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책 줄줄 읽는다고 마냥 좋을까

김영훈 2010. 09. 27
조회수 1452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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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초등학교 아이의 경우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어서 고민하는 부모도 많다. 글자로 된 책을 읽지 않고 학습만화만 읽는다고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책읽기가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 덕에 한글을 일찍 깨치는 아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강제로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일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엄마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변질된다. 부모가 아이가 제 또래대로 자라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억지로라도 더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최근에는 초독서증이라고 하여 유사 자폐증을 보이는 아이도 심심치 않게 있다. 초독서증은 의미를 전혀 모르면서 한글이나 영어를 기계적으로 발음하는 현상으로 자폐증의 증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초독서증은 자폐증 아이에게서 보이는 증상이 아니라 뇌가 성숙되지 않은 아이에게 한글, 영어, 수학을 조건반사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다.



특히 초독서증을 보이는 아이들은 머리가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많은 단어를 익혔지만 대화는 잘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 중에는 3세 이전에 영어 동화책을 의미는 모르는 채 줄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3세 이하의 아이들을 무리하게 가르쳐서 생기는 초독서증에 해당된다.



부모들은 아이가 잘 따라 해서 매일 영어와 한글을 가르쳤다고 말을 하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거나 기뻐하는 것을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꼭 아이가 좋아하거나 잘 따라해서 영어나 한글을 가르쳤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비디오나 텔레비전, 컴퓨터게임, 글자 플래시카드, 그림책 등의 시청각매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영어교육을 이유로 돌 이전부터 비디오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어떤 부모는 영어에 노출시켜준다고 하루에 3시간 이상 영어로된 비디오나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장시간 동안 시청각매체에 노출시키는 이유로는, 유치원에 다니는 형이나 누나가 영어비디오를 보기 때문에 같이 보는 경우도 있고,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를 달래기 위해 비디오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비디오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가 바빠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거나, 영어나 한글 등을 조기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사용한다.



영유아 시기에는 부모와 즐거운 상호작용 놀이가 가장 중요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비디오 시청이나 동요나 동화테이프 듣기 등 시청각매체에 노출되는 시간이 과도하게 많다. 시청각매체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부모와 밀접한 상호관계 시간이 줄어들어 아이들의 감성 발달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림책 읽기도 부모와의 상호관계가 없다면 다른 시청각매체와 다를 바가 없다. 부모와의 상호관계 없이 그림책을 읽힐 경우 그림책에 빠져 한시도 손에서 그림책을 떼지 않고 읽긴 하지만 아이에게서는 행동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이런 아이들은 언어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데도 반응이 없거나, 눈맞춤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산만하며,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 숫자, 알파벳을 읽거나 읽은 책의 내용을 혼자 웅얼거리지만 부모와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들이 걱정하는 시기는 24개월이 지나도 의미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부모나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인 경우가 많다.



교육이란 상호 의사소통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방안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들리는 말들이 아이의 언어 발달에 도움을 주지 못하듯 아이의 흥미에 관심을 표현해 주지 않고, 아이의 소리에 반응해 주지 않은 채 단순히 보여주는 그림책은 아이의 인지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림책이 아이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림책을 통해 부모의 피부감촉을 느낄 수 있고 부모의 사랑스런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부모의 반응을 유발해 부모를 온통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림책은 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아이의 어휘력과 문장력은 부모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증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모의 사랑이 스며든 그림책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때 마냥 좋아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첫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전, 엄마가 미리 내용을 파악하여 아이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도록 리듬감을 살려 흥미진진하게 읽어준다. 등장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읽어주어 마치 여러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면 아이는 더 재미있게 볼 것이다. 책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읽으면 아이가 흥미를 느낄 뿐 아니라 정서적인 교류도 할 수 있다.



- 둘째, 그림책은 글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보는 책이 아니다.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상상을 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 셋째, 그림책을 끝까지 읽게 해야 한다. 요즘은 영상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은데 끝까지 집중력과 인내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 이라도 흥미가 떨어지면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적절한 격려와 칭찬을 통해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넷째, 여러 가지 종류의 그림책을 읽어 주어라.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사물 그림책,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 그림책, 일상생활을 익히게 하는 생활 그림책, 숫자나 글자를 익히게 하는 인지학습 그림책 등을 번갈아가며 읽어준다.



- 다섯째, 그림책에 의성어나 의태어가 포함돼 있으면 좌뇌뿐 아니라 우뇌도 발달시킨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아이가 반복하기를 좋아하고 쉽게 외우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과 어휘를 익히는데 좋다.



-여섯째, 그림책 읽기를 오감놀이로 활용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읽어줄 수도 있고 그림책의 한 장면을 똑같이 목소리로 흉내내거나 인물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해보자.



- 일곱째,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독후활동을 하자. 책의 내용으로 놀이를 할 수도 있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 여덟째, 책 내용을 바탕으로 종이 인형극이나 역활극을 해보는 것도 좋다. 부모와 아이가 역할을 분담하고 상황을 재현해 본다. 아이는 이를 통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장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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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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