩이나 경제활동도 쉬이 가지 않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이렇게나 임신 전부터 신경쓸게 많다니… 하면서 넉다운 되어버리는 여성들이여. 사실 지금 나열한 여러 음식 조건들이 굳이 임산부에만 국한되는 꺼리들은 결코 아니다. 여성이 건강해야, 엄마가 건강하고 씩씩해야, 가정이 평안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으로 바라본다면 지금껏의 이야기들이 결코 임신할 때에만 잠깐 지켜야할 사항은 아니며, 임신 기간 동안의 관리의 연장으로 생각해서 출산한 이후에도 잘 지킨다면야 아프지 않고 오래 오래 잘 살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겨울이 되면 간간이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진한 김치찌개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한 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배추 파동을 겪으면서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고까지 했던 김치, 그리고 그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하지만 같은 김치로 만들어도 각자의 레시피가 너무도 다양해서 참으로 다양한 맛의 김치찌개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의 그 맛은, 전혀 그 레시피에 궁금해하지 않았던 나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든다. 말은 않아도 남편 역시 간혹 시어머님의 김치찌개를 그리워 할 테니까. 그래서인지 나도 조금 나이가 더 들면 내 음식의 레시피를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만 아이들도 먼 훗날 음식을 통해 엄마를 좀더 아련히 기억하지 않을까? 미각은 시각보다 우선이니까 말이다.
안현영/ 산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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