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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기몸살이 제대로 왔다.

으슬으슬 몸에 한기가 드는가 싶더니 화요일 저녁부터 몸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목이 잠기고 붓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아파왔다.

이유는 넘쳤다. 애들 셋 키우면서 마을일도 하고 학교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느라 바쁘지 않은

날은 없었다.

지난 주말엔 남편도 없이 나 혼자 두 딸만 데리고 운전을 해서 강릉 시아버님댁에

다녀왔는데 4주 가까이 아무도 돌보지 못했던 집안엔 일거리가 넘쳤다.

잠시도 쉬지 않고 빨래 하고, 청소하고, 음식만들어 놓고 다시 먼 거리를 운전해서

돌아와서는 마을 행사에 참석해 밤 12시가 다 되도록 어울렸으니

아마도 몸은 그때부터 아우성이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젖으로 키우는 동안 제일 겁이 났던 것은

내아 아파서 내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세 아이 모두 젖만 먹고 자랐는데 아이들은 내 젖을 너무 너무 좋아했다.

낮이건 밤이건 전철안에서건 길에서건 아이들은 아무때고 배가 고프면

젖을 찾았다. 나도 어디서건 젖을 물리며 아이를 키웠다.

 

이렇게 좋아하고 이렇게 잘 먹는데 만약 내가 아파서 젖을 못 먹이게 되면

어쩌나... 젖가슴에 매달려 쪽쪽 젖을 빨아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슬며서 찾아와 마음을 조여왔다.

그런 걱정을 하는 날엔 악몽을 꾸기도 했다.

젖은 불어서 넘치고 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배가 고파서 엄마를 찾으며 아이가 울고 있을 것 같은데, 속절없이 젖은

차 오르는데 천지에 아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터질것처럼

무섭고 슬퍼서 울며 소리지르며 깬 날이 있었다.

곁엔 아이가 있고 내 젖가슴은 젖으로 부풀어 있었다.

아... 꿈이구나.. 다행이다.

잠결에 젖을 찾는 아이에게 몸을 둘려 젖을 물리며 느끼던 그 한없는

안도감...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 아이에게 젖을 먹인 기간이 합해보니 7년 9개월인데

그 7년 9개월동안 '나는 내 아이의 밥'이란 생각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젖을 물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내 자신을 무장시키며 살았다.

몸이 너무 힘들면 자다가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며 요가를 하곤 했다.

하루동안 혹사한 몸을 조금이라도 조율해놓지 않으면 다음날 더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피곤에 절은 몸을 일으켜

어둠 속에서 몸을 굽히고 펴가며 이를 악물었다.

 

남편은 나보다 자주 아팠다.

툭하면 몸살이었다. 그럴때마다 생각했다.

'당신은 젖을 안 주니까 아파도 되는구나..

몸이 아프면 누우면 되고, 밥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고

매달리는 아이들 외면해도 되고...'

 

내 몸에서 나오는 젖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담배 피울 수 없을텐데... 그렇게 자주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수도 없을텐데.. 밥 먹기 싫은 주말 아침을 생라면으로

때울 수 있는 것도 젖 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겠지.

 

아무리 애를 써도 아픈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아이들은

양껏 젖을 빨아 댔다. 아파서 아무도 나를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어린 아이들은 그런 내 사정을 이해할 리 없다.

그저 아무때고 내 가슴을 들추고 젖꼭지에 매달렸다.

이렇게 아픈 엄마에게서도 저 먹을 것은 다 빨아 먹는 아이들을 볼 때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몸서리처지도록 끔찍하기도 했다.

자식이란 엄마를 자양분삼아 제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구나..

젖과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 모두를, 내 존재를 녹여 먹어가며 크는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밤엔 그냥 모든게 다 서럽고 무서워서 혼자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입맛이 없어도 밥을 챙겨 먹었고 몸에 좋다는

것들을 악착같이 찾아 어떻게든 빨리 추스리고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그때문인이 이따금 아프긴 했지만 젖을 못 물릴 정도로 아팠던 적이 없다.

아파도 마음껏 아플 수 없었기에 정신과 몸을 더 단련시키며 살아왔다.

남편은 절대 모를 것이다.

내겐 얼마나 큰 긴장과 노력이었는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대학졸업 후 가진 직장에서

몸이 아파도 출근을 해야 할 때 였다. 내가 받는 월급 만큼의 역할을

해 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 하게 했다.

아프다고 엄마에게 투정부리고 오늘은 학교 못 가겠다고 엄살 피우던

시절은 끝이 났음을 절절하게 실감하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을때도 몸이 아플때 였다.

내 몸이 아픈데도 아이들 먹일 밥을 짓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설 때

내가 아파도 아이에게 줄 젖을 만들기 위해 입맛없는 밥상에 억지로 앉아

밥을 떠 넣을때 눈물이 나도록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실감하곤 했다.

아아.. 나는 이제 마음놓고 아플 수도, 아파서도 안되는 사람이구나..

그런날엔 새삼 여섯 자식을 키워온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밤새 앓고 일어나 다시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차려 먹이고 학교에 보낸다.

아파도 집안 일은 넘치고 아파도 집에 있는 아이에게 밥을 차려 줘야 한다.

맘 놓고 내 아픈 것에만 빠져 있을 수 없는 엄마라는 자리..

나는 다시 그 자리의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에 두려워진다.

조금만 아프고 일어나야지..  살짝 앓고 지나가야지.

내 아이들의 곁을 지켜야지... 엄마의 자리에 늘 그대로 있어야지..

 

그래... 돌이켜보면 젖 먹이는 엄마라서 더 엄하게 더 철저하게

나 자신을 지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내 아이의 밥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먹을 수 가 없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늘 내 몸과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 할 수 있었겠지. 내게 의지해서 나를 통해 제 생명을 이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내가 이때껏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 올 수 있었겠지.

 

내가 돌보고, 내가 먹이고, 내가  품어야 하는 생명들이 나를 더 굳세게 하고

더 강하게 해 준거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지.

 

이틀 아프고 다시 일어섰다.

아직 기침도 목의 염증도 가시지 않았지만

"엄마, 아프지 마세요" 하며 나를 꼭 안아주고 현관을 나서는 큰 아들과

"엄마, 어제보다 목소리가 좋아지셨네요, 괜찮으세요?" 하는 둘째와

"내가 엄마 아픈데 호 해주면 다 나을거다요" 하며 내 얼굴에 열심이 입김을

불어주는 막내가 있으니 다시 힘을 내야겠다.

 

사방에서 건강때문에 일상이 흔들리는 내 나이의 사람들 이야기가 들려온다.

조심 조심 더 잘 돌보고 살펴보며 살아야지. 아직 아이들도 너무 어린데

내가 지켜아할 것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아프면 안된다. 정말 안된다.

욕심으로 꽉 차던 마음이 가볍게 비어졌다.

몸 아프면 사람은 철이 든다.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이미 내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 그래.. 나머지는 다 욕심이지.

그렇지..

 

된장찌개 끓인 저녁 밥상에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더운 밥을 먹는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늘 불평했지만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가

사는 구나... 속으로 고백하며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아이들 수저위에 반찬을 올려주며

밥보다 더 뜨거운 것을 꾹꾹 삼켜가며 밥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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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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