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서두르지 마세요…7살 이후 배울 때 재미 쑥쑥

2010.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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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부모에게 유난히 강조되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바로 ‘유비무환’이다. 실제로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도 가기 전에 적어도 한글은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몇몇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기가 쉽다. “저 집 아이는 그림책을 줄줄 읽던데 너는 어찌된 게 글씨에 통 관심이 없니?”



글을 빨리 깨우쳐야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것이 부모의 기대이다. 그런데 이런 삼단논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단순한 훈련을 통해 글 읽기를 배우는 것은 5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정 자극을 주고 그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낮은 수준의 두뇌 발달로도 충분한 일이다. 예를 들어 그림과 글씨가 앞뒤로 적힌 카드를 가지고 아이가 맞는 글씨를 말하도록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읽기라고 할 수 없다.



글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 시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눈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으로 글씨와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글씨를 읽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결국 읽기를 무척 괴로운 것으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시각적인 준비가 된 뒤에는 추상적인 사고력이 발달해야 한다. 우선 글자가 어떤 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소리와 의미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글 읽기에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 의미 찾기는 상당한 정도의 두뇌 성숙을 필요로 한다.



여러 나라에서 한 실험 결과를 보면 5살에 글을 가르치는 것보다 7살에 가르치면 훨씬 쉽고 즐겁게 배운다는 것이 입증됐다. 두뇌가 어느 정도 발달해서 글 읽기의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준비가 덜 된 두뇌에도 훈련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그 시기에 갖춰야 할 다른 발달 과제를 포기할 정도로 글 읽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수동적인 훈련을 통해 글 읽기를 배운 아이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글에 대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갖는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읽으려 하지 않으며, 의미를 찾지도 않는다. 의미를 파악하면서 글을 읽는 재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글을 못 읽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높은 지능의 아이 가운데 많은 수가 글을 일찍 읽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글 읽기는 아이들이 가진 지능의 일부분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읽기 영역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일부 아이들이 일찍부터 스스로 글씨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저절로 거의 본능적인 수준에서 글자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반드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늦게 글을 읽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4학년 이후에는 훨씬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과제 하나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함께 놀고,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이 모두가 공부이다. 때로는 교육을 위해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은 때가 요즘 유아 교육의 현실이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행복한아이연구소장(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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