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에 허둥대지 말고 원인 해결을!

2010.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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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진료실에서 엄마들의 행동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한 아이의 예를 들어보자.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여전히 장난감 칼에 집착한다. 몇 개의 칼을 가지고 있음에도 점점 더 좋은 칼을 가지려 한다. 그림을 그리면 칼과 총으로 싸우는 사람들만 그린다. 한번은 학교에 작은 칼을 들고 갔다가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신 적도 있다. 이런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엄마는 아무리 남자 아이라도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아직도 칼에 집착하는 것이 걱정스러워 집에 있는 칼을 모두 갖다 버렸다. 그리고는 칼이 없어졌으니 이제 아이의 공격적인 태도도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결과는 당연히 해피엔딩은 아니다. 아이는 엄마 몰래 다시 칼을 수집하거나 칼이 아닌 다른 공격적인 소재에 집착한다. 칼은 아이의 공격성의 원인이 아니다. 칼은 아이가 자신의 내면에 눌러놓은 공격성을 그나마 완화시키는 도구다. 아이가 칼에 집착하지 않고 그 공격성을 부모나 또래 친구들에게 표현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칼은 이 아이에게 원인이 아닌 결과다.

아이는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공격성은 아이들이 두려움이기기 위해 흔히 채용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자신이 받은 반복적인 거절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는 기질적인 이유로 장난감의 어떤 특성(예를 들어 칼의 날카로운 느낌)에 장기간 집착하기도 한다. 부모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아이가 보이는 행동의 원인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은 원인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한줄기 가지일 뿐이다.


남의 아이 문제라면 금방 짐작이 가는 이런 예측이 자기 아이와 관련해서는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을 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아이가 깊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어진다. 일단은 별 것 아닐 거라고 덮은 채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전형적인 부정(denial)의 심리이다. 큰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 우리 모두는 설마 아닐 거야 생각한다. 검사가 뭔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상대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칼을 빼앗아도 아이 마음의 무언가는 계속 남아있다.


자폐증에서 자동차 바퀴나 돌아가는 사물에 집착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들은 부모들은 아이가 자동차 바퀴를 빤히 보고 있으면 못하게 한다. 진짜 자폐증을 가진 부모들은 더하다. 마치 자동차 바퀴나 선풍기를 보면 아이의 자폐증이 더 악화되기라도 할 듯 반응한다. 그러나 아이의 이런 행동 역시 본질을 반영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아무리 바퀴를 들여다봐도 없던 자폐증이 생기지는 않으며, 자폐증이 악화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아이들도 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신기할 수 있다. 또 어느 정도 집착할 수 있다. 자폐증에서는 특정한 자극을 추구하는 자극 편향성이 강하고 인간적인 관계나 놀이에 대한 선호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아이에게는 바퀴를 못 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바퀴를 못 보게 하려고 아이를 강하게 야단쳐서 엄마를 싫어하도록 한다면 최악의 행동을 한 셈이다.

물론 결과도 원인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이나 행동이나 모두 돌고 도는 것이어서 원인은 결과를 낳고 결과는 또 원인을 강화한다. 좋은 일이 있어야 웃을 것 같지만, 별 이유없이 일부러 웃더라도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웃음을 잃게 하는 일이 깔려 있는데 웃음만 짓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원인만 따져볼 수는 없지만, 최종 결과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서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놓고 마지막 물 나오는 구멍만 막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언제까지 막고 있겠는가? 지쳐서 팔에 힘이 빠지면 물은 다시 나온다. 수압이 세다면 힘이 빠지기 전이라도 파이프 이음새에서 물이 샐 것이다. 아이가 보이는 여러 가지 문제들.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엄마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지금 놀이공원에 데리고 왔는지는 모르는 채 당장 아이스크림을 안 사주면 엄마 밉다고 우는 아이. 그 아이처럼 부모가 행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세상사 모든 문제를 다 심각하게 고민할 수야 없다. 그러나 부모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지금 받고 있다면 당장 결과를 없애려고 노력하지 말고 원인을 찾자. 우는 아이를 울지 말라고 다그쳐서야 매일 똑같은 다그침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육아 2년차만 되도 그 정도는 알 것이다. 최종 결과인 행동에 대한 반복적인 지적. 이러한 지적이 효과만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짜증을 늘리고 자존감도 떨어뜨린다. 더욱 중요하게는 엄마를 피하도록 만든다. 아이가 엄마를 피하면 육아는 볼짱 다본 것이다. 아이 행동의 내부로 들어가서 행동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이의 상처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엄마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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